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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교육청이 오는 2학기부터 '9시 등교'를 실시하기로 해 논란입니다. 이에 학생 인권적인 면에서 해당 정책을 지지하는 글을 싣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이와 관련한 찬반 논쟁을 기다립니다. [편집자말]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은 13일 수원시 경기도교육복지종합센터에서 열린 '경기교육사랑학부모회 워크숍'에 참석해 9시 등교 시행을 놓고 학부모들과 설전을 벌였다.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은 13일 수원시 경기도교육복지종합센터에서 열린 '경기교육사랑학부모회 워크숍'에 참석해 9시 등교 시행을 놓고 학부모들과 설전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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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학을 맞는 경기도가 시끌벅적하다. 이재정 경기도 교육감의 '9시 등교' 정책 때문이다. 이 교육감의 정책 추진 의지는 강력하다. 각급 학교에 관련 공문을 내렸고, 적극적인 협조도 구하고 있다. 하지만 표면적으로는 찬반 논란이 거세다. 국내 최대 교원단체인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아래 교총)와 일부 학부모들이 반대 진영의 앞자리에 서 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교총은 지난 15일 9시 등교 시행이 학교 현장의 자율성을 훼손하는 정책이라며 중단을 촉구했다고 한다. 학부모들은 일부 맞벌이부부를 중심으로 반대 의견을 내놓고 있다. 아침 출근 시간 공백에 따른 학생 관리 문제, 교육력 감소 등의 우려가 주된 논거들이다.

이 교육감의 뜻은 확고해 보인다. 경기교육청은 지난 14일 경기도 내 각 지역 교육지원청에 2학기부터 9시 등교를 시행하라는 추진계획서를 발송했다고 한다. 경기교육청은 학생들의 적극적인 요청과 건강한 성장·활기찬 학습 등의 명분을 내세웠다. 이 교육감은 반대 여론에 대해서 "아이들 중심으로 생각했으면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나는 경기교육청의 오전 9시 등교 정책을 적극 지지한다. 이런 입장에서 교총과 일부 학부모들의 의견에 반박하면서, 이 정책의 당위성과 필요성 등을 얘기하고 싶다. 또한 9시 등교 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간단히 짚어본다.

누구를 위한 '학교의 자율성'인가

교총은 오전 9시 등교 정책이 학교 현장의 자율성을 훼손한다고 비판했다. 초중등교육법시행령상 등교 시간은 학교장에 위임된 권한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교육감이 학교장에 위임된 권한을 행사하려 함으로써 학교 자율성을 침해하는 것은 권한남용이라는 점을 지적하기 위해서였다.

학교(정확히는 '학교장'일 것이다)의 자율성, 중요하고 필요하다. 다만 전제가 있다. 그 자율성이 과연 어떤 목적으로, 누구를 위해 필요한가 하는 점이다. 흔히 학생과 학부모, 교원을 교육의 3주체로 이야기한다. 중핵은 학생이다. 학교의 자율성이 어떤 목적으로 누구를 위해 필요한지 분석하고 판단할 때 가장 중시되어야 할 제1의 요소다.

교총은 학부모의 하소연과 지역에 따라 다른 학교 현실을 언급했다고 한다. 이해할 수 있다. 개별 학부모나 학교에 따라 처지나 상황, 여건이 얼마든지 다를 수 있다. 다만 교총에게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다. 9시 등교에 대한 학생들의 바람이 학부모의 하소연이나 각 학교가 처한 현실보다 덜 중요한가.

학교의 자율성 훼손을 강조하는 교총의 비판은 오늘날 대한민국 학교가 작동되는 방식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학교 자율성이라는 이름 아래 결정된 그간의 각종 학교 교육 정책들이 과연 누구를 위해 존재해 왔는지를 분명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솔직해졌으면 좋겠다. 학생들의 학습력을 위한다는 0교시 수업은 학생 관리를 똑부러지게 잘하는 학교 이미지를 위함이 아닌가. 이른 아침 등교해 책을 읽거나 명상의 시간을 갖는 등의 다종다양한 아침 프로그램은 어떤가. 특색사업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학교 홍보나 교장 업적 쌓기를 위한 용도는 전혀 없었나.

교육적 실효성과 의의 등을 살리는 프로그램들이라면 달리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9시 이전 비몽사몽의 시간대에 이루어지는 독서와 명상이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중학교인 우리 학교는 오전 8시 20분부터 20분간 독서 시간을 갖는다. 책읽기를 좋아하고 강조하는 편이다. 조·종회 시간에 독서 프로그램의 취지도 자주 말하는 편이다. 교장 선생님도 뜻이 강하시다.

