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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렌시아는 스페인 3대 도시 중 하나이다. 까딸루냐 지방에 바르셀로나 시가 있다면 발렌시아 주에는 발렌시아 시가 있다. 관광지침서에 따라 이곳에 며칠 묵으며 고전 미술관, 현대 미술관, 박물관 등을 둘러보면 아주 알찰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많지 않았기에 우리는 현대미술관만 가기로 결정했다.

나는 토탈 시티의 저기 어디쯤 있으려나?

이곳의 유치원 단체 관람객과 미술관 관람료를 보며 '요란하지 않다'는 공통점을 느꼈다. 서울의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찾으면 어쩌다 보게 되는 우리네 단체 관람 풍경은 얼마나 분주하고 요란하던가. 익숙하지 않은 체험에 관람객에게서 묻어나는 들뜬 느낌이 박물관 전체를 채웠던 기억이 있다.

관람료도 그렇다. 우리나라의 전시는 대부분 일회성 행사로 꾸려지기 때문에 한 번뿐일지 모르는 기회를 위해 비싼 관람료를 흔쾌히 내고는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관람료는 분명 만만치 않다.

여러 세대의 희생으로 이제는 우리도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었으니 문화를 소비할 때 발생하는 이런 요란함, 관람객의 호들갑과 거금을 들여서 봐야 하는 일회용 이벤트도 점차 잦아들 것이다. 아마도....

우리 리씨네가 갔을 당시 현대미술관에는 '토탈 시티'라는 주제로 작품이 전시됐다. 한국인 작가의 작품이라 반가웠다. 차욱태의 작품을 보며 백남준을 생각했다. 영상물을 이용한 설치미술을 모두 백남준과 연결시키는 것이 고작 나의 수준이기에 깊게 감상하기는 힘들었다. 그러다 보니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기 보다는 내 주관적인 느낌과 깨달음에 집중하는 편이다.

발렌시아 현대미술관이다. 설치미술작품 앞에서 한 컷.
 발렌시아 현대미술관이다. 설치미술작품 앞에서 한 컷.
ⓒ 이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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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욱태의 작품은 평범한 일상 속 장면인 지하철 속의 풍경을 표현했다. 순간 작가 정이현이 <달콤한 나의 도시>에서 묘사했던 지하철에 대한 단상이 생각났다. 프랑스인 부부가 지나가며 "일본 작품이네"라고 한다. "한국 작품이에요"라고 말하기에는 내가 그들의 말을 엿들은 것이 되는 것 같아 그냥 일본인 차욱태의 작품으로 두고 말았다.

콜라주 방에 들어갔다. 헝겊의 질감과 색상을 고르고 자신의 모든 예술혼을 담아 한 땀 한 땀 완성시킨 듯한 작품이었다. 하지만 콜라주에 대한 지식이 일천한 나는 깨달음보다 의구심만 자꾸 피어올랐다. 콜라주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겠다. 솔직히 말하겠다. 바느질만 보면 한국 주부 중 한 명이 너끈히 해낼 수도 있을 것 같은 작품이었다. 어둠 속에서 동물적 감각을 뽐내며 정갈하게 가래떡을 썰었던 한석봉 엄마를 배출한 한국이 아니던가.

이래서 내가 무식한 거라는 생각도 했다. 어쩌면 나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 때문에 한 때 예술작품이 극한에 가까울 정도의 정교함을 추구했었나보다. 나 같은 무식쟁이의 의구심과 공격 때문에 보통 사람은 따라하지 못할 정도로 숙련된 기능을 필요로 하는 작품을 만들었었던 것은 아닐까.

이 외에도 여러 작품이 눈길을 끌었다. 초고층 빌딩들 사이로 장대를 걸어 빨래를 말리는 서민들의 주거지를 표현한 중국 작품도 있었다. 모두 '현대화'라는 범주 안에서 고단하고 분주해 보이는 삶의 모습을 담았다. 그냥 다 '현대화'란 범주 안에서 고단하고 분주해 보이는 삶의 모습이다. 여행을 시작하기 직전까지의 나는 토탈 시티의 저기 어디쯤 있었을까?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었을까?

