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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몰려오는 구름을 관찰하며 비를 예측했다. 지난해에는 이런 행동을 하진 않았다. 해가 뜨고, 구름이 몰려오고, 비가 내려도 다 좋았다. 햇살이 따사로워서 좋았고, 구름이 해를 가려줘서 좋았고, 비가 와 땅이 촉촉해져서 좋았다. 그러나 이제는 볕도, 그늘도, 물도 적당했으면 좋겠다.

마당 한쪽에 텃밭을 일구며 사는 나는 날씨에 매우 민감하다. 때에 맞춰 비가 내리거나 햇살이 비춰주면 좋으련만, 하늘은 언제나 내 생각과 달랐다. 일곱 살 아이들처럼 제멋대로였다. 장마전선이 몰려온다고 주위가 온통 회색빛이고 방안은 촉촉함을 넘어서 눅눅해진 지 오래다. 곳곳에 곰팡이가 피어나고 공기가 무겁게만 느껴졌다.

2012년 서울, 내 방이 떠올랐다. 그때 내 방안의 온도는 34℃였다.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곳이라 바람이 잘 들지 않았다. 더위가 빨리 찾아와 밤이 되면 열대야 현상으로 잠 못 이루는 날이 많았다.

지금, 저는 '천국'에 살고 있습니다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천국이다. 내 룸메이트의 말대로 이런 좋은 환경에서 살게 됐으니 출세한 것이다. 허나, 볕을 며칠째 쬐지 못했더니 기분도 가라앉고 몸이 처졌다. 모든 일에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내가 식물이 돼가는 건 아닌지 착각이 들기도 했다. 이열치열이라고 했던가. 불 앞에서 요리를 하기로 했다.

내가 요리를 한다는 말을 엄마가 들었다면 놀라실 것이다. 서울에서 홀로 생활하는 동안 음식 때문에 힘이 들었던 적은 없었다. 밑반찬서부터 국까지 먹기 좋게 포장된 음식들이 2주에 한 번씩 배달됐다.

이것은 막내딸이 굶을 것을 염려하는 엄마의 정성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요리를 할 필요가 없었다. 그저 냉동된 음식을 전자레인지에 넣어 돌리는 수고만 하면 됐다. 그러나 이제 그 음식을 기대할 수는 없다. 엄마도 이제 그런 수고를 덜어야 할 연세가 되셨고, 나도 염치란 것이 있으며, 요리에 재미를 붙이려는 노력이 있기 때문이다.

"양파, 이렇게 작아도 되는 거야?"

 우리 집 양파는 작아도 너무 작다. 병 뚜껑 만한 것들이 가장 많다.
우리 집 양파는 작아도 너무 작다. 병 뚜껑 만한 것들이 가장 많다. ⓒ 김윤희

지난 겨울, 이웃 대동씨 부부에게 400포기의 양파 모종을 얻어 심었다. 이것들은 한 포기도 죽지 않고 살아 남았다. 그런데 양파가 소심한 건지, 치열한 생존 경쟁에 놓였던 건지 크기가 내 주먹보다 작았다. 나는 양파를 이곳저곳에 보냈다. 내가 보낸 양파를 선물 받은 이가 전화를 걸어왔다.

"이렇게 작은 양파는 처음 봤어. 한 입에 쏙인데? 양파 장아찌나 담가야겠어. 그런데 농사는 제대로 짓는 거야? 히히, 이거 언제 다 까니."

그렇다. 양파가 작아도 너무 작아서 까는데도 번거롭다. 이 많은 양파를 언제 다 먹을까.

나는 고기를 구워 먹을 때 같이 구워 먹고, 장아찌를 만들고, 생으로 먹기도 하고, 볶아 먹기도 했다. 그런데 양파가 줄어들지 않는 것 같았다. 내가 아는 양파 요리는 이게 전부였다. 더 이상 새로운 요리는 없었다. 양파는 다른 음식을 만들 때 부수적인 재료로 사용됐다. 매일 양파를 까는 것도 일이었다.

지난 7월 15일, 이날따라 마음은 왜 이리도 싱숭생숭한지 하늘을 쳐다봐도 구름만 가득했다. 바닥에 주저앉아 있자니 배가 고팠다. 나는 큰 바구니를 들고 마당에 나갔다. 부추를 뽑고 작은 양파를 골라냈다. 또 꽈리고추랑 가지도 몇 개 땄다. 진짜 요리를 하기로 했다.

먼저, 양파 껍질을 까 채를 썰었다. 그리고 소금과 부침가루를 넣어 손으로 버무렸다. 거기에 물을 부었더니 밀가루가 덩어리지지 않고 반죽이 잘 됐다. 부추도 같은 방법으로 부칠 준비를 해뒀다. 이 재료들로 전을 부칠 테다. 기름을 두른 프라이팬에 양파전과 부추전이 먹기 좋게 익어가고 있다. 전이 익으면서 내는 소리가 낯설지 않았다. 슬레이트 지붕 위로 가랑비가 떨어질 때 나던 소리와 비슷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정말 비가 오는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요리의 즐거움

 가지양념구이와 양파전 그리고 부추전
가지양념구이와 양파전 그리고 부추전 ⓒ 김윤희

아…. 비와 바삭하게 구워진 전 그리고 막걸리가 있다면 기분이 절로 좋아질 것 같다. 하지만 하던 요리를 멈출 수는 없었다.