하지만 그뿐이다. 학생들은 많은 과제물 때문에 책읽기가 언감생심이다. 학기 내내 수시로 이어지는 수행평가며 교과 활동 준비로 항상 바쁘다. 간밤에 부족했던 수면도 보충해야 한다. 친구와 조잘대는 일로 하루를 시작하는 게 즐거운 아이들이기도 하다. 책읽기, 정말 필요하고 좋다. 그런데 꼭 그렇게 이른 시간에 해야 하나. 적어도 아침 독서 프로그램과 관련해서는 충분한 준비와 계획이 필요해 보인다.

9시 등교, 보편적 인권 실현의 한 방법

9시 등교 정책의 당위성은 충분하다. 보편적인 학생 인권을 실현할 수 있는 한 수단이 될 수 있어서다.
 9시 등교 정책의 당위성은 충분하다. 보편적인 학생 인권을 실현할 수 있는 한 수단이 될 수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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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들의 반대의견은 일종의 '현실론'이다. 지난 13일 이 교육감과 가진 간담회에서 학부모들은 도시와 버스 시간대가 다른 농촌 지역 실정, 오전 8시 이전에 출근해야 하는 맞벌이 부부의 처지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교육감이 뜻을 굽히지 않자 일부에서 "우수학생들이 서울로 빠져 나가는 것은 어떻게 할 거냐"는 말도 했다고 한다.

대한민국 학부모답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그들이 스스로를 '학부모'가 아니라 '부모'라고 여겼어도 그렇게 말할 수 있었을까. 9시 등교는 학생들이 원하는 것이다. 졸리고 지친 아침 시간의 고통을 충분히 겪고 있는 학생들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는 정책이다. 이날 간담회에서 이 교육감은 "우리 교육은 한 번도 학생들의 요구를 들어준 적이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학부모들에게 묻고 싶다. 그동안 자녀들의 요구를 과연 흔쾌히 들어준 적이 있는가.

고등학교 입학생이라면 주변 어른들로부터 '3년만 죽자'는 말을 예사로 듣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학생들이 입시·공부기계로 전락하기를 강요하는 부모와 교사들은 쌔고 쌨다. 아이들에게는 불행하게도(!), 그들은 '열정적'이고 '헌신적'이기까지 하다.

안다. 자식 홀로 놔두고 나가는 심정이 어찌 편하겠는가. 그래도 솔직히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그들은 그렇게 애지중지 아끼는 자식들을 통 크게 믿어본 적이 있을까. 때론 자식을 대범하게 물가에 내놓는 일이 자식에게 큰 배움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진지하게 고민해 보았을까.

9시 등교 정책의 당위성은 충분하다. 보편적인 학생 인권을 실현할 수 있는 한 수단이 될 수 있어서다. 정책 추진의 현실적인 명분이나 배경 논리도 탄탄하다. 건강한 수면과 여유로운 시간 활용에 기댈 때 학습 활동이 활기차게 이뤄질 수 있다. 미국에서 이루어진 최신 수면 연구 결과를 통해 알아보자.

미국 청소년 및 자녀양육의 권위자인 데이비드 월시 박사에 따르면, 10대들의 뇌가 최상의 효율성을 발휘하고 작동하기 위해서는 매일 9시간~9시간 30분 정도의 수면이 지속적으로 필요하다. 문제는 10대들의 '독특한' 뇌 작동 시스템이다.

아이들은 10대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수면 및 기상 주기가 변화한다고 한다. 이에 따라 일종의 수면 유도 호르몬인 멜라토닌 방출 시간과 시간대별 멜라토닌 방출 수준이 달라지도록 뇌 작용이 바뀐다고 한다.

이로 인해 10대들의 뇌는 자신만의 특별한 모습을 취하게 된다. 다른 연령대의 사람들이 피곤을 느끼는 밤 11시나 12시에 10대들은 말똥말똥해진다. 대신 일반인들이 활기차게 움직이는 오전 8시에 10대들은 녹초가 된다고 한다. 10대들에게 충분한 수면 외에 수면·기상 시간의 면밀한 고려가 있어야 하는 이유다.

월시가 쓴 책 <10대들의 사생활>에 보면 좀 더 흥미로운 내용이 나온다. 10대 청소년 수면 연구에 기초해 1교시 시간을 바꾸는 결단을 단행한 몇 학교가 있었다. 이 학교 학생들의 성적 추이는 아직 보고되지 않았다. 하지만 1교시 시간 변경 정책은 큰 변화를 가져왔다. 학생과 교사가 모두 행복해졌으며, 교실에서 조는 학생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월시는 10대 청소년들의 수업을 이른 저녁에 하는 것이 생산적일 수도 있다고 말하기까지 한다.

