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본색'은 정치부 기자들이 쓰는 '取중眞담'으로 '새로운 정보'가 있는 기자 칼럼을 지향합니다. [편집자말] |
[기사 수정 : 16일 오후 4시 54분]2012년 12월 11일. 민주통합당 관계자들이 국정원 직원 김하영씨의 강남 소재 오피스텔을 급습했다. 김씨는 자신이 국정원 직원인 것조차 부인했다. 하지만 이후 인터넷 여론을 조작하기 위해 국정원이 벌인 위험한 공작이 드러났다. 기자는 이것을 '댓글공작'이라고 쓰고, '대선개입' 혹은 '정치개입'이라고 읽는다.
2012년 12월 11일 역사적 순간 당시 기자는 수일 전부터 한 취재원으로부터 관련 첩보를 입수했다. 기자가 입수한 첩보의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국정원이 최근 3차장 산하의 심리전단팀을 70명으로 확대개편했다. 70명의 요원들이 매일 강남이나 미사리 일대 카페에서 정치현안과 관련된 댓글을 다는 일을 수행하고 있다. 원래는 대북현안과 관련된 댓글을 달다가 선거가 다가오면서 정치현안에도 댓글을 달기 위해 조직을 확대개편했다."이러한 첩보내용이 사실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기자는 며칠 동안 양재역과 강남역 주변을 뒤지기도 했다. 그러다가 오랫동안 추적작업을 벌여온 민주통합당팀으로부터 '김하영씨의 오피스텔을 최종 확인했다'고 연락받고 '역사적인 그날'(2012년 12월 11일) 새벽부터 김씨가 드나든다는 S오피스텔 근처에서 대기했다. 하지만 김씨가 중간에 오피스텔을 나가 들어오지 않는 바람에 '현장 확인'은 계속 늦어졌다.
그런데 기자와 민주통합당 추적팀이 '현장'을 확인하기 전에 당에서 관련내용을 먼저 브리핑해버렸다. 수일에 걸친 취재가 엉키는 순간이었다. 다행히 현장을 가장 먼저 확인한 기자는 S오피스텔 6층에서 김하영씨와 마주쳤다. 김씨는 모자를 쓰고, 한 손에는 테이크 아웃 커피를 들고 있었다. 기자와 김씨 사이에 짧은 대화가 오갔다.
- 오늘 오전에 내곡동에 있는 국정원에 갔다오지 않았나. "그런 적 없다."
- 국정원 직원이 맞지 않나? "아니다."
하지만 곧 김하영씨의 신분이 국정원 현직 직원으로 확인되면서 '국정원 댓글공작' 의혹은 더욱 커졌다. 국정원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사건'으로 기록될 댓글공작 의혹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 순간에 거기에 있지 않았지만 막후에서 '그 역사적인 순간'을 만든 사람이 있다. 국정원 댓글공작 의혹을 민주통합당에 가장 먼저 제보한 김상욱씨이다.
김씨는 고려대 법대를 졸업한 뒤 공채 28기로 국정원에 들어갔다. 하지만 지난 1997년 대선 당시 김대중 후보의 당선을 도왔다(안기부의 김대중 후보 낙선공작을 좌절시킨 것을 가리킨다)는 이유 등으로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감찰받고 지역으로 좌천되자 자진사퇴했다. 박지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김상욱씨가 DJ정부 출범에 공헌했는데 그 뒤에 제대로 도움을 주지 못해 미안할 뿐이다"라고 말했다.
"국정원, 인터넷 댓글공작 벌였다"... 김상욱씨의 제보
기자가 김상욱씨를 직접 만난 것은 대선을 나흘 앞둔 지난 2012년 12월 15일이었다. 이날 여의도 인근에서 약 3시간 동안 그를 인터뷰했다. 당시 그는 자신의 본명을 밝히지 않은 채 "조 선생이라고 불러 달라"라고 요청했다. '조 선생'의 눈동자는 인터뷰 내내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다. 기자는 속으로 '23년간 국정원에서 근무했던 요원답다'고 생각했다.
김씨는 이날 인터뷰에서 "국정원이 4대강 사업 등 이명박 대통령의 치적을 홍보하기 위해 심리정보단을 심리정보국으로 확대 개편해 인터넷 댓글 공작을 벌여왔다"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인터뷰 내용은
"국정원, MB치적 홍보위해 댓글공작 시작... 직원들 100 대1 뚫고 들어와 댓글단다 자조"라는 제목의 인터뷰 기사로 나갔다.
