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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 사천 용현면 신복리에 있는 '박연묵 교육박물관'에서 박연묵 관장이 자료를 설명하고 있다.
 경남 사천 용현면 신복리에 있는 '박연묵 교육박물관'에서 박연묵 관장이 자료를 설명하고 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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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동안 쓴 물건을 버리지 않고 모으는 사람이 있을까. 60년 넘게 매일 일기를 쓰는 사람이 있을까. 경남 사천에 사는 박연묵(81) 관장이 그런 사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이 들고 손때가 묻은 자료들은 이제 귀중한 '보물'이 되었다.

경남 사천시 용현면 신복리에 있는 '박연묵 교육박물관' 이야기다. 지난 주말 이곳을 찾았다. 아는 사람이 "매우 귀중한 자료들이 많은데, 더 많이 알려져야 할 것 같다"며 "잘 정돈되어 교육 자료로 더 활용되기를 바란다"며 같이 가자고 했던 것이다.

여느 시골 마을과 같았다. 가는 길목에 세워져 있는 안내표지판을 따라 들어선 집은 슬레이트 지붕의 전형적인 시골집이었다. 교육박물관이라는 팻말이 없었다면 그냥 지나칠 뻔했다.

박물관은 모두 10여개의 방(집)으로 되어 있다. 박연묵 관장이 30년 넘게 교사로 있으면서 모은 교직 관련 도서 4500여권과 자료 등을 보관․전시하고 있는 '교사시절의 집'과 학생시절 사용했던 교과서와 참고서, 교양서적 등 1700여권이 보관되어 있는 '학창시절의 방'이 있다.

일반도서 1500여권과 교육기기․자료 150여점이 보관되어 있는 책방과 자료실이 있고, 농기구만 모아 놓은 '농기구의 집', 충북에서 사온 우마차를 보관하고 있는 집도 있다.

또 박연묵 관장이 담임으로 함께 찍은 졸업생들의 사진앨범과 각종 기록자료를 모아 놓은 '추억의 집', 맷돌과 탈곡기, 베틀 등 생활도구를 모아 놓은 '옛날 생활의 집', 거기다가 그림을 한데 모아 놓은 '그림의 집'이 있다.

30여년간 교직생활했던 그가 사용했던 책과 교과서, 졸업앨범 등 8100여점이 보관되어 있다. 박 관장은 "하나도 버리지 않고 아끼고 모아 놓은 결과다"며 "내가 직접 쓴 자료이거나 손때가 묻은 것들이다"고 소개했다.

귀하고 재미나는 자료 많아

 경남 사천 용현면 신복리에 있는 '박연묵 교육박물관'에서 박연묵 관장이 학교 다닐 때 사용했던 국어 교과서를 살펴보고 있다.
 경남 사천 용현면 신복리에 있는 '박연묵 교육박물관'에서 박연묵 관장이 학교 다닐 때 사용했던 국어 교과서를 살펴보고 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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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하고 재미나는 자료도 많다. 해방 이후 미군정이 만들었던 교과서부터 시작해서 일본 교과서도 있다. 그는 "옛날에 일제 강점기 자료들이 제법 있었는데, 해방 이후 일본 것을 갖고 있으면 혼난다는 유언비어가 있어 없애 버렸던 게 지금 생각하니 아깝다"며 "옛날에 일본에 드나들던 어떤 분한테 부탁해서 일본 가정집에 있던 교과서를 모두 가져온 적이 있다"고 말했다.

박연묵 관장이 어릴 때 사용했던 교과서도 있다. 진주공립중학교 1학년 때 사용했던 <국어> 교과서는 재미나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교과서 속에 낱장이 떨어져 있고, 책 속에 검정색으로 덧칠을 해놓은 페이지가 있었다. 그 교과서는 1949년 정음사에서 나온 <국어> 교과서로, 정인승 박사가 썼고 당시 가격은 180원이라 적혀 있다.

"하루는 담임선생이 교실에 오시더니 국어 교과서를 내라고 하더라. 몇 페이지를 부르면서 찢어서 제출하라 했고, 그 페이지와 붙어 있는 다른 단락의 페이지는 보이지 않게 검정색으로 덧칠을 하라고 하더라. 담임은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말씀을 하시지 않았고 우리도 묻지를 않았다. 나는 찢은 페이지를 제출하지 않았는데, 그게 지금 교과서 속에 낱장으로 들어있다. 그 때 담임이 왜 그랬는지 지금도 의문이 풀리지 않는다. 추정컨대, 혼란기에 제대로 검정을 하지 않고 교과서를 냈다가 뒤에 문제가 되니까 그렇게 조치를 하라고 한 것 같다."

