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겨울 정부가 '보건의료서비스산업 투자활성화대책'이란 것을 발표했다. 대략 보건의료계의 규제를 완화해 병원이 돈 벌 수 있는 길을 많이 터준다는 내용이다. 나는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에서 일하고 있다. 본능적으로 느꼈다. '이것은 필시 큰 싸움을 부를 징조다!'
아니나 다를까, 그 발표 이후 그나마 1년 중 가장 한가하다는 12월도 의료민영화 반대 투쟁 준비로 정신없었고, 심지어 2014년 1월 시무식을 하던 날조차도 대국민 홍보지를 만드느라 바빴다. 노조 사무실엔 비장한 전운마저 감돌았다.
해묵은 주제 의료민영화, 어떻게 쉽게 알릴 것인가의료민영화는 이미 해묵은 주제였다. '지겹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참여정부 때부터 논란이 됐으니 그럴 만도 하다. 사람들이 병원에 갖는 불신도 깊었다. 이미 병원비는 비싸고, 건강보험은 무능하다는 인식, 보장성 높은 민간보험 하나 안 들어놓고 병원에 가는 것은 손해라는 인식.
그래서 의료민영화랍시고 해봤자, 더 나빠져봤자 거기서 거기라는 게 여론이었다. 심지어 보건복지부가 누리집에,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은 '의료민영화가 아니'라고 대문짝만 하게 걸어놓았으니, 참으로 쉽지 않을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정부에선 '투자활성화'라 부르고, 우리는 '의료민영화'라 부르는 것. 이것은 상법상 자회사 설립을 통해 병원에서 건물임대업까지 할 수 있도록 부대사업의 범위를 대폭 허용해주는 정책으로, 의료법으로 규제하고 있는 병원의 영리행위를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다.
이렇게 되어 병원이 '합법적으로' 돈벌이에 나서게 되면 의료 공공성이 약화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결국 국가가 책임져야 할 국민의 건강권을 자본에 맡기겠다는 정부의 이 '어마무시한' 정책을 어떻게 쉽게 설명할 것이냐, 어떻게 쉽게 알리느냐 하는 게 최대 난제였다.
큰 숙제를 받은 나는 자신이 없었고, '의료민영화 저지, 의료공공성 강화, 국민건강권 사수'라는 이 엄청난 사명을 뒷받침할 홍보물을 잘 만들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시간은 없었고 마음은 바빴다.
주말을 꼬박 바쳐 만든 첫 번째 홍보지는 지부에 도착하자마자 '글자가 작다', '내용이 어렵다', '유니세프 팸플릿 같다', '노인들이 이걸 다 어떻게 보냐'는 원성이 빗발쳤다. 그런 얘기를 듣고 있자니 한숨과 눈물이 동시에 터져나왔다. 확 도망쳐버릴까 생각도 했지만 나는 도망치지 못했다.
도망치고 싶었던 '큰 싸움'... 이제 의심은 사라졌다
그래도 계속 포기하지 않고 이것저것 만들다 보니 '내용이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처음보다 줄어들었고, 서명운동에도 탄력이 붙었다. 다른 시민단체에서도 홍보물을 좀 보내달라고 요청해왔다. 나는 날마다 반나절 정도를 홍보물이며 배지를 택배로 보내는 일 때문에 바빴지만 싫지 않았다.
서명운동을 시작한 지 한 6개월 만에 50만 명 가까운 사람들이 오프라인 서명에 참여함으로써 이 정부의 의료민영화 정책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특히 10대 청소년들이 서명운동의 주력부대로(?) 참여했고, 그 다음에는 아이가 있는 엄마들의 참여가 빗발쳤다.
동네마다 있는 인터넷 육아카페에서 서명운동 조직(!)에 나서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직접 만든 의료민영화 반대 현수막을 집 베란다에 걸어 사진을 찍어 올리기도 했다. 내가 만든 이미지를 SNS 프로필 이미지로 사용하는 사람들을 보면 생면부지의 관계지만 괜히 반가웠다.
