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항을 떠난 화물여객선 세월호가 공중파 텔레비전에 의해 국민들에게 생중계되는 가운데 진도앞 바닷속으로 사라졌다. 제주도를 향해 수학여행을 가던 수많은 안산 단원고 학생들이 한 순간에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국민적 애도와 대통령의 사과, 해양경찰 해체, 심지어 국가 개조 논의까지 운위되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 비극을 일으키게 만든 장본인은 여태껏 잡히지 않았다. 심지어 책임을 통감한다면서 국무총리가 사퇴하였지만 도리어 유임되는 희안한 파동을 겪었다. 그리고 침몰한 배의 선장 등에 대한 재판과 별도의 검찰 수사, 국회 국정조사가 현재진행중이다. 하지만 희생자 유가족과 살아남은 학생, 마을 주민들의 심신은 전혀 편치 않다. 무엇보다도 구조 회피 원인 규명과 실종자 수색은 더디고 답답하게 느껴진다.
혹자는 이런 사회적 치유의 답보와 정체를 정부 관료의 무책임, 무기력, 무사유, 무성찰, 무비판에 근본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맹목적 황금중시 풍조 탓이라고도 여긴다. 특히 자본주의 상품시장경제로 인한 물신화, 신자유주의 유습, 돌진적 공업화와 성장주의, 규제 완화, 보수정권의 무능에 기인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이런 원인 진단마저도 구체적 해법을 찾아 나가는 데는 아쉬운 느낌이 없지 않다. 일부 정부 부처의 폐지나 '헤쳐 모여'만으로 이런 비극의 재연을 사전에 예방할 수는 없다는 게 일반적 상식에 근거한 비판적 시각의 반영이다
따라서 당장 적용해야 할 진정한 해결조치는 상처를 입은 이들과 그 공동체 자체의 회복을 위해 완전하고 계속적인 '정의를 통한 사회적 치유'과정을 통해야 한다. 개인만이 아니라 사회 차원의 치유는 말을 구체화하고, 효과적 행동을 촉진하는데서 이루어진다. 말하자면 사실 '인정', '책임', '재건', '배상'이라는 '정의를 통한 치유' 단계를 빠뜨리지 않고 거쳐야 한다. 원래 이 길은 하와이 원주민에 대한 미국 정부의 탄압에 대한 배상, 2차대전시기 재미일본인에 대한 미국 정부의 강제 억류에 대한 해결, 그리고 제주4·3 민간인 학살과 같은 대비극의 완전한 해결을 위한 미국정부 상대의 청원 준비 과정에서 정립된 것이다.
첫째, 철저한 진상규명작업은 이행기 정의 실현과 사회적 치유를 앞당기는 요체요 지름길이다. 4월 16일 이후 관련 당사자들의 언행에서 드러나고 있는 사실 은폐와 호도, 조사 지연과 방해, 증거 조작과 인멸 등이 더 이상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차라리 관련 공무원들이야말로 더 이상 이 사안에 대해 손을 떼는 게 필요하다고 지적할 정도이다.
한 점 의혹이 없을 만큼 철저하고 완벽한 진실 확보를 위해서 독립적인 국가 수준의 조사 기구를 별도로 구성하는 일은 진상규명의 전제조건이다. 그래야 사람들은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 한 마디만 보태자면 이번 일은 단순한 참사가 아니라 참혹한 타살, 참살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모든 의혹을 밝혀내 더 이상 불행하고 안타까운 의문사가 없도록 해야 한다.
둘째, 조사 결과에 따라 사실과 증거에 근거한 '책임' 추궁을 해야 한다. 법적, 사회적, 역사적, 윤리적 책임을 끝까지 따지고 추궁해야 한다. 대통령의 사과 한 마디가 책임 회피나 모면의 계기가 되어선 절대 안 된다. 책임 추궁이 없이는 사회정의가 똑바로 확립될 수 없다. 정의가 실현되지 않는 치유나 회복조치는 어불성설이거나 사상누각에 지나지 않는다.
셋째, 공동체 '재건'에 치중해야 한다. 엄청난 비극으로 인해 황폐해진 지역 공동체가 다시 재기하여 한번 더 활력을 되찾는데 필요한 모든 행정적, 경제적, 사회적 지원과 배려가 요구되지 않을 수 없다. 지속가능성, 인권, 평화, 생명, 공존의 가치를 구현할 수 있어야 한다.
넷째, 사망 피해 희생자와 실종자 가족뿐만 아니라 생존자와 그 가족을 위한 '피해 배상'을 해야 한다. 피해배상에 의제한 보상 조치의 실현은 배상적 정의 실현의 필수조건이다.
이 '인정', '책임', '재건', '배상'이라는 네 단계의 실현을 통한 사회적 치유를 위해 특별법 제정은 무엇보다도 시급한 과제이다. 세월호 참사의 온전한 해결을 위한 황금시간을 놓치지 않게 되길 촉구한다. 그래서 국가는 국민의 생명존엄과 안전을 지키는 보루임을 재확인하고, 똑같은 비극의 재발 방지 의무와 책임을 지는 존재임을 증명해야만 할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지속가능하고 안전한 사회의 재구성 작업에 모든 이들이 참여할 수 있는 협치가 조속하게 추진되어야 할 매우 중대한 때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세계섬학회 <정의를 통한 사회적 치유> 위원회 위원장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