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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엉이바위.
 부엉이바위.
ⓒ 전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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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아침, 무작정 기차를 탔다. 이 바쁜 시기에 일을 직원에게 떠넘기고 나는 떠났다. 지난 몇 년간 쉼 없이 달려왔다. 이 일을 한다고 권력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옳다고 믿는 것,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진정한 삶이라고 배웠다. 그런 내 신념대로 살아온 삶이었다.

동물보호운동가. 나는 내 직업을 그렇게 표현한다. 그러나 내 직업이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없다. 동물복지란 아직 이 사회에서 너무 낯선 가치다. 나는 외로웠다. 그러나 막상 내부는 항상 시끄럽고 갈등과 처절한 싸움이 존재했다. 정치판보다 더 치열하고 무서운 곳. 그래도 나는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그러나 솔직한 내 심정은 너무 지쳤다는 거였다. 나를 돌보거나 나 자신을 돌아볼 사이도 없었다.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기차 안으로 보이는 풍경을 물끄러미 한참을 바라보았다. 봉하마을 가는 길.

아, 그때 청문회 때 봤던 사람... 명쾌하고 단호한 목소리

1989년 소련과 동유럽이 무너질 때, 대학에 들어갔다. 사회의 정의를 실현하는 길은 운동권밖에 없어 보였다. 그러나 사회주의 이론은 나에게 너무 낯설고 무엇보다 낡은 이론이었다. 더 많은 사람들이 평등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고 방황하던 시기.

나는 페미니즘 공부 모임을 기웃거렸다. 이런 나에게 진보정당의 창당은 가뭄 끝에 내린 단비였다. 그때 대통령이 된 사람이 있었다. 종로구 선거에 출마했을 때 선거운동을 다니던 그를 길거리에서 한 번 만났었다. 악수하고 인사를 나눴다. 아, 그때 청문회 때 봤던 사람. 명쾌하고 단호한 목소리. 자그마한 체구에 손에는 깊은 힘이 느껴졌다.

그로부터 십 년간 나는 진보정당의 후원당원이었다. 선거 때 내가 도왔던 친구들은 모두 당선되지 못했다. 선거는 우리 생각을 대중에게 보여주고 전달하는 장이라고 했다. 그러나 수년간 나는 못내 아쉬웠다. 선거는 당선되지 않으면 소용이 없는 것이라고 느꼈다. 시민들과 만나는 자리라면 시민단체 활동으로도 충분한 것 아닌가? 수없이 머리 위로 드는 의문들. 십 년간 진보정당은 움츠러들고 쪼그라들었다. 결과는 너무 초라했다. 누구를 원망할 수는 없다. 우리는 모두 열심히 살았다.

우리는 노무현 대통령을 미워했다. 한미FTA를 체결하고 이라크 전쟁에도 참전을 결정한 사람. 농민들을 모두 사지로 몰아넣을 것인가. 온 세상이 다 그를 미워했다. 비리로 얼룩진 기득권 세력이 있었음에도 항상 화살은 그에게 향했다. 지금도 여전히 간혹 누군가의 글에서 이런 문구를 발견한다.

'노무현 때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탄압을 당했는지 아는가...'

그의 죽음은 너무 큰 충격이었다. 그리고 나는 침묵했다. 오랜 침묵. 그리고 몇 년이 흐른 뒤에 읽게 된 <운명이다>. 나는 그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봉하마을로 향했다.

봉하마을은 생각보다 작았다. 대나무 숲으로 울창해진 너머로 관저가 보였다. 누군가 그것이 아방궁이라고 했던가. 왜 그렇게 어리석게 언론 플레이에 쉽게 속았을까. 바보. 바보는 그가 아니라 우리 아니었던가.

 국화 헌화
 국화 헌화
ⓒ 전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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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국화를 샀다. 그리고 그의 묘소 앞으로 다가갔다. 기가 막혔다. 나는 무슨 짓을 했던가. 그를 추모하는 사람들이 남겨놓은 글들이 바닥에 펼쳐졌다. 아름답지만 서글펐다. 저 멀리 부엉이바위가 보였다.

 그를 추모하는 사람들이 남긴 흔적
 그를 추모하는 사람들이 남긴 흔적
ⓒ 전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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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엉이바위로 오르면서 생각했다. 그의 죽음은 조중동뿐만이 아니라 그때 침묵했던 많은 사람들에게도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닐까. 말해야 할 때 말하지 못하고 외쳐야 할 때 외치지 못한 것은 비겁한 것이고 그것도 죄다. 나는 빚을 졌다.