유럽 최대의 해양박물관에서 돌고래 쇼를 보다

발렌시아에 도착한 지 셋째 날이 됐다. 발렌시아 시내로 들어가는 초입, 항구 가까운 곳에 대규모 복합 오락시설이 있다. 영화관과 과학박물관뿐만 아니라 오페라와 콘서트가 열리는 예술관과 해양 박물관도 있다. 이 모든 시설의 설계는 발렌시아 태생의 건축가 산티아고 칼라트라바와 펠릭스 칸델라가 했다고 한다. 건축에 종사하지 않는 나에게는 그닥 중요한 정보는 아니었다.

디자인이 발달한 나라답게 홍보 포스터나 팸플릿의 느낌과 색감도 참 좋았다. 여러 박물관의 팸플릿들을 보던 와중에 해양박물관의 팸플릿 속에서 트리플 악셀을 시도하는 귀여운 돌고래를 발견했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광경이라 생각했기에 이 돌고래를 꼭 보고 싶었다. 이렇게 말했더니 남편은 "왜? 한국 에버랜드에서도 볼 수 있잖아?"라고 한다. 그 대답을 들은 순간 나 또한 "그런가?"하고 착각을 했었다. 하지만 곧장 그건 돌고래가 아니라 물개였다고 말해주었더니 남편은 3초쯤 후 "그랬나? 그런 거 같네"라고 한다.

결국 우리는 유럽 최대의 수족관이라고 홍보하고 있는 '오세아노르라픽' 해양 박물관으로 향했다. 한국에서 본 동물이 물개였는지 돌고래였는지를 고민하며 뇌가 다소 늦게 작동한 탓에 해양박물관 주차장을 놓쳤다. 그래서 저쪽, 아주 저~쪽에 있는 과학관 근처에 주차를 하고 10분을 넘게 걸어서 돌아왔다.

어제 밤에 내린 비의 기운이 아직 햇빛을 붙잡고 있어서 천만다행이었다. 안 그랬다면 현과 주는 앓는 소리의 강도를 조절하며 아빠와 아이스크림 협상을 오래도록 했을 것이다. 조금의 에너지라도 아껴 써야 하는 여행자끼리 내분이 일어나는 것은 제살 깎아 먹기나 마찬가지다. 되도록 피하는 것이 진리다.

다른 곳에 비해 해양 박물관은 입장료가 무지하게 비싸다. 일반적인 박물관 관람료의 3배가 넘었다. 입장료에는 영화 감상을 제외한 모든 쇼와 박물관 내 전시관 관람료가 포함되어 있었다. 물론 돌고래 쇼도 포함이다. 주는 3살이라 공짜였지만, 7살인 현은 어른 값의 6분의 5에 해당하는 값을 내야 했다. 도합 68유로다. 돌고래 쇼는 하루에 12시와 5시 딱 두 차례 있었다. 12시 공연을 놓치지 않으려고 시작 시간보다 서둘러 갔다. 덕분에 중앙 두 번째 줄에 앉을 수 있었다.

시간이 가까워오자 관람석이 꽉 찼다. 인기가 많은 쇼였다.
 시간이 가까워오자 관람석이 꽉 찼다. 인기가 많은 쇼였다.
ⓒ 이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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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의 콘셉트는 '사람과 돌고래의 다이빙 배틀'이었다. 공연장을 달걀 프라이로 가정했을 때 흰자 부위에서는 돌고래가 쇼를 하고 노른자 부분에서는 다이버들이 쉬지 않고 뛰어내렸다. 처음에는 다이버들의 인종, 성별, 신체조건이 너무 제각각이라 좀 우스꽝스러워 진지하게 감상하기 힘들었다.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롭고 웃겼다. 그들이 다이빙 높이를 극한까지 올릴수록 다이버들이 안쓰러우면서도 대단하게 여겨졌다.