9시 등교 정책의 성패, 여기에 달렸다

9시 등교 정책의 본질이 학생들의 수면 보장에만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학생들의 수면 패턴은 각자의 습관이나 가정의 생활 사이클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9시 등교 자체가 학생들에게 충분한 양의 수면과 적절한 수면·기상 시간을 완벽하게 보장해 주지는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핵심은 다른 데 있다. 1교시, 그러니까 오전 9시 이전의 시간을 최소한 여유로운 시간대로 바꾸는 데 있지 않을까. 8시 전후는 말 그대로 학생들에게 고통스러운(?!) 시간대다. 월시 박사의 관점에 기대 말한다면 몸은 깨어 있으나 뇌는 잠자고 있는 상태라고 해도 되겠다.

지금 학생들은 그런 시간, 또는 그 이전에 등교해 정규 수업을 하거나 책읽기 등의 특별 활동을 한다. 녹초가 된 머리와 몸으로 학생들이 정상적으로 학습이며 활동을 해 나갈 수 있을까. 대다수 학생이 책상에 얼굴을 파묻고 잠을 자는 아침 교실 풍경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이 시간대의 뇌 상태에 걸맞게 몸과 마음을 가만히 내버려두는 게 중요한 까닭이다.

9시 등교 정책의 성패는 어디에 있을까. 이 교육감은 일찍 등교하는 학생을 위해 현재 추진중인 도서관·교실을 활용한 독서활동, 음악감상, 아침운동 등의 프로그램을 적극 활용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충분히 설득력 있는 현실적인 방안이다.

문제는 단위 학교 현장에서 9시 등교 정책의 취지를 얼마나 진정성 있게 받아들이느냐다. 학부모 요구나 학교 여건 등을 빌미삼아 학교장이나 담임 교사가 독단을 부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학생들에게 아침 수업 전 프로그램 참여를 강제하는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지속적이고 철저한 실태 조사와 관리·감독이 필요하다.

9시 등교 정책 논란은 경기교육청과 경기도 학부모만의 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등교 시간 조정 정책은 전라북도교육청과 충청북도교육청, 제주도교육청 등에 두루 걸쳐 있는 문제다.

지난 6·4 교육감선거 당시 김승환 교육감은 '아침이 행복한 학교' 공약을 내건 바 있다. 현재 학생의 건강권과 수면권, 밥상머리 교육 등을 위해 등교 시간 늦추기를 적극 추진하려고 하고 있다. 충북과 제주도 마찬가지다. 충북교육청은 이미 0교시 보충수업 폐지 및 조기 등교 금지를 결정했다. '아침밥이 있는 등굣길'이라는 공약을 내걸어 당선한 이석문 제주교육감도 학교 일과 시작 시간 조정을 유도할 가능성이 높다.

부모와의 식사시간과 빈도가 학습에 영향이 있다는 미국 연구 결과가 있다고 한다. 더 자주, 오랜 시간 동안 부모와 밥을 먹은 학생들의 학습 능률이 오른다는 것일 터. 박승배 전 전라북도교육감출범위원회 위원장(전주교대 교수)이 9시 등교 논란과 관련하여 학력 우려를 표시하는 이들에게 내세운 반박 논거라고 한다.

과문한 탓이겠으나, 조기 등교를 통한 학습 효과는 객관적으로 뚜렷이 밝혀진 바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명확한 근거도 없이 학생들을 무조건 일찍 등교시켜 공부를 하도록 강요하는 '비정상'을 '정상'으로 알고 지내온 셈이 된다. 그런 점에서 9시 등교 정책이야말로 '비정상의 정상화'의 대표 사례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9시 등교 정책에 반대하는 전국의 어른들에게 진심으로 묻고 싶다. 등교 시간 따위에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닥공(닥치고 공부)'만을 외치는 어른들을 따라 조용히 순종하는 아이들이 과연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보는가.

대한민국의 많은 아이에게 삶은 끝없는 유예의 연속이다. 손에 잡히지 않아 알기 힘든 내일을 담보로 오늘을 저당 잡힌 채 살아가고 있다. 그런 아이들의 현재가 과연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어른이 된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듯이, 인생은 짧지만 청춘은 훨씬 더 짧지 않은가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싣습니다.



태그:#9시 등교, #이재정 경기도 교육감, #김승환 전라북도 교육감, #학생인권, #수면 패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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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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