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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주불사(斗酒不辭) 하는 한 선배가 있었다. 이 선배는 주점에서 술을 시킬 때 점원이 "무슨 술 드릴까요?"라고 물어보면 "아가씨는 뭐 좋아해요?"라고 다시 물어본다. 그 점원이 "저는 ㅇㅇ소주요" 또는 "△△소주요"라고 하면, "아가씨가 좋아하는 술로 줘요"라고 한다. 소주만이 아니라 막걸리를 시킬 때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재미있는 선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골라봤자 그 술이 다 그 술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던 것 같다.

요즘은 각 지역에서 좋은 술들을 많이 내놓고 있다. 그러나 대형 주류회사의 공급가격 후려치기 경쟁에 밀려 맥을 못 추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당연히 소비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폭은 넓지 않고, 어느 술을 먹어도 특별한 감동을 느낄만한 술이 없다. 그러다보니 희석식 소주나 값싼 막걸리에 과실농축액을 섞어 먹거나, '쓰나미주'이니 '수류탄주'니 하는 각종 폭탄주 제조법이 등장하기도 한다.

2012년 말 기준 우리나라 주류 제조면허 현황을 보면 총 1792개로 이 중 탁주가 873개, 48.7%로 전체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한다. 우리나라 사람이 가장 많이 마시는 술인 소주는 증류식, 희석식을 합해 제조면허를 보유한 곳만도 69개이다.  

자료출처: 국세청
▲ 2012년 말 기준 국내 주류별 제조면허 현황 자료출처: 국세청
ⓒ 우리술과천연식초연구회 향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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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속주와 지역 특산주로 지정된 것만 해도 628개로 전체 주류제조 면허의 35%를 차지한다. 이 중 각 지역에서 자체 브랜드를 가지고 출시되는 막걸리 수만 해도 1천여 종을 넘고 있다. 하지만 실제 음식점이나 주점에서 판매되고 있는 술 종류는 손가락 안에 겨우 꼽을 정도이다.

자료출처: 국세청
▲ 2012년 말 기준 민속주와 지역특산주 제조면허 현황 자료출처: 국세청
ⓒ 우리술과천연식초연구회 향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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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아산시에 소재하고 있는 온아탁주제조장(구 둔포양조장) 최덕영 대표는 얼마 전 우리 쌀과 직접 배양한 누룩, 거기에 배를 발효시킨 천연재료로 빚은 쌀 막걸리를 개발하여 일본과 수출계약이 성사 직전까지 갔었다. 그러나 "대형 주류회사의 가격 공습과 마케팅 전략에 밀려 고배를 마셨다"고 한다. 이 양조장은 1949년에 문을 열어 6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지역의 대표적인 양조장임에도 불구하고, 최 대표는 "대형 주류회사에서 우리가 낼 수 있는 가격의 1/3가격으로 공급을 해대니 지방에서도 지역 특산주를 찾기 힘들다"고 한다.

주류판매자 입장에서도 영업이익이 좋은 술만 취급하다보니 소비자로서는 우리 술을 다양하게 접할 기회도 없거니와 몇몇 대형 주류회사의 소주, 맥주, 막걸리 맛에만 익숙해져 버렸다. 값싼 술과 획일화된 술은 장기적으로 우리 주류산업 발전을 막을 뿐이다. 특히 우리 전통술은 사람의 손맛이 필요한 자연발효식품으로 프리미엄급 명주가 지역에는 참 많다. 소비자들이 접해보지도 못한 채 시장에서 사라지는 일이 없도록 제조, 유통, 판매 제 단계에서 다각도로 뒷받침 되어야 한다.

30년 넘게 지역 양조장을 지키고 있다
▲ 사진 오른쪽이 최덕영 대표, 그 옆에 30년 지기 정민호 사장 30년 넘게 지역 양조장을 지키고 있다
ⓒ 우리술과천연식초연구회 향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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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우리 술 시장은 일제 강점기를 거쳐 6.25 이후 양곡수급관리 정책으로 말미암아 주질 나쁜 저가 술이 대부분을 차지해왔습니다. 자연히 소비자 선택권은 설 자리가 없었고, 소비자는 '술 바가지'를 그대로 뒤집어 써 왔습니다. 술 산업은 전·후방 효과가 매우 높은 고부가가치 산업입니다. 경제적인 관점에서 우리 술 산업에 대한 인식을 다각도로 해야할 시점입니다.



태그:#우리술과천연식초연구회, #향음, #전통주, #주류제조면허, #지역특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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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전통술과 천연식초 등 발효식품을 교육연구, 제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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