당시 인터뷰와 이후 만남, 전화통화 등을 통해 접한 김씨의 주장은 매우 구체적이었다. "인터넷 댓글공작은 대북심리전을 맡고 있는 국정원 3차장 산하의 '심리정보국 2단'에서 진행해왔다", "지난해 연말 심리정보단이 심리정보국으로 조직을 확대 개편됐고, 심리정보국 산하 '2단'은 안보1·2·3팀을 두고 인터넷 댓글 공작을 벌여왔다" 등의 주장이 그랬다. 그러니 주장의 신빙성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 이는 이후 검찰수사에서도 사실로 드러났다.
김씨가 국정원의 댓글 공작 의혹을 알게 된 것은 지난 2012년 5월께라고 한다. 그로부터 5개월 뒤인 10월께 민주통합당에 보고서를 올렸다. 하지만 처음에는 당에서조차 그의 보고서 내용을 의심했다. 국정원 내부에서 이루어진 일이라 사실여부를 확인하기 어려웠기도 했지만, 믿기 어려울 정도로 충격적인 내용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는 김부겸 전 의원을 거쳐 국회 정보위 소속인 유인태 의원에게 넘어갔고, 유 의원이 같은 해 10월 국정원 국정감사에서 "대북심리정보국 3개팀 76명이 (인터넷 댓글 달기) 작업을 한다는 제보가 있는데 사실이냐?"라고 물었다. 이에 원세훈 원장과 민병주 심리전단장(심리정보국장)은 "없다"라며 의혹을 일축했다. 하지만 2개월 뒤에 국정원 댓글공작 의혹이 터졌다.
이념 문제가 인사 불이익으로 이어져 특히 김씨가 전해준 '원세훈 국정원'의 내부상황도 흥미로웠다. 김씨는 "이명박 정부, 특히 원세훈 원장이 오면서 본격적으로 종북세력 척결 등 이념문제를 들고 나왔다"라며 "이렇게 종북세력 척결이라는 미명 아래 야당 인사들을 상대로 흠집내기, 종북 이미지 덧씌우기 등을 벌였다"라고 주장했다. 이는 앞서 언급한 '원세훈 지시·강조말씀'에도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김씨는 이명박 정부 시절 국정원이 '종북과의 전쟁'을 벌인 것에는 "우리 사회가 그렇게 허약하지 않다"라며 "(한국사회가) 이념적으로 좌파로 경도돼 있는 것도 아니고 국정원이 나서서 척결해야 할 것도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그는 "종북의 개념이 모호하다"라며 "대공범위를 확대시키는 것은 건전한 공론의 장을 차단한다"라고 말했다.
또한 김씨는 "이명박 정부 초기 포항세력(영포라인)이 득세했는데 원세훈 원장이 오면서 전부 S라인(이명박 대통령의 서울시 인맥)으로 바뀌었다"라며 "이렇게 특정 인사에 조직이 좌우되면 (조직원들의) 불만이 커질 수밖에 없다"라고 지적했다. 특히 '이념문제'가 인사 불이익으로 이어진 사례가 적지 않았다고 한다. 그가 몇 가지 사례를 들었다.
"한 대공수사단장이 제주 4·3항쟁에는 '우익에서 주장하는 게 다 진실은 아니다'고, 5·18 민주화운동에는 '그 지역 사람들이 폭도는 아니지 않나?'라고 말했다가 감찰조사를 받았다. '대공수사단장의 의식이 왼쪽으로 흘러서야 되겠느냐?'라고 매도당했다. 그래서 본인이 사표내고 스스로 옷을 벗었다. (2008년) 촛불시위가 한창일 때 내부게시판에 본부의 하위직 직원이 '촛불집회가 옳다'는 취지로 글을 올렸다가 지부로 인사조치됐다. 또 한 팀장이 업무보고서를 쓴 직원에게 '그냥 지난 정권 10년이라고 쓰지 왜 좌파정권 10년이라고 썼냐?'라고 지적했다가 감찰에 고발돼 지방으로 인사조치됐다."이렇게 국정원의 인사난맥상이 생겨나면서 국정원 상하간 조직력이 급격하게 무너졌다는 것이 김씨의 분석이다. "그래서 국정원 내부 얘기가 얼마든지 밖으로 나올 수 있다"라고 했다. 어쩌면 '댓글공작' 의혹건이 음지에서 양지로 나온 것도 국정원에 팽배한 내부 불만의 결과물인지도 모른다.
