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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때 교양선택으로 <서양음악의 이해>라는 과목을 수강한 적이 있다. 20여 년 전이니 들었다는 사실만 기억할 뿐이다. 나이든 여교수의 서구적인 외모와 남들보다 높았던 목소리 톤과 함께. 수업도 몇 번 듣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 졸업반이었고 학점을 메우기 위해 우연히 선택한 수업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 수업의 중간과 기말고사는 아무 음악회든 다녀와서 그 증거인 표와 함께 감상문을 제출하는 것이었다.

'클래식 음악과 함께 하는 문화여행'이라는 부제가 달렸다. 저자의 인문학적 소양과 학창시절 그리고 여행 경험이 한 세기 전 음악과 잘 어우러졌다.
▲ <클래식오디세이> 표지 '클래식 음악과 함께 하는 문화여행'이라는 부제가 달렸다. 저자의 인문학적 소양과 학창시절 그리고 여행 경험이 한 세기 전 음악과 잘 어우러졌다.
ⓒ 청아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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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클레식 오디세이>를 손에 들면서 대학교 4학년 졸업반으로 돌아가 그때 수업을 다시 듣는다. 뚜렷한 목표를 조준하고 돌진하던 다른 친구들과 달리 나는 아직도 '졸업하면 어떻게든 되겠지'하고 어정쩡하게 있었지만, 막연한 불안과 소외로 인한 무력감은 어쩔 수 없었다.

그때 제대로 알아듣지는 못했어도 고전파니 낭만파니 하는 옛사람들의 어찌 보면 당시의 나와는 아주 동떨어져 있다고 여겨지던 이야기와 음악이 예상외로 위로가 되었다.

내가 아는 클래식 작곡가들은 이름만 들어서 아는 이른바 '3B(바흐, 브람스, 베토벤)다. 그리고 클라리넷 협주곡의 모짜르트, 숭어의 슈베르트, 피아노를 잘 치기 위해 손가락에 고무줄까지 끼우는 노력을 하다 부상을 당했다던 멘델스존, 십여 년 전 아직 체코가 유럽연합에 가입하지 않았을 때 프라하 출장을 갔다 알게 된 <나의 조국>의 작곡가 스메타나 정도가 되겠다.

바흐의 마태 수난곡

베를린 방문 중 케테 콜비츠의 조각상 <피에타>를 감상하던 저자는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케테가 아들과 손자를 잃은 어머니이자 할머니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예수를 배신한 베드로가 통한의 눈물을 흘리는 바흐의 <마태 수난곡>을 떠올린다. 스마트 폰으로 저자가 제공한 QR코드를 스캔하면 유튜브로 <나의 하나님>을 감상하면서 읽을 수 있다.

차이코프스키의 오페라

차이코프스키의 <예프게니 오네긴>이란 작품은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결코 노하거나 슬퍼하지 말라'로 시작하는 시(詩)로 유명한 푸시킨의 운문소설을 오페라로 만든 것이라고 하는데, 푸시킨 또한, 오페라 중 오네긴의 총에 맞아 사망하는 레스킨의 운명과 똑같이 38세의 젊은 나이에 사랑 때문에 연적에게 총을 맞고 숨지는 운명을 맞이한다고 한다.

편집증이 있었던 기차광 드보르작

"우리들은 2시 34분 정각에 크로세비치를 출발해 3시 13분에 벤샤우에 도착, 거기서 물을 공급받고 3시 28분에 발차하여 5시 46분에 프라하에 도착했습니다. 아, 그리고 저희가 탄 열차의 번호는 10726번이었습니다"

<신세계교향곡>의 작곡가로 유명한 드보르작의 예비사위의 신혼여행 계획 보고라고 한다. 드보르작은 웅장한 스케일의 음악과는 달리 사소한 것에도 편집증적인 집착을 보였다고 하는데, 결국 저 사위의 보고는 열차번호가 187번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던 장인의 지적으로 엉터리가 되고 말았다.

저자의 수고로 우리는 <신세계 교향곡>은 드보르작이 미국 뉴욕의 최신식 기관차를 보고 작곡했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이런 사실을 알고 들어보니 20세기를 맞이하여 신세계로 달려가는 열차를 상상하기에 충분하다.

나치를 위한 작곡가, 바그너

1999년 세계적인 지휘자이자 피아니스트인 다니엘 바렌보임이 팔레스타인 출신의 문명비평가 에드워드 사이드와 함께 <서동시집>이라는 오케스트라를 창단했다는 이야기는 당시 시사잡지에서 기사로 읽은 기억을 상기시켰다. 다니엘 바렌보임은 유태인이다.

그는 2004년 이스라엘의 평화상인 울프상을 받으면서 '모든 접경국 그리고 그 국민들과 평화와 우호를 유지할 것을 약속한다'라는 독립선언문의 내용과 함께 "우리 유대 민족이 고난과 박해의 역사를 보냈다는 미명하에 이웃 국가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그들의 고통을 모르는 척하는 것에 면죄부가 주어질까요?"라는 질문을 소감으로 밝혔다고 한다.

십 년이 지난 오늘도 여전히 이스라엘은 그가 제안한 '실용적이고 인도적인 해결책'을 외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가 음악회에서 히틀러가 사랑했던 작곡가 바그너의 <사랑의 죽음>을 연주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히틀러가 자행한 유태인 대학살 당시 수용소에서 틀어줬던 음악이기 때문이다.

색다른 느낌으로 만날 수 있는 작곡가들

드뷔시의 <달빛>을 소개할 땐 저자는 미학을 전공하던 한 대학생의 일화를 소개한다. 수업시간에  드비시의 <월광>이 등장한 모양인데, 그 학생은 '<월광>은 베토벤 아닌가요?'함으로써 클래식에 대한 자신의 일천한 상식을 드러냈다고. 알고 보니 저자의 동생이 미학을 전공한 진중권이다.

이외에도 <클래식오디세이>에서는 8명의 아이들을 낳은 낭만주의자 슈만과 괴테의 소설 속 주인공을 노래한 <미뇽의 노래>를 만든 슈베르트 등의 작곡가들을 저자의 새로운 시선으로 만날 수 있다. 내가 체코 프라하를 방문했을 당시 인상 깊게 들었던 부분이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 여섯 곡 중 <도나우>였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이렇게 역사에 남은 유명 작곡가들은 '음악의 아버지 바흐, 귀머거리 베토벤, 음악의 신동 모짜르트' 등과 같이 우리에게 평면적 인물로 남겨졌을 수 있다. 대표적인 업적이나 작품에 덮여 그들이 상징화되어 버렸기 때문이라고 생각되는데, 진회숙의 <클래식 오디세이>를 읽으면 이런 선입견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녀가 작품과 작곡가에 대한 통찰력 있는 인문학적 해석과 상상력을 자신의 경험과 함께 독자들에게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클래식오디세이> 진회숙 지음, 청아출판사, 2014년 6월 30일 초판 발행



클래식 오디세이 - 클래식 음악과 함께하는 문화 여행

진회숙 지음, 청아출판사(2014)


태그:#진회숙, #클래식, #유럽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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