"저렇게 하면서까지 돈을 벌어먹고 살아야겠지? 참 안쓰럽다. 저 높이에서는 웃는 게 웃는 것이 아닐 거야!"
      
공연이 후반부로 갈수록 조련사는 돌고래 입에 물고기를 넣는 횟수와 양을 늘렸다. 마치 시험 잘 보는 조건으로 게임기, 스마트폰 등을 아이 입에 넣어주려는 부모 같았다. 부모는 조련사요, 아이는 돌고래인가? 그렇다면 대한민국에는 수많은 조련사와 돌고래가 살고 있다는 얘기다. 앗, 내가 생각해도 너무 독설이다. 너만 잘난 줄 아냐는 원망과 비아냥이 벌써부터 느껴진다.

현, 엄마는 너를 위해 뭐든지 할 수 있어

부모 손을 잡고 공연장을 찾은 많은 아이들 중 6명이 뽑혀 돌고래를 만져 볼 수 있는 행운을 안았다. "말만 통했어도 나도 손 번쩍 들어 미션을 수행했을 텐데... 그럼 우리 현이도 저기 뽑혀 만천하에 미모를 뽐내며 호연지기의 마음을 키우는 기회가 됐을 텐데..."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높다. 보는 내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높다. 보는 내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 이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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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고래들은 쇼를 위해 쉼없이 점프했다.
 돌고래들은 쇼를 위해 쉼없이 점프했다.
ⓒ 이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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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별된 6명의 아이는 돌고래를 만져보는 행운을 누렸다. 자기 소개를 한다. 이름과 나이를 말하는 것 같다.
 선별된 6명의 아이는 돌고래를 만져보는 행운을 누렸다. 자기 소개를 한다. 이름과 나이를 말하는 것 같다.
ⓒ 이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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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션이 '크고 길게 소리 지르기'인 줄 눈치껏 알았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만약 그랬다면 '엄마'라는 이름으로 모든 것을 했을 것이다. 혹시나 국적이나 인종의 차이 때문에 다른 사람들로부터 눈요깃감이 도는 것을 감안하고서라도 위축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경험 없이도 현에게 돌고래 쇼의 감동은 매우 커 보였다. 꽤 긴 시간 눈도 깜박거리지 않고 빠져들었다. 그래도 아쉽다. 그 아이들은 돌고래를 손으로 만져보는 기회를 가졌는데... 돌고래의 감촉은 어떨까. 뽀득뽀득한 느낌이 날까?

부모는 다 줘도 자식은 늘 모자란다 하겠지?

매표소에서 줄을 섰을 때부터 바로 앞뒤였던 한 가족과 관람석 자리도 가까웠다. 자연스레 눈길이 갔다. 스페인 부모에게 입양된 듯 보이는 중국 남자 아이가 있었다. 나이는 현이 또래 정도로 보였다. 그 아이는 생김새가 비슷한 우리 가족을 흘끗대며 쳐다봤다. 아이의 부모가 그것을 의식하고 있음을 나 또한 의식했다.

