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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수라장이었다."

7월 23일 세월호 선원 공판에 증인으로 나온 생존자 김종서(59)씨는 사고 당시 상황을 이렇게 표현했다. 용접기사인 그는 제주도에 일을 보기 위해 동료 4명과 함께 4월 15일 세월호에 올라탔다. 숙소는 3층 선수 다인실(플로어룸)이었다. 이곳은 칸막이가 없어 사고 당시 많은 사람들이 왼쪽으로 넘어지면서 부상을 입은 장소다. 김씨도 이때 다리 근육을 다쳤다.

사고 직후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이 나왔다. 김씨는 약 30분 동안 '가만히' 있었다. 하지만 배가 점점 기울어지면서 창문으로 물이 들어오는 것 같았다. 김씨 일행은 우선 한 사람을 무등을 태워 입구로 올려 보낸 다음, 그가 던져준 모포를 잡고 하나둘씩 빠져나왔다. 김씨는 "혼자 있었음 못 나왔다, 일행이 있었으니까 같이 도와서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방에서 나온 뒤 이들은 20분 가까이 대기하고 있었다. 정확한 상황을 알 수 없었던 데다 선내에선 줄곧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만 들렸다. 그는 "만약 침몰 상황을 알았다면 다른 행동을 했을 것"이라고 했다.

배는 점점 더 기울었다. 김씨는 몸을 움직였다. 로비 쪽으로 가보니 물은 무릎까지 찬 상태였다. 안내데스크에 있던 승무원 박지영씨에게 '어떻게 하냐'고 묻자 그는 '올라가는 게 낫다'고 했다. 김씨는 "지영이가 의자를 놔줘서 (그것을 밟고) 4층으로 올라갔다"고 했말다.

4층 우현 키즈룸 옆 출입문 근처로 어렵게 이동해보니 소방호스가 쳐져있었다. 김씨는 그 소방호스를 잡고 우현 갑판으로 나갔다. 배가 90도 가까이 기울어졌지만 오히려 걷기엔 수월했다. 밖으로 나간 김씨는 도착해있던 해경 보트에 올라탔다.

그는 탈출과정에서 정강이를 다쳤지만 상황이 워낙 긴박해 아픔조차 모르고 있었다. 현재는 정형외과뿐 아니라 정신과 치료도 받는 중이다. 참사 99일째였던 7월 23일, 김씨는 "자꾸 사고 당시 상황이 생각난다"며 고통을 호소했다.


태그:#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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