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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울어진 배 안에서 이동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4월 16일 세월호에는 한 명이라도 돕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동분서주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단원고 담당 여행사 직원 김승재(49)씨도 그 중 하나다.

김씨는 사고 당시 식사를 마친 단원고 학생들을 둘러보기 위해 3층과 4층을 오르락내리락하다 계단에 있었다. 배가 기울자 김씨는 계단 난간을 붙잡고 4층으로 올라갔다. 그는 아이들에게 구명조끼를 입히기 위해 서둘러 선수 쪽으로 이동했다. 김씨는 7월 22일 세월호 선원 공판에 증인으로 나와 "쉽진 않았지만, 이동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어쨌든 이동할 수 있었다"고 증언했다.

그 역시 처음엔 승무원들의 안내를 기다렸다. 단순한 좌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승무원들은 조타실과 연락이 안 된다며 당황해했다. 김씨는 "저도 그때부턴 '아이들 구명조끼 입혀야 하는 것 아니냐'고 소리쳤다"며 "아이들이 구명조끼를 못 찾아서 (4층 우현 선수 쪽)객실로 들어가 도와줬다"고 말했다. 그는 선미 쪽 객실에서도 구명조끼를 못 찾고 있다는 소리에 다시 몸을 움직였다. 하지만 기울어진 배에서 뛰어다니다 그만 좌현 로비 쪽으로 미끄러졌다. 김씨는 이때 엉덩이와 다리를 다쳤다.

로비 쪽에도 사람들이 뒤엉켜 있었다. 김씨는 "여자 승무원과 일부 학생, 일반인, 그리고 양대홍 사무장과 교감 선생님이 있었다"며 "승무원들은 계속 '해경이 올 때까지 그대로 있으라, 기다리면 해경이 올 것'이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즈음 그는 바다를 봤고, 배가 계속 가라앉고 있음을 느꼈다. 김씨는 "탈출하라는 방송을 했다면 4층에선 많은 학생들이 탈출했다"며 안타까워했다.

로비에서 15분쯤 있던 김씨는 해경 보트를 보고 학생들과 함께 좌현 갑판으로 나갔다. 그는 "구조대가 왔으니 다 구조될 것으로 알았다"며 "(배) 뒤에서부터 구조를 하기에 한참 대기했다"고 설명했다. 공소장에 따르면 김씨는 학생들을 먼저 구명보트에 태운 뒤 바다에 뛰어들어 이미 펼쳐져 있던 구명벌 위에 대기하다 구조됐다.

그런 김씨 역시 죄책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7월 22일 그는 "아이들이 많이 희생돼서 우울증이 생기고, 감정 기복이 심해졌다"며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또 '선원들이 증인 등을 구조하지 않아서 정신적 고통을 받는 것이냐'는 한 변호인의 질문에 "분노가 있다"고 답했다.


태그:#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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