평소 사람의 생김새와 몸에 대해 '껍데기', '몸뚱이'일 뿐이라고 애써 폄하했다. 그러나 그 '고작' 생김새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이 가족은 얼마나 불필요한 정신적 에너지를 소진하며 살아왔을까 생각하니 그 아이와 부모가 조금은 안쓰러웠다. 미국에서 선교의 일환으로 입양을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또 대리모를 통해서라도 자식을 갖기 위해 바다를 건너오는 호주인들의 이야기도 들려온다. 자식이란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관람하는 내내 리씨네 가족과 옆에 있는 동양아이 입양가족은 꾸준히 서로를 의식했다.
 관람하는 내내 리씨네 가족과 옆에 있는 동양아이 입양가족은 꾸준히 서로를 의식했다.
ⓒ 이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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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개의 관 중 '오션관'에는 상어가 있다. 아이들은 상어를 주로 동화책에서 봤다. 한 번 아니면 두 번 한국에 있는 아쿠아리움에서 봤을 텐데 마치 한 번도 안 봤던 것처럼 보겠다고 난리다. 그곳에서 우연히 한국인을 만났다. 어두운 인공 바다 속에서 한국어로 재잘대는 아이들의 목소리를 놓치지 않고 반응하는 그녀의 옆모습과 표정을 나 또한 놓치지 않았다. 어두컴컴했지만 그녀의 차림새, 꾸밈, 화장법 등이 한국에서 곧장 날아온 느낌은 아니었다. 같은 말을 쓰는 한국인임을 확인한 후 인사를 나눴다. 그녀는 쉼 없이 그녀의 이야기를 했다.

"한국에는 10년 전에 가 보았어요. 못 간 지 한참 되었어요. 어렸을 때 남미에 살다가 13살쯤 미국으로 갔어요. 거기서 대학교를 졸업한 후 직장 좀 다니다가 대학원을 준비하는 중이었어요. 스페인에서 하는 괜찮은 프로그램이 있어서 지금 한 달 코스로 마드리드에 있는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어요." 

한 나라에서 이사 다니는 것도 어려운데 이 나라 저 나라의 국경을 넘고 넘어 삶의 근거지를 옮긴 부모가 대단해 보였다. 그러나 정작 더 대단한 것은 그녀가 한국어를 참 잘한다는 점이었다. 대학원에 가서는 철학 공부를 하고 싶다고 했으나 부모님은 썩 좋아하지는 않는단다. 오후 6시 차로 다시 마드리드로 돌아간다고 했다. 이번 코스에서 한국 학생을 만나고 싶다고도 했다. 나는 스페인에는 언어 전공자가 아닌 이상 공부하러 오는 한국 사람은 별로 못 봤다고 찬물을 끼얹었다. 비록 찬물을 끼얹긴 했지만 내일부터 시작되는 프로그램에 그녀와 마음도 코드도 잘 맞는 괜찮은 한국학생이 있길 간절히 바랐다.

여하튼 그녀는 이메일 주소와 '영'이라는 이름을 알려주며 마드리드 근처에 올 것 같으면 연락을 달라고 했다. 우리가 마드리드 갈 일은 없다는 게 많이 아쉽고 미안했다. 그녀가 시간이 더 있었더라면 우리 캠핑장으로 초대해서 이야기를 더 나눌 수도 있지 않았을까. 아니, 어쩌면 갈 길이 다르고 각자의 앞에 놓인 시간의 사용 내용도 다른 우리는 딱 여기에서 헤어지는 게 좋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인사를 나누고도 두 개의 관에서 더 얼굴을 보았다. 한 번은 그녀가 뒤쳐져 오던 남편을 향해 밝게 아는 척을 했다. 그 다음은 내가 어둠 속에서 그녀의 등을 살짝 치며 활짝 웃어주었다. 웃음이 헤펐던 이유는 서로의 외로움을, 반갑지만 아쉽게 헤어져야 하는 마음을 말하지 않아도 알았기 때문이었다.

"한국 많이 좋아졌어요?"
"많이 쾌적해지고 좋아졌어요."
"한국에 가고 싶은데 가면 또 왕따 당할까봐 무서워요."
"이젠 우리나라도 영처럼 다양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아요. 예전보다는 더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을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다음에 그녀가 한국을 찾을 때는 왕따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부모 노릇하기 참 어렵다

돌아오는 길이었다. 이리저리 처자식을 이끌고 대륙을 넘나든 영의 아버지가 대단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그녀는 말은 하지 않고 표정과 짧은 감탄사로 자신의 대답을 대신했다. "그런 부모 만나 겪은 내 고통도 엄청나게 컸답니다" 정도의 표현은 아니었을까? 내 삶이 아니었기에 전혀 고민해 본 바는 아니지만 부모의 결정에 따라 살아야 하는 국가가 이곳저곳 바뀌는 것도 마냥 좋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초등학생 한 명을 전학 시키는 것도 아이의 혼란과 고통을 줄이고 빠른 적응을 위해 언제가 가장 적당한지 심각하게 고민한다. 그렇게 생각하니 영이 미처 표현하지 않은 원망도 이해가 된다.

