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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서초동 사옥
 삼성전자 서초동 사옥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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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요. 오히려 이번 판결이 특허 보상제도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해요."

그는 씁쓸한 웃음을 내비쳤다. 안아무개(50)씨의 말이다. 그는 현재 삼성전자에서 수석연구원(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지난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그와 마주 앉았다. 1년여 만이다.

기자가 '7월에 나온 (2심) 소송에선 안 부장의 주장이 다 받아들여진 것 같다'고 말하자, 그는 "그 때문에 이번 판결이 더 이해가 되질 않는다"고 답했다. 회사를 상대로 소송에 이겨놓고도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이날 그는 대법원에 상고했다.

왜 그랬을까. 안 수석연구원은 지난 2012년 1월 삼성전자를 상대로 직무발명에 대한 보상금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그동안 퇴직 연구원이 회사를 상대로 발명특허 보상을 요구한 적은 있었다. 하지만 안 씨처럼 현직 연구원이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은 처음이었다. 이 때문에 그는 소송을 진행하면서도 언론에 알려지지 않았다.

회사 재직중 발명한 특허 보상을 두고 기나긴 법정 다툼

작년 5월께 기자와 처음으로 만나 회사와 자신의 발명 특허를 두고 소송을 벌이고 있는 사실을 털어놨다.(관련기사: 삼성 현직 연구원, 회사에 "305억 특허 보상해달라") 이미 1년 3개월째 법원에서 회사와 줄다리기를 벌이면서 마음의 상처가 큰 탓이라고 했다.

그는 당시 "회사에서 10년 넘도록 휴대폰을 만들어 사용하고 있으면서 법정에서 저의 특허는 무의미하고 무효하고 주장하더라"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너무 허탈하고 자괴감까지 들 정도였다"고 말했다.(관련기사: 나는 왜 회사에 305억 특허보상금을 달라했나 )

지난해 7월 서울중앙지법 민사1부는 안 연구원이 재직중 발명한 2개의 특허 보상 가운데 한가지만을 인정했다. 대신 삼성전자쪽에서 주장한 특허 무효나 보상금청구권 시효 소멸 등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법원은 회사가 안씨에게 보상금으로 1092만5589원을 주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안씨와 회사 모두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2심에 항소했다.

다시 1년여 법정공방이 이어졌다. 회사는 여전히 안씨의 특허 자체가 무효이고, 보상금을 청구할 시간도 지났다고 주장했다. 안씨는 "회사쪽에선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나는 1심에서 인정받지 못한 첫번째 특허에 대해 직접 실연을 해가며 설명했다"면서 "결국 2심에서도 두가지 특허 모두를 인정해줬다"고 설명했다.

안 연구원이 갖고 있는 발명 특허는 크게 두 가지다. 첫번째는 삼성전자 휴대폰에서 이름을 검색할 때 키패드에 한글 초성으로 검색하는 방법이다. 또 하나는 이름 검색 때 초성을 그룹으로 묶어 검색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박근혜'에서 초성인 'ㅂ'을 누르면 'ㅂ'으로 시작하는 이름들이 화면에 뜨는 것을 말한다. 또 'ㅂ,ㄱ,ㅎ'을 연달아 누르면 바로 '박근혜'를 보여주는 것도 안 연구원의 발명 특허다. 일명 '휴대폰 초성 검색 특허'라고 불린다.

1심 재판부는 첫번째 검색 특허에 대한 보상 의무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의 특허가 이미 출원 당시 알려진 기술로부터 도출이 가능한점, 삼성전자가 특허 발명으로 독점적 이익을 얻지 못했다는 점 등을 들었다.

하지만 2심 재판부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출원당시 안씨 발명 특허가 모두 공지돼 누구가 자유롭게 실시될수 있다는 충분한 증거가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특허발명의 보호가치를 인정하면서, "회사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원고(안씨)에게 정당한 보상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삼성 특허 소송
 삼성 특허 소송
ⓒ 오마이뉴스 고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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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안씨의 검색특허를 다 인정했지만..."특허보상 무력화나 다름없어"

결국 2심 재판부는 안씨의 두가지 발명특허에 대한 보상금 청구를 모두 인정했다. 그러면서 회사는 안씨에게 보상금 2185만원을 주라고 판결했다. 지난 1심 재판부가 내놓은 보상금의 딱 2배였다.

안씨는 "법원에선 2가지 특허 보상을 모두 인정하면서도 보상금을 결정할때는 1심때와 별반 차이가 없었다"고 말했다. 안씨쪽 법률대리를 맡은 김아무개 변리사는 "2심 재판부 역시 독점권 기여율을 너무 자의적으로 판단하것이 아닌가 싶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보상금을 산정하면서 "사용자(삼성전자)가 특허를 사용하면서 얻을 이익과 발명자의 공헌도, 발명자의 기여율 등을 감안해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김 변리사는 "회사가 얻을 이익 가운데 독점권 기여율을 지난 1심때는 0.1%로 정한 반면 2심때는 0.2%로 정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독점권 기여율이란 독점적 권리를 행사하는데 해당 특허가 얼마나 사용됐는지를 따지는 것이다. 김 변리사는 "안 부장의 특허가 사용된 휴대폰의 매출액을 법원에서도 136조원으로 산정했다"면서 "여기에 직무발명기여도와 실시료율(각 2%) 등도 모두 1심과 같았다"고 전했다.

김 변리사는 "2심 역시 안 씨의 특허보상 청구의 손을 들어주면서도 보상금 산정에 들어가서는 회사쪽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현직 연구원의 사상 유례없는 직무발명 보상 소송에 대해 법원 스스로 거액의 보상 판결을 내리기가 부담스러웠을 거라는 것이다. 안씨쪽에선 이날 대법원에 상고했다. 삼성전자 역시 항소심 판결에 불복에 역시 상고했다.

안 수석연구원은 이날 기자와 헤어지면서 토로했다. 그의 말이다.

"돈 액수가 문제가 아니예요. 우리 회사 연구원들이 그래요. '136조원의 매출에 기여했다는 특허를 내더라도 2185만원 정도만 인정되는구나'라고요. 아예 '그것 얻어내려고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하느냐'는 말까지 나와요. 결국 직원들의 창의성이나 연구하려는 동기부여는 더 약해질거구요. 아예 특허보상제도 자체를 무력화시키는 것이나 다름없어요."


태그:#삼성전자, #직무발명특허, #휴대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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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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