부추전과 양파전을 다 구워내고 마늘을 깠다. 깐 마늘을 다지고 채를 썰어 두고, 꽈리고추를 다듬었다. 적은 양이지만, 비를 맞아서인지 길게 자랐다. 이것을 삼등분하고 멸치와 채 썬 마늘, 간장, 약간의 물과 함께 넣어 익혔다. 이 요리를 완성하는 데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준비하는 시간은 참 길지만 요리하는 시간은 참 짧았다.

반찬이 하나씩 만들어질 때마다 나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더움과 답답함을 잊었다. 배고픔도 잊었다. 이렇게 재미난 요리를 왜 하지 않고 살았을까?

내가 요리의 즐거움을 몰랐던 것은 아니었다. 일곱 살 때, 내 꿈은 '식모'였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식모들의 활동 공간은 주로 집안이었다. 엄마처럼 집안일을 하고, 장을 봐서 요리도 했다. 그러나 식모는 엄마와 매우 달랐다. 요리를 하거나 청소를 할 때 엄마처럼 그냥 옷을 입지 않고 앞치마를 하나 더 걸쳤다.

또, 식모들이 사는 집은 화려하고 근사했으며 부엌도 넓고 깨끗했다. 그것을 본 나는 식모가 돼 멋진 집에 살고 싶었다. 식모가 되면 넓은 주방에서 신선한 재료로 멋진 요리를 만들고, 근사한 집도 내 마음대로 꾸밀 수 있을 것이다.

드라마나 영화의 한 부분만을 보고 그게 전부라고 생각했었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것이 모두 진실이라고 여겼기에, 식모들이 그렇게 근사해 보일 수가 없었다. 초등학교 1학년이 끝나갈 무렵까지 식모가 되면 그렇게 사는 줄로만 알았다.

아차, 가지양념구이가 남았지

 가지양념구이 만드는 방법. 이대로 하면 맛있는 요리를 먹을 수 있다.
가지양념구이 만드는 방법. 이대로 하면 맛있는 요리를 먹을 수 있다. ⓒ 김윤희

양파전·부추전과 꽈리고추볶음으로 요리가 끝난 건 아니다. 얼마 전, 레시피를 보고 만들겠다고 다짐했던 가지양념구이가 남았다. 매번 가지는 볶아서만 먹었다. 가지를 워낙 좋아했던 터라 어떤 요리법을 써도 상관이 없었지만, 매번 기름에 볶아 먹었더니 신물이 났다. 다른 요리법을 찼던 중에 알아냈던 방법이었다.

가지를 길쭉하게 잘라 약한 불에 구웠다. 가지가 구워지는 동안 양념장을 만들었다. 고추장 두 수저, 간장 한 수저, 다진 마늘 한 수저, 매실청 한 수저에 쪽파를 잘게 썰어 넣어 비비면 준비 완료. 아, 들기름을 두 수저 정도 넣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 모든 것이 뒤섞여서 들기름의 향이 나지는 않지만 완성된 요리를 입 안에 넣고 씹으면 그 향을 느낄 수가 있다.

가지가 절반 정도 익으면 그 위에 양념장을 바른다. 앞뒤로 뒤집어가며 빨간 양념을 꼼꼼하게 발라줬다. 고소한 냄새가 안개처럼 온 방으로 퍼져나갔다. 이쯤 되면 내 룸메이트는 근사한 밥상을 기대할 것이다. 내 손으로만 만들어진 밥상을 받고 놀랄 표정을 상상하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매일 맛있는 요리를 해달라고 조를까 걱정이 앞섰다.

다 익은 가지를 그냥 접시에 올리면 멋스럽지 않을 것 같아 김밥을 말듯이 돌돌 말았다. 언뜻 보면 꽃모양 같기도 하고, 아주 고급스러운 요리가 탄생했다.

정성스럽게 밥상 차렸지만... 중요한 게 빠졌다

 내가 만든 요리가 밥상 위에 올랐다.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다.
내가 만든 요리가 밥상 위에 올랐다.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다. ⓒ 김윤희

밥상 위로 내가 만든 고사리 된장국, 꽈리고추볶음, 양파전, 부추전, 가지양념구이, 양파 장아찌가 올라왔다. 그리고 나는 룸메이트를 쳐다봤다. 정성껏 준비했는데, 그는 아무런 반응이 없다. 뭔가가 빠졌다는 눈치를 내게 보냈다. 아차, 요리를 하는 중에는 '그것'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나는 밥을 먹으려다 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갑을 한 손에 들고 마당 중앙을 내달려 대문 밖으로 나갔다. 집에서 슈퍼까지는 1500미터다. 하지만 나는 달렸다.

꾸물꾸물한 날에 마시는 '낮술'을 위해….


#낮술#요리#양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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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경의로움에 고개를 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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