"국정원 지휘부, 정권안보와 국가안보 구별 못해"
김씨는 단호하게 "나는 국정원에 불만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국가정보기관으로서 국정원을 걱정하는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원세훈 원장에게 문제제기하는 게 아니다"라며 "국정원에 문제제기하는 거다"라고 강조했다.
"군사정권이 끝나면서 우리는 안기부(국정원)를 '정권보위기관'이 아니라 '국가보위기관'이라고 정의내렸다. 직원들은 그런 기조를 유지하려고 노력해왔다. 그것에 자부심을 갖고 살아왔다. 정권안보가 아니라 국가안보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 기본이다. 국정원은 대통령이 누가 되든 정권을 어느 세력이 잡든 국가안보를 위해 열심히 일해야 하는 조직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정권안보와 국가안보를 구별하지 못하는 지휘부 때문에 애꿎은 직원들만 손해본다."국정원의 인터넷 댓글공작은 오로지 '정권안보'를 위한 것이었다. 국정원에서 이를 대북심리전의 일환이라고 주장하는 것에는 "심리전은 모두 대북이고, 국내심리전은 없다"라며 "(국내에서 대북심리전을 하는 것은) 국민들한테 총질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라고 일갈했다. 그는 "4대강 사업 홍보는 국토해양부에서 하면 되지 왜 국가정보기관에서 해야 하나?"라고 꼬집기도 했다.
"원세훈 원장은 국정원장이 아니라 국정홍보처장이었다. 본인의 임무를 소홀히 하고 이명박 대통령 홍보에 주력했다. 국정홍보도 하면 안된다. 말이 국정홍보이지 이것은 국내정치개입이다. 국정원이 국정을 홍보하는 것 자체가 정치관여행위다. 국정홍보는 당정협의체에서 하면 된다."김씨는 "국정원의 국내정치 개입은 심화됐다"라고 결론내렸다. 그는 "외교의 시작은 대북문제인데 자꾸 국내정치에 개입하고 싶은 유혹을 느끼는 것이 오늘의 문제를 야기했다"라며 "대북문제에 관심을 갖고 객관적으로 정보를 수집해서 정확하게 분석해 대통령에게 보고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정권 편향성이나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이런 일을 벌이면서 문제가 발생했다"라고 지적했다.
특히 김씨는 현직 국정원 직원들과 특정정당의 커넥션을 크게 우려했다. 그는 "지난 대선 당시 NLL 대화록 3부가 박근혜 후보쪽에 전달됐다"라며 "세 부가 세 루트를 통해 전달됐는데 그 세 루트 가운데 하나가 현직 부서장(국장)이었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열람이 (극히) 제한된 문서가 복사돼서 나갔다는 것인데 이것은 심각한 국정원법 위반이다"라며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라고 질타했다.
그의 고발이 잊혀지지 않기를 김씨는 '국가정보기관'으로서 국정원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는 지극히 상식적인 것이다. 국정원 댓글공작 의혹을 당에 제보한 것도 상식에서 일탈한 국정원을 개혁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국정원 댓글공작 의혹 사건은) 정보기관이 본래의 모습으로 되찾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런데 그런 김씨를 기다린 것은 소송이었다. 국정원 댓글공작 의혹을 민주통합당에 제보한 혐의(공직선거법 위반 등)로 기소돼 1심에서 벌금 200만 원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다행히 최근 항소심에서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는 무죄 판결 직후 "인권의 최후 보루인 사법부가 국정원과 일부 정치검찰의 일탈행위를 바로 잡은 것이다"라며 "이 사건의 본류인 원세훈 전 국정원장 재판에도 국민 관심이 꺼지지 않았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그 역사적인 순간'과 직접 마주했던 권은희 전 서울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은 최근 새정치민주연합으로부터 공천받았다. 그런데 기자는 권 전 과장보다 김씨가 한국사회에 공헌한 정도가 크다고 생각한다. 그가 없었다면 권 전 과장도 있을 수 없었다. 그런 점에서 그가 고발한 국정원 댓글공작 의혹이 사람들에게 잊혀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도 마땅히 기억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