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순은 살아온 시절이 가득하고 삶에서 가장 충만한 시기입니다. 인생의 파트너가 칠순을 맞아 출판 기념회를 함께 갖는 것이 정말 부럽고 멋지게 생각됩니다." - 장상 전 이화여대 총장지난 20일 저녁 서울 강남에서 보기 드문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중앙일보> 출신으로 국정홍보처장과 청와대 공보수석을 역임한 오홍근씨와 전 동덕여대 교수인 송명견씨가 부부 칠순 출판기념회를 개최한 것이다. 두 사람은 1970년 결혼해 올해로 44년간 함께 살고 있다. 남편은 <중앙일보> 상무를 끝으로 언론계를 떠나 정계에서 활동해 얼마 전까지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으로 일했고, 부인은 동덕여대에서 평생 교편을 잡았다.
면허 없어 아내가 운전... 간 큰 남편의 칠순 선물이날 출판 기념회는 부인의 표현대로 "문제아 기질이 다분해 정말 상대하기 힘든" 남편이 70회 생일을 맞은 아내를 위해 마련한 자리였다. 송 전 교수는 서울대 농가정학과를 졸업하고 당시에는 드물게 '옷'을 전공해 현재는 복식분야에선 손 꼽히는 대표적인 학자로 평가된다. 지난 6월에는 <옷이 말하는 문화와 역사 읽기-옷은 사람이다>(한국학술정보)를 펴내 옷의 문화와 역사, 정치적 의미를 꼼꼼히 파헤쳤다.
오 전 수석은 한때 잘 나가는 기자였다. <중앙일보>에서 18년, TBC에서 13년간 근무하며 방송대상, 한국기자상, 관훈언론상을 휩쓸었다.
정작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린 것은 지난 1988년 발생한 '언론인 테러' 사건이다. 당시 <중앙일보> 경제사회부장이었던 그는 출근길에 자신의 칼럼에 불만을 품은 정보사령부 소속 현역군인들로부터 '회칼 테러'를 당해 길이 34센치미터, 깊이 3~4센치미터 가량 허벅지가 찢기는 중상을 입었다. 이 사건은 수사 결과, 장성 두 명을 포함한 10여 명의 현역 군인들이 조직적으로 저지른 범죄로 밝혀져 큰 파문을 던졌다.
그는 1999년 3월, 선거법 위반혐의로 국회의원직을 상실한 홍준표 의원이 아무 근거도 없이 '김대중 대통령에 의한 정치보복'을 주장하자 이를 강력 비판했다가 신문사 측이 칼럼 게재를 거부하자 사표를 내고 신문사를 떠났다. 그만큼 직정적이고 소신이 강하다.
자신의 대학 동기인 이명박 대통령 재임 시절 다른 누구보다 가장 강도높게 쓴 소리를 쏟아낸 그는 언론계 안팎에선 '글은 독하면서도 따뜻한 사람'으로 통한다. 정치권에 입문한 이후에도 <프레시안> 등에 정국을 정면으로 다룬 매서운 칼럼을 연재했고 <그레샴 법칙의 나라> <민주주의의 배신> 등을 펴내는 등 왕성한 필력을 선보여 왔다.
이날 송 전 교수는 자신의 학문적 성취를 "새벽에 나가 밤늦게 들어와준 남편의 덕"으로 돌렸다. 일에 미쳐 집에서 보기 어려웠던 남편의 부재가 결과적으로 혼자 공부하게 해주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오 전 수석은 <중앙일보> 판매 담당 상무 시절 오전 두 시에 출근하여 배달 현장으로 달려가는 '일벌레'였다.
본의 아니게 '외조의 달인'으로 격상된 오 전 수석은 이제는 '분리수거, 설거지'를 도맡아 처리하는 '가사 모범생'으로 돌변했다. 그래도 아직도 부인의 "사랑해"란 전화 멘트에 응답도 하지 않은 채 곧바로 전화를 끊어 버리거나 운전면허증도 취득하지 않은 채 부인에게 기사 역할을 도맡기는 '나쁜 남편'의 잔영이 남아 있다.
"버리지 않고 살아줘서 고마워"이날 출판기념회는 순천향대 총장 출신이자 오 전 수석의 고교 문예반 후배인 손풍삼 순천향대 전 교수의 사회로 진행됐다. 학창시절의 추억을 벗 삼아 농 같은 진담으로 청중에게 입담을 과시한 손 전 교수는 오 전 수석에 대해 "인문학적 상상력과 과학적 분석력, 예술적 표현력을 겸비했지만, 삐치면 상대방에게 말도 안 붙이고 얼굴도 안 보는 소심한 성격의 소유자"로 규정했다. 지인 대표로 축사에 나선 정대철 전 민주당 의원은 "멸종위기에 처한 희귀종"이라며 "정의롭고 소외된 사람을 생각하며 균형감각을 보유한 정말 열심히 일하는 사람, 오홍근을 참 좋아한다"고 평했다.
"참 언론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하는 곧은 사람"(김두관 전 경남지사), "양극단의 중간지점에 가만히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양극단을 오고 가면서 끊임없이 최 적점을 탐색한다는 시오노 나나미의 균형감각에 대한 정의를 몸으로 실천하고 행동해 왔다"(안철수 전 대표)는 것이 지인들의 오홍근 전 수석에 대한 대체적인 평가였다.
"40여 년간 버리지 않고 살아 준 집 사람에게 고맙다"는 말로 웃음 속에서 인사말을 시작한 오 전 수석은 곧장 "땅 바닥에 패대기쳐 있는 민주주의의 복원과 마피아 시스템 청산이 우리 시대 해결해야 할 가장 절실한 화두"라며 "우리 모두의 가슴 속에 남아 있는 새정치에 대한 열망으로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정치권에 직격탄을 날렸다.
출판기념회겸 칠순 잔치인 이날 행사는 두 사람의 삶을 공유하는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끈끈한 연대감이 행사 시간 내내 가득했다. 각자의 길에서 최선을 다해 쉼없이 달려온 노부부의 은은한 향취가 느껴진 '아름답고 착한 출판기념회'(손풍삼 전 총장)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