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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아무 건물도 없이 비석만 남아 있다. 비석 앞에 노점을 하시는 분의 물건이 하나 덩그러니 올라와 있다.
▲ 채만식 생가 터 지금은 아무 건물도 없이 비석만 남아 있다. 비석 앞에 노점을 하시는 분의 물건이 하나 덩그러니 올라와 있다.
ⓒ 류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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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 12일 오후 3시 7분]

채만식은 일제강점기를 대표하는 비판과 풍자의 작가로 알려져 있지만, 1940년 7월에 발표한 <나의 '꽃과 병정'>을 시작으로 1945년 해방 전까지 14편의 친일 성향의 글을 남겼다.

때문에 그는 2002년 발표된 친일 문학인 42인, 2009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4인에 포함됐다. 실제 그는 대표적인 친일문예단체인 '조선문인보국회'의 평의원으로 활동한 바 있다.

채만식의 어둠, 친일 행적

그의 친일 행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소설로는 1944년 10월부터 1945년 5월까지 총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 연재된 <여인전기>와 2006년에 새롭게 친일 소설로 확인된 <아름다운 새벽>이 있다.

<아름대운 새벽>은 <매일신보>에 1942년 2월부터 7월까지 연재됐던 소설로 1947년에 원본과 달리 친일적 요소들이 삭제된 채 간행돼 지금에 이르고 있다. 반면 옥동댁이라는 한 여인의 인생역정을 다룬 <여인전기>의 경우 현재 간행된 것을 통해서도 친일적 요소들을 발견할 수 있다.

옥동댁은 18살 때 12살의 준호와 결혼하지만 시어머니인 박씨 부인의 히스테리로 인해 친정으로 쫓겨난 뒤 남편과 이혼한다. 그 후 서울로 올라와 신학문도 익히고 두 남자로부터 구애도 받지만 우연히 만난 전 남편 준호와 다시금 부부의 연을 맺는다. 하지만 혹독한 가난 속에서 준호는 철, 문주 두 아이만 남겨둔 채 병으로 세상을 뜨고 죽음을 앞둔 박씨 부인은 옥동댁을 불러 재산을 넘긴 채 숨을 거둔다. 그리고 옥동댁은 박씨 부인이 일군 재산으로 두 아이를 길러낸다.

이 작품은 제목처럼 옥동댁이라는 한 여인의 전기와 같은 성격을 갖는다. 그런 면에서 얼핏 옥동댁이라는 전통적인 여인상을 주인공으로 한 통속 소설로도 보인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옥동댁의 아버지인 임경식과 그녀의 아들인 철이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는 옥동댁의 시선을 통해 채만식의 친일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임경식의 선친은 갑신정변에 실패하고 일본으로 망명한 자로 일본의 비호를 받으며 생활을 하다가 그곳의 신식 군제와 교육에 반해 임경식을 일본의 육군유년학교에 보낸다. 그리고 임경식은 일본군과 함께 전투에 참전해 상관의 만류에도 결사대 돌격대장을 자원하고 결국 전사한다.

그는 상관의 만류를 "소관은, 사람은 조선 사람이올시다, 그러나 소관의 마음의 나라는 일본이올시다"라는 말로 물리친다. 뿐만 아니라 그는 후사를 걱정하는 어머니께 "네, 확실히 조선 여인들보담 낫습니다, 본받을 구석이 많습니다"라면서 일본인 며느리를 권한다.

철이 역시 일본군과 함께 참전한 상황에서도 옥동댁에게 보낸 편지에서 "조선에서도 말하기를 전사(戰死)를 제일 상팔자라고 하지 않습니까? 참으로 뜻깊고 적절한 말입니다, 전사! 전사! (중략) 그것은 늠름하고 영광되고 자랑스럽고 한 외에, 겸하여 아름다운 죽음, 황홀한 죽음이기까지 합니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옥동댁은 이를 걱정스러워하는 한편 자랑스러워한다. 즉, <여인전기>는 한 집안을 통해 4대에 걸쳐 내려오는 친일 행적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잘못을 뉘우친 채만식

채만식이 다녔다고 하는 임피초등학교를 옆에 두고 채만식 도서관이 위치하고 있다.
▲ 채만식 도서관 내부 자료 채만식이 다녔다고 하는 임피초등학교를 옆에 두고 채만식 도서관이 위치하고 있다.
ⓒ 류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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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작품을 남겼던 그도 광복 후에는 <민족의 죄인>이라는 작품을 통해 자신의 친일 행각에 대한 변호와 반성을 보여줬다.

어느 날 <민족의 죄인>의 주인공은 김군이 있는 P사에 무심코 들렀다가 마주치게 된 윤으로부터 경멸과 조롱을 받는다. 윤은 중일전쟁 이전까지 신문사의 정치부 기자로 있으며 논설을 쓰다가 중일전쟁 이후 절필을 함으로써 대일협력을 하지 않는다. 반면에 작품의 주인공은 대일협력을 위해 전국적으로 강연도 다니고 증산 소설도 쓰다가 1945년 4월에 해방의 기운을 감지하면서 낙향한다. 윤으로부터 민족 반역자 취급을 받은 주인공은 집에 돌아와서도 한동안 그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 작품에서 주목되는 부분은 첫째, 그가 대일협력에 동참한 이유를 설명한 부분이다. 그는 어느 날 뚜렷한 이유 없이 유치장에 갇힌 채 일본 형사로부터 '도야지' 취급을 받으며 생활하게 된다. 힘든 생활 끝에 그가 유치장에서 나올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그의 집을 수색하던 도중 나온 조선문인협회의 엽서 때문이었다.