박 관장이 받은 자료는 모두 버리지 않고 모았다고 볼 수 있다. 1976년 사천에서 이순신 장군 동상을 세운 뒤 제막식 행사할 때 받았던 홍보물도 갖고 있다. 그는 "내가 알기로는 사천에서 이순신 장군 관련한 첫 홍보물로 안다"며 "사천시나 관련 단체에서도 이런 자료가 남아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평생 주고받은 편지 다 모아 ... 수예디자인북 가치

 경남 사천 용현면 신복리에 있는 '박연묵 교육박물관'에서 박연묵 관장이 오래된 음반을 살펴보고 있다.
 경남 사천 용현면 신복리에 있는 '박연묵 교육박물관'에서 박연묵 관장이 오래된 음반을 살펴보고 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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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주고받은 편지를 다 모아 놓았다. 편지는 모두 일련 번호가 적혀 있는데, 번호를 찾으면 어느 편지에 어디에 꽂혀 있는지 알 수 있다. 박 관장이 보냈던 편지도 다 모아 놓았다.

어릴 때는 편지를 두 장씩 써서 한 장은 보내고 나머지 한 장은 보관했던 것이고, 뒤에는 편지 밑에 먹지를 붙여 베껴 썼다가 보관해 놓은 것이다. 박 관장은 "30년, 40년 전 편지도 다 있다"며 "편지는 연말에 다 모아 일련번호를 붙이고 정리를 한다"고 말했다.

일기를 매일 쓴다. 팔순이 넘은 요즘도 매일 저녁식사를 마치고 나면 하루 일과를 마무리 하면서 일기를 쓴다. 일기 쓰기는 62년 넘게 계속되고 있다.

2010년 서울코엑스에서 국제기록문화전시회가 열렸는데, 박연묵 관장의 일기가 전시됐다. 이순신․안창호․김구가 쓴 일기와 함께 박 관장의 일기가 소개되었다.

수예(자수) 도안도 있다. 동갑인 부인은 기계자수 기능공이었는데, 1961년 만든 '수예(자수)디자인북'을 지금도 보관하고 있다. 박 관장이 직접 수예를 디자인했고, 그 작품을 책자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수예는 대개 개인적으로 활동하기에 전수가 잘 되지 않고, 디자인도 드물다. 1961년에 제작한 수예디자인북을 살펴보니, 온갖 문양이 다 들어 있다. 또 그 옆에는 1962년에 만들었던 '자연수' 한 점이 액자 속에 걸려 있었는데, 당시 시골 풍경을 엿볼 수 있다.

이밖에도 귀한 자료가 한 둘이 아니다. 작은 피아노가 제일 눈에 들어왔다. 1963년 당시 사천중학교 과학교사가 만든 작은 피아노다. 마치 장난감처럼 보였다. 박 관장은 아들이 음악공부를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손재주가 뛰어났던 과학교사한테 부탁해서 작은 피아노를 만들도록 했고, 그것을 사서 사용했던 것이다.

"올해 57살인 큰아들이 5살 때 음악 공부 시켜보려고 사왔던 피아노다. 아이가 한참 '바이엘'을 연습할 때였다. 진주사범학교 출신인 정민섭 작곡가가 하룻밤 집에 와서 묵었는데, 피아노를 보더니 사용하지 말라고 하더라. 작은 피아노를 쳐보더니, 음악은 귀가 중요한데 이것으로 입력시켜 놓으면 나중에는 소리를 고칠 수 없다고 하더라. 보통 사람 같으면 그 말을 듣고 바로 피아노를 버렸을지 모른다. 그런데 보관해 두었더니, 요즘 찾아오는 사람들마다 이 피아노에 관심이 높다."

150년 된 피아노와 100년 된 풍금도 있다. 이들은 모두 소리를 제대로 내고 있었다. 1940년대 나온 축음기와 음반(엘피판)도 여러 장 있다.