노조가 움직이고, 국민들이 움직이고 있었지만 정부는 가만히 있었다. 지난 6월 11일 의료법을 위반하면서까지 의료법인이 상법상 자회사를 세울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발표했고, 병원 내 부대사업 확대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지금 의료법상 의료법인은 영리행위가 금지돼 있다. 그리고 병원에서 발생한 수익은 무조건 병원으로 재투자돼야 한다. 그런데 정부가 입법예고한 개정안은 의료법을 무시하고 병원이 무한한 돈벌이를 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내용이다. 무한한 돈벌이는 결국 환자 주머니에서 나오고.
소식이 발표되자마자 유지현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이 청와대 앞에서 단식농성에 돌입했고 20여명의 노조 사무처 간부들은 매일같이 농성장을 함께 지켰다. 노조 지도부는 밥을 굶고 머리를 깎고, 함께 일하는 우리들은 집에 들어가는 것을 포기하며 싸워야 하는 상황이 힘들었다.
"이렇게 해서 뭐가 바뀌냐"는 말은 비수였다. 나는 태생적으로 '멘탈'이며 체력이 약한지라, 비슷한 비관을 품고 살았다. 정부는 어떤 여론도 눈치 보지 않고 일방통행 했고, 워낙 거침없었다. 의료법 위반, 국회 의결권 무시, 국민여론 무시로 밀어붙이는, 홍길동도 아니면서 의료민영화를 의료민영화라 말하지 않는 정부의 추진력이 새삼 놀라울 정도였다.
하지만 7월 22일은 '뭐가 될까'라는 의심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이미 6월 24일 1차 경고파업으로 3500명이나 되는 보건의료노조 조합원이 거리로 나온 터였다. 임금 인상이나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하는 게 아닌, 보건의료정책 폐기를 요구하는 파업이었기 때문에 조합원들이 참여하는 데 부담이 클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그 예상은 완벽히 깨졌다. 그리고 7월 22일 2차 파업 출정식이 열린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을 6000명의 조합원들이 가득 채웠다.
150만 명이 지지해준 정치파업... '착한 규제' 지키자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시신이 발견됐다는 뉴스가 범람하던 때인 7월 22일부터 23일까지, 인터넷 포털사이트 인기검색어 순위에 '의료민영화'가 '유병언'을 제치고 1위에 내내 올라 있었다. 7월 22일은 부대사업 확대 시행규칙 개정안 입법예고 마지막 날이었다. 사람들은 "유병언은 이미 죽었지만, 의료민영화가 되면 우리가 죽을지도 모른다"며 의료민영화 반대 서명운동에 참여하고, 부대사업 확대 시행규칙 개정 반대 의견서를 제출했다.
그날 하루에만 60만 명이 넘는 국민들이 온·오프라인 서명운동에 참여했고, 전체 서명 참여자 수는 150만 명을 넘었다. 그리고 10만 명 가까운 사람들이 보건복지부에 이 정책을 반대한다는 의견서를 제출했다. 덕분에 7월 22일 보건복지부 홈페이지가 다운되는 일도 있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애플리케이션 업체 '어워드베스트'에서 성인남녀 1180명을 대상으로 현 정부의 의료민영화 정책 찬반여부를 물었고, 무려 88%가 반대한다고 응답했다. 지난 6월 우리 노조와 참여연대, 김용익·이목희 의원실이 공동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보다 18%나 반대여론이 높아진 것이다.
고작 홍보물 반응이 안 좋다고 기죽어서 도망갈 생각이나 하던 나는 내가 미처 눈치 채지 못한 사명감이 사람들의 가슴에서 조용히 빛나고 있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이 큰 투쟁의 일원으로 함께하고 있다는 것도 참 고마웠다.
2차 파업은 7월 26일 일단락됐지만 우리 노조는 다시 3차 파업을 준비하고 있다. 정부가 아직 의료민영화 정책을 폐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진주의료원 재개원투쟁으로 대표되는 공공의료 강화 투쟁도 끝나지 않았다. 속초의료원 노동자들도 최저임금 위반, 노조 탄압 등에 맞서 싸우고 있다.
우리는 국민 누구나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 없이 잘 치료받고 건강해지길 바란다는 진심,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온 '착한 규제'를 강화해 병원에서 세월호 참사 재현을 막아야 한다는 책임감, 돈보다 생명의 가치를 지킨다는 사명감으로 싸웠다. 그리고 그 진심의 깊이가 국민들에게 큰 울림을 줬다고 믿는다.
덧붙이는 글 | 전아름 기자는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선전부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