그것은 황군위문대 파견을 목적으로 한 회의에 참석해 달라는 내용이었고 실제 그는 그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으나 그 엽서로 인해 위기를 모면한다. 그리고 이 일로 그는 대일협력의 이익을 몸소 체험한다.

이로 인해 그는 대일협력을 위한 강연 요청이 왔을 때 거부할 수 있었음에도 협조한다. 이 부분이 문제가 되는 부분이다. 일제강점기에 일제에 저항한다는 것은 목숨을 담보로 하는 일이기에 당시의 모든 이들을 어째서 일제에 맞서 싸우지 않았느냐고 질타할 수는 없다. 하지만 당대의 지식인이었던 그가 보여준 대일협력에의 자발적 동참은 역사적으로 용서받기 힘든 부분이다. 특히 그가 대일협력으로 인한 이익을 인식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두 번째로 주목할 부분은 그의 이중적 태도다. 그가 대일협력의 일환으로 강연을 갔을 때 그는 몇몇의 젊은이들로부터 시국에 대한 질문을 받는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처지를 의식해서 소극적인 답변을 내놓는 데 그친다.

하지만 한 학생이 개인적으로 찾아와 질문을 던졌을 때 그는 전과는 반대로 일제에 대해 비판적인 답변을 한다. 뿐만 아니라 자신은 과거에 대일협력을 했으면서도 과거 친일파였던 교사 때문에 동맹휴학에 들어간 상황을 피해 자신을 찾아 온 조카에게는 옳은 일을 외면했다는 이유로 훈계해 돌려보낸다.

이는 이론과 실제를 일치시키지 못하는 실천하지 못하는 지식인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무엇이 옳은 길인지는 알고 있으나 자신의 안위를 위해 겉으로는 적에게 복종하는 태도를 가진 그는 자신의 용렬함을 인식하고 있음에도 스스로 실천하지 못한 채 타인을 훈계한다.

이 작품이 채만식의 자전적 소설임을 감안할 때 작품의 주인공은 곧 작가 자신이다. 그가 많은 작품에서 날카로운 시대 인식을 보여줬음을 생각하면 객관적인 인식의 부재로 이와 같은 태도를 보였다고 할 수는 없다. 그는 이론이 실제 앞에서 얼마나 허약한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문제적 인물이다. 당대를 날카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비판과 풍자로 현실을 고발했던 그이지만 그의 이런 이중적인 모습은 비판적으로 평가해야 함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채만식을 후안무치한 친일 작가로만 단정할 할 수 없는 이유는 그가 이미 소설의 제목인 <민족의 죄인>을 통해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작품 안에서 통렬한 반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아무리 정강이께서 도피하여 나왔다고 하더라도, 한번 살에 묻은 대일협력의 불결한 진흙은 나의 두 다리에 신겨진 불멸의 고무장화였다. 씻어도 깎아도 지워지지 않는 영원한 '죄의 표지'였다. 창녀가 가정으로 돌아왔다고 그의 생리가 숫처녀로 환원되는 법은 절대로 없듯이."(<민족의 죄인> 중)

이를 감안하면 작품 안에서 김군이 '나'의  친일 행위를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한 것도 '나'의 부끄러운 행위에 대한 안타까운 변명으로 해석된다.

월명공원 내에 있는 채만식 문학비는 <탁류>의 배경인 군산 시가지와 금강을 내려다 보고 있다.
▲ 채만식 문학비 월명공원 내에 있는 채만식 문학비는 <탁류>의 배경인 군산 시가지와 금강을 내려다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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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을 통해 일제에 대한 저항과 친일 행적을 함께 보여주고, 동시에 친일 행위에 대한 통렬한 반성까지 보여준 채만식은 우리 문학사에서 상당히 독특한 인물이다. 하지만 채만식의 이러한 이중성은 대중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아마도 학교 문학 교육에서 그가 일제 강점기를 대표하는 비판적인 작가 중의 한 명으로만 소개된 탓이 클 것이다.

물론 그는 작가로서 여러 가지 미덕을 갖추고 있다. 시대를 읽어내는 탁월한 눈, 그것을 잘 풀어내는 입담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의 글은 잘 읽힌다. 독자의 입장에서 막히는 데 없이 잘 읽히는 글이란 작가의 입장에서는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는 뜻일 것이다.

하지만 그가 친일에 동참했던 것도, 이에 대해 반성한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학교 문학교육에서도 그의 이런 면모를 함께 소개해야 한다. 한때나마 '대세'를 따라 '요령껏' 살았던 지식인에 대한 적절한 평가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를 교육적으로 활용하여 함께 탐구해 나감으로써 지식인의 양심적인 태도에 대해서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태그:#채만식문학관, #군산, #민족의 죄인, #여인전기, #아름다운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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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하나로 세상이 바뀌지 않아, 하지만 그냥 있을 순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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