영의 부모는 자식에게 세상에서 제일 고통이 적고 미래가 보장될 것 같은 사회를 찾아주려고 했다. '결 좋은 인생의 멍석'을 깔아주고자 했을 텐데... 영의 부모는 쪼그라드는 가슴을 부여잡고 대륙을 넘었겠지만 자식의 비단결 같은 마음에는 씻을 수 없는 생채기를 남긴 것만 같다. 왠지 나와의 만남과 대화가 그녀에게는 담배만 생각나게 했을 거란 생각에 좀 미안했다. 그래도 감당할 수만 있다면 상처는 자꾸 표현해서 햇빛을 보게 해야 점차 마음결이 보송보송해질 것이다.

영은 한국에서 나서 남미에서 유년을 보내고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지금까지 살고 있다.
 영은 한국에서 나서 남미에서 유년을 보내고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지금까지 살고 있다.
ⓒ 이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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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은 힘들었겠지? 원망스러웠겠지? 그래도 이거 하나는 잊지 마. 나를 비롯한 세상 많은 부모의 모든 선택과 결정에는 '내 새끼의 행복과 미래를 위해서'가 가장 중요한 기준이야."

박물관을 나와 차에 오르니 4시간이나 머물러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인포메이션 직원이 "최소 3시간은 관람하세요"라고 했었는데 그 시간도 넘긴 것이다. 집으로 돌아와 체험학습 내용을 과학지식과 연결 짓기 위해 '여러 가지 바닷물고기'란 자연과학 동화책을 의도적으로 아이에게 들이밀었다. 주는 재밌고 신기하게 보았다.

하지만 막상 한글을 익혀야 하는 7살 현은 책에는 관심도 없고 해먹에서 뒹굴뒹굴하기만 한다. 일곱 살이 한글도 제대로 못 읽는 주제에 아주 배짱이다. 이렇게 말하면 그녀에게서 "엄마가 안 가르쳐 줬잖아"라는 더 대단한 답변만 돌아오니 뭐라 할 수도 없다.

"오 신이시여~ 왜 제게는 나면서부터 '가갸거겨...'를 하고, 두 돌 지나자 'ABCD...' 하는 자식을 주시지 않았습니까?"

세 살에 천자문을 익혔다는 둥 어쩠다는 둥 그런 이야기에는 귀를 닫아라. "아이가 아침에 일어나 자기 방에 혼자 들어가 책을 보고는 하더니 스스로 한글을 깨쳤다"는 옆집 아줌마 말에도 귀를 닫아라. 그것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내 새끼를 마음껏 인정해주고 조건 없이 사랑할 수 있는 비결 중 하나다. 또 하나, 해양박물관 관람료나 체험학습비 등의 본전을 생각하면 안 된다. 눈에 보이는 결과를 즉시 보려고 하지 마라. 자칫 다그치다 본전도 찾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하나니... 흐엉~ 부모 노릇 어렵다.

덧붙이는 글 | 2012년 맞벌이 엄마, 아빠, 5살, 7살 두 딸은 직장과 유치원을 쉬었습니다. 그리고 쉼(태국), 사랑(터키), 도전(유럽캠핑)을 주제로 5개월간 여행하였습니다. 본 여행 에세이는 그 중 도전을 주제로 한 유럽캠핑에 관한 글입니다.

이 기사는 기자의 개인 블로그에 실린 글을 보강해서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합니다.



태그:#유럽캠핑, #리씨네 여행기, #스페인, #발렌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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