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6개월 동안 살았던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귀국합니다. 한국은 많은 걸 배우고, 느끼고, 생각하고, 날 성장하게 해준 땅이고 나의 소중한 사람들이 있는 곳입니다."6월 말, 그녀가 떠났다. 갑작스런 이별 통보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갔다. 일본인이 아닌 연극인이었던 기무라 노리코(51)씨 이야기다. 한국 연극이 좋아 무작정 찾아온 한국. 그 때가 1997년이었다. 일본 대중문화 개방 전이었고 광복절 무렵이면 반일 감정이 고조되던 그런 시기였다.
사실 기무라씨는 그 전에도 한국에 온 적이 있다. 1989년에 배낭여행으로 서울을 찾았다. 공교롭게도 광복절 무렵. 구경 갔던 공원에서 일본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위협을 받기도 했다. DMZ 관광 때는 총 든 군인에 둘러싸여 엉엉 울다 온 '공포 체험'도 했다.
다시는 오고 싶은 않았던, 무서운 나라 한국을 다시 찾은 이유는 한 남자 때문이었다. 고향인 아사히카와에서 연극 기획 일을 하다 우연히 보게 된 한국 연극이 그녀를 사로잡았다.
"일본 연극은 소소한 일상 속에서 삶의 의미를 다룬 경우가 많은 반면, 한국 연극은 사회적, 역사적 맥락에서 인간의 본질을 다룬다는 게 매력적이었어요." 우연히 보게 된 연희단거리패의 '오구'를 통해 한국 연극에 관심을 갖게 된 후 부러 찾아가 본 작품이 극단 목화의 '부자유친'. 이 작품이 그녀의 인생을 바꿔 놓았다.
"소박한 연극이었는데 무대에서는 에너지가 넘쳤어요. 오태석 선생님이 보는 인간이 갖고 있는 선과 악의 양면성,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역사관이 독특하고 매력적이었죠."우연히 따라간 공연 뒤풀이 자리에서 오태석씨와 입고 있던 셔츠를 바꿔 입고 '친구 사이'가 됐다. 극단 목화의 작품을 일본 무대에 올리겠다는 약속도 했다.
그렇게 해서 상연된 작품이 '태'. 그 후로도 홋카이도와 서울을 오가며 극단 목화와의 우정을 돈독히 쌓아갔고 "오로지 오태석의 작품을 한국어로 온전히 이해하고 싶다"는 바람으로 서울에 오게 되었다.
"17년 간의 서울살이 중에 영원히 잊지 못할 한 장면이 있어요. 17년 전만 해도 유일한 연락 수단이 유선 전화 아니면 편지였거든요. 오태석 선생님께 몇 월 몇 일에 어학연수 하러 서울에 간다고 편지를 드리고 김포공항에 내렸는데, 글쎄 공항 로비에서 종일 저를 기다리신 거예요. 게이트를 나왔을 때 봤던 선생님 모습... 힘들 때마다 떠올리며 힘을 얻는 장면이에요."어학 연수를 마치고 비자가 없어 다시 일본으로 돌아갈 상황에 처했을 때, 손을 내밀어 준 사람 역시 오태석씨였다. 기무라씨는 극단 목화에서 기획자로 일하며 '춘풍의 처', '아침 한때 눈이나 비' 등 다수의 작품의 일본 공연을 성사시켰다.
기무라씨는 프리랜서 기획자로 독립한 후에도 오타 쇼고의 '빈 터'를 소개한 것을 시작으로 연극 최전선에서 활동해 왔다. 2004년에는 '바다와 양산'을 제작, 동아연극상도 수상했다.
또 한편으로 한일연극교류협의회 전문위원으로 활동하며 한국 연극을 일본에 소개하는 등 한일 연극의 가교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대학로 무대에 일본 작가의 작품이 일상적으로 상연되고 일본 극장에 한국 배우가 출연할 수 있었던 데에는 기무라씨의 역할이 컸다.
"처음에는 교류 코디네이터가 무얼 하는 사람인지 개념이 전혀 없었어요. 다들 통역 정도 하는 역할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할 정도로 코디네이터 역할에 대한 인식이 낮았죠. 하지만 한일 양국 간에 일하는 방식 차이도 있고 이런 간극을 조율하는 역할은 반드시 필요하죠."
'교류'라는 말이 무색해진 지금은 기무라씨 말고도 한일 연극 현장에서 뛰고 있는 코디네이터 후배들도 여럿 생겼다.
"제 역할은 다 했다고 생각해요. 제가 못다 푼 매듭은 후배들이 풀어 주리라 믿어요. 지금은 국경이나 국적 상관없이 '연극'이라는 공통분모로 서로의 나라를 왕래하고 있으니까요."기무라씨의 노고를 가장 잘 알아준 것은 역시 함께 일해 온 연극인들이었다. 연출가 김광보씨를 비롯 연극계 인사들은 기무라씨를 위해 환송회를 열어주었고 감사패를 전달했다.
"한국은 선물 같은 나라예요. 언어라는 큰 선물을 받았고 평생 함께 할 수 있는 많은 연극 동지를 얻었으니까요."일본인이 아닌 '연극인'이 되어 고향인 홋카이도로 돌아간 기무라씨. 자신이 그랬듯이 연극을 통해 또 다른 국경을 허물 그녀의 활약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