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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8월 15일부터 세월호 조리부에서 일해 온 김종임(51)씨는 지난 13년 동안 꾸준히 산을 타러 다녔다. 그는 이 경험이 자신의 목숨을 구했다고 생각한다. 7월 22일 세월호 선원 공판에 증인으로 나온 김씨는 "줄 없이는 (높은 곳으로) 못 올라왔을 것"이라며 "난 줄이 없었지만 운동을 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물론 그에게도 탈출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사고 당시 그는 주방 쪽에 동료들과 있었다. 배가 기울면서 식탁이 쓰러졌고, 냉장고 문이 저절로 열렸다. 기름이 쏟아져버려 바닥은 미끌미끌했다.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이 나왔지만 김씨와 동료는 높은 데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들은 싱크대를 붙잡고 위쪽으로 올라가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몇 번씩 굴러 떨어졌다. 김씨는 이때 갈비뼈가 부러졌다.

고통을 느낄 새도 없었다. 자꾸 굴러 떨어지는 상황이 더 힘들었다. 김씨는 "식당에서 굴러 떨어졌을 때, 10분 있다가 다시 사원식당까지 올라가서 바깥으로 나가려고 했을 때, 이렇게 두 번 (탈출을) 포기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굴러 떨어지나 물에 빠져죽으나 똑같은데 해보기나 하자라는 심경"으로 그는 다시 도전했다. 의자를 이용해 간신히 식당 뒤편 조리부 객실(3층 선미 우현) 쪽으로 이동했다.

식당에서 만난 조리장 최찬열씨와 함께 잠시 숨 돌리고 있는데 맞은편에서 소리가 났다. 김씨는 '어떻게 하냐'고 소리를 질렀다. 그 방향은 3층 선미 좌현 기관부 객실이었고, 여기에 모여 있던 사람들은 박아무개 기관장 등 기관부 선원 7명이었다. 김씨는 "제가 '어떻게 나가야 하냐'고 묻자 '(그쪽에서) 알아서 나가라고 했다"며 "근데 나갈 수 없었다, 최찬열씨 때문에 살아나왔다"고 말했다.

검사 : "박 기관장이 '내가 조리부까지 어떻게 신경 쓰냐'라고 했습니까?"
김종임씨 : "네, 사실입니다."

김씨는 최 조리장이 구명조끼 있는 장소를 알려줘 구명조끼를 챙겨 입을 수 있었다. 그런데 김씨는 탈출하자는 조리장의 말을 '구명벌을 터뜨리자'는 얘기로 잘못 알아들었다. 두 사람은 우현 갑판 쪽으로 나와 계단으로 올라갔다. 김씨는 조타실 근처에 있는 구명벌을 터뜨려야겠다는 생각에 자꾸 위쪽으로 이동하던 중 4층과 5층 사이 계단에서 헬기로 구조됐다. 4월 16일 오전 9시 34분경이었다.

그는 "당시 주방에 3명이 있었는데 그 중 저만 살아나왔다"며 "그만큼 (탈출이) 힘들었다"고 울먹였다.


태그:#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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