 그는 가고 남은 비석
 그는 가고 남은 비석
ⓒ 전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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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막혀 있는 부엉이바위 위에서 생각했다. 왜 자신을 던졌을까. 깊은 책임감과 투명함. 그는 너무 투명한 사람이었을 거다. 저 멀리 푸른 평야가 보였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물어보았다. 그는 이제 세상에 없으니 아무런 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부엉이바위를 내려오며 생각했다. 죽음은 한 사람이면 족하다. 끈질기게 살아남아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자.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지치면 한 박자 쉬어 숨을 고르며. 이제까지 걸어갔던 길이 옳았다고 확신한다면 주저할 일이 무엇이 있을까.

 부엉이바위 오르는 길.
 부엉이바위 오르는 길.
ⓒ 전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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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보호판도 정치판과 다를 바 없었다

"좋은 일을 하시네요"라고 칭찬하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 욕을 하며 돌아섰다. 손끝 하나 더러운 것을 묻히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이 일에 평생을 건 사람들에게 과도한 의무를 부과하며 기준을 세우고 비판하고 몰아세웠다. 동물보호판도 정치판과 다를 바 없었다.

우리는 쉼 없이 돈도 없이 일해야 했고 가난을 숙명처럼 받아들여야 했다. 서러운 직업. 날카롭고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면 품성이 나쁘다고 했다. 모두 다 감수했다. 진정으로 이 일에 헌신하는 사람들은 알고 있다. 누군가 오물을 뒤집어쓰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 조직을 이끄는 사람으로써 행정적으로 서류상으로 쓰고 연구해야 하는 일들이 많지만, 항상 시간이 허락한다면 현장에 가려고 한다. 이 일이야말로 현장성이 생명이다. 현실에 기반하지 않은 채 생명존중을 외치는 것은 빈 껍데기다.

 부엉이바위 위에서.
 부엉이바위 위에서.
ⓒ 전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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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이다. 그는 지난한 삶을 스스로 그렇게 토로했다. 나에게도 운명이 있다. 그 힘든 시대를 학벌도 세력도 없이 광야에서 홀로 어떻게 싸워냈을까. 부산에서 선거에서 진 이후 혼자 서서 연설하는 그의 영상을 본 적이 있었다. 패배해도 그는 당당했다. 그러나 마음속에서 얼마나 서러움을 삼켰을까.

최근 FTA의 현실성과 그에 대처하는 방향에 대해 고민해 보았다. 친구들과의 오랜 토론 끝에 내린 결론. 그는 참 대단하다. 시대를 앞서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을까. 거부할 수 없는 흐름이라면 받아들이되 정책을 제대로 촘촘하게 만들어 내자는 생각. 그는 치밀하고 노련한 정치인이었다. 그걸 읽어내지 못한 내가 바보였을 뿐.

서로 생각도 다르고 살아온 시대도 다르고 하는 일도 다르지만, 그의 삶에서 나의 삶의 방향을 생각해 보았다. 무한경쟁의 시대에 이기적인 삶을 살아가려고 바둥거리는 것이 일상이거늘. 반드시 많이 가진 자와 기득권을 가진 자, 강자는 약자에게 쉽게 자신의 것을 내놓지 않는다. 타자의 고통은 자신의 고통이 아니라고 말해야 쉽게 갈 수 있는 길. 우리는 모두 그 길을 거스르며 강줄기를 역으로 타고 올라가려고 하고 있지 않나. 독재에 맞선 민주화의 길. 이제 또 다른 길이 보이는 시대가 되었다. 타자의 고통에 공감하는 새로운 가치를 추구해야 하는 길.

 노무현
 노무현
ⓒ 전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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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는 세상. 그가 추구한 길에 나는 또 다른 가치를 덧붙였다. 사람과 동물이 함께 행복한 세상. 이 길이야말로 맨땅에 헤딩하듯이 어려운 길이다. 우리는 모두 광야에서 홀로 외치고 있는 격이다. 그러나 앞서 간 사람들이 있다. 용기를 배우자. 진실로 정의를 위한 길에 헌신하고자 하는 사람의 마음은 짓밟히고 상처투성이다. 그러나 알고 있다면 걸어갈 수밖에 없다.

노무현, 그처럼 멋진 사람이 되고 싶다. 그것이 내가 봉하마을에 간 이유, 부엉이바위에 홀로 서서 울었던 사연이다.


#노무현#봉하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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