이밖에 어릴 때 썼던 <동아전과> <표준전과>뿐만 아니라 보기 드문 <국민전과> <컴퓨터전과>도 보관되어 있다. 또 <사상지>와 월간 <신동아>도 보관되어 있다.

<조선전도> 복사본도 재미난다. 부산부터 백두산까지 한반도 지리를 한 눈에 볼 수 있게 그려 놓았는데, 제작연도를 보니 1946년으로 되어 있다. 컬러로 제작된 <조선전도>는 돛단배, 석탄 기관차 등도 그려져 있어 당시 생활 풍습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박 관장은 "원본은 복사본보다 1/4 정도 크기인데, 재미 나는 내용들이 많아 사람들이 쉽게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확대해 놓았다"고 말했다.

"교직은 봉사 아니냐 ... 교육적으로 많이 도움 되었으면"

 경남 사천 용현면 신복리에 있는 '박연묵 교육박물관'에서 박연묵 관장이 자료를 설명하고 있다.
 경남 사천 용현면 신복리에 있는 '박연묵 교육박물관'에서 박연묵 관장이 자료를 설명하고 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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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넘게 교직생활하면서 담임을 맡아 졸업생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 수십장 진열되어 있다. 사진 밑에 그림을 그려 이름을 적어 놓았는데, 누군지 쉽게 알아 볼 수 있도록 해놓은 것이다. 이 자료판 위에는 '사랑․인연․추억'이라는 글자를 붙여 놓았다.

"내가 썼던 물건들을 버리지 않고 모아둔 결과다. 박물관이 될 거라는 생각을 하지도 못했다. 어릴 때부터 이사 한번 하지 않고 이 집에서 계속 살고 있다. 만약에 이사를 했다면 버리는 물건들이 더 많았을 것이다. 그리고 넓은 공간도 많은 자료를 모을 수 있었던 하나의 이유였다."

박연묵 관장은 박물관 주변 땅까지 합쳐 4000평을 갖고 있다. 관람객들이 산책할 수 있도록 꽃길도 조성해 놓았다. 또 박물관 산언덕 쪽에 우람하게 서 있는 소나무 한 그루가 있는데, 지난해 보호수로 지정되어 사천시에서 관리하고 있다. 수령 200년이다.

"요즘 경제 사정이 좋아져서 그런지 사람들은 물건을 함부로 쓰고 마구 버린다. 교과서며 생필품도 마찬가지로 만드는 사람은 그 속에 혼과 정성을 들인다. 만든 사람의 고마움을 모른다. 어떤 물건이라도 귀하게 여겨야 한다. 특히 자라나는 아이들한테 그런 교육을 시켜야 한다."

박연묵 관장은 '눈높이 박물관'이라 강조했다.

"이곳에는 별 거 없다. 진품명품도 없다. 가져갈 것도 없으니 문도 잠그지 않고 개방해놓다시피 한다. 국립박물관에 가보면 현대식 건물에다 진열장을 갖춰 놓아 전시해 놓았는데, 그런 전시를 보면 뭔가 거리감이 느껴진다. 그러나 여기 있는 물건들을 보면, 외갓집 같고 친정집 같고, 초등학교에 다시 온 느낌을 준다. 일반 서민이 눈높이에 맞다."

박연묵 관장은 "젊었을 때는 괜찮았는데 이제 나이가 드니까 한계가 온다. 자료 정리하기도 힘들고 산책길 가꾸기도 버겁다"며 "내가 쓰러지기 전까지 할 일은 박물관 관리하고 매일 쓰는 일기를 저녁밥 먹고 나면 쓰는 일뿐이다"고 말했다. 그는 이같은 열정을 인정받아 '눈높이교육상'과 '경남교육상'을 받기도 했다.

"지금 내 욕심은 없다. 교직에 종사해 온 사람이 돈 생각하면 안된다. 교직도 봉사활동이다. 내가 갈 때는 맨손으로 갈 거다. 이곳이 교육적으로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뿐이다."

 경남 사천 용현면 신복리에 있는 '박연묵 교육박물관'에서 박연묵 관장이 교사할 때 자료를 모아 놓은 방을 나오고 있다.
 경남 사천 용현면 신복리에 있는 '박연묵 교육박물관'에서 박연묵 관장이 교사할 때 자료를 모아 놓은 방을 나오고 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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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묵#교육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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