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미식가들의 입소문을 타고 알음알음 알려진 전남 광양의 밥집을 찾았다. 할머니 두 분이 운영하는 곳이다. 이 집 음식은 남도의 맛이 오롯한 데다 남도 특유의 게미('씹을수록 고소한 맛, 그 음식 속에 녹아 있는 독특한 맛'의 전라도 방언)가 가득한 집이다. 퓨전이라는 이름을 달고 알 수 없는 국적불명의 음식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이런 맛집을 찾았을 때의 기쁨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언젠가 이 집을 찾아갔다가 밥도 못 먹고 돌아선 적이 있다. 주로 탕 위주의 음식을 팔기 때문에 1인분을 판매하지 않는 곳이기 때문이다. 맛돌이는 늘 혼자 맛집을 찾아다니므로 이런 경우 참 난감하다. 이번에는 미리 전화 예약을 하고 지인과 동행했다.
까실까실한 호박잎 쌈 식당이 위치한 곳은 광양의 구도심이다. 세월도 멈춰선 듯 골목길은 한산하기 그지없다. 빈 가게가 유난히 눈에 띈다. 미닫이문을 "드르륵" 열고 식당으로 들어서니 압력 솥단지가 콧김을 뿜어내고 있다. 허름한 외관에 비해 식당의 실내는 비교적 깔끔하다.
생우럭이 준비 돼 있다고 해서 우럭매운탕을 주문했다. 할머니는 "아침 재래시장에 갔는데 여름철이라 생선 식재료가 마뜩찮다"고 했다. 매운탕에는 우럭과 깔따구(농어 새끼)가 들어가 있었다.
상이 차려졌다. 유난히 시선을 사로잡는 메뉴가 있다. 호박잎 쌈이다. 양념한 멸치젓에 까실한 호박잎 쌈은 입맛을 사로잡을 만했다. 오이 나물과 멸치볶음, 새우꽈리고추볶음 등의 반찬들도 입에 착착 붙는다. 옛 시절의 소박한 계란찜도 있다.
이 집은 주문과 동시에 밥을 짓는다. 그래서 밥맛이 유독 빼어나다. 갓 지어낸 고슬고슬한 밥맛은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다. 생선매운탕은 방아잎을 넣고 끓여내 방아잎 특유의 향이 매혹적이다.
"매운탕은 1인분 못해라... 그리고 즉석 밥이라 1인분이 안 돼요. 이해를 해주셔야 해요."할머니는 혼자 온 손님들에게 "음식의 특성상 1인분이 안 되기 때문에 이해해달라"며 양해를 구했다. "매운탕의 국물 맛이 정말 좋은데 특별한 비법이 있느냐"고 묻자 다시마와 멸치로 육수를 내 끓인다고 했다. 더불어 식당의 자랑거리는 갓 지어낸 특별한 밥맛이라고 전했다.
"다시마와 멸치로 육수를 내요, 매운탕 맛은 깔끔해야 하니까요. 옛날밥상이라고 찾아오는 분들이 많아요, 다들 밥 맛있다고 인사하고 가요. 그게 우리 집의 자랑이지요."아련한 추억의 밥상. 진짜 밥맛나는 집이다. 포만감에 숟가락을 내려놓을 즈음 숭늉이 나온다. 구수하고 뜨끈뜨끈한 숭늉을 먹고 나니 속이 확 풀린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다음블로그 '맛돌이의 오지고 푸진 맛'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