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수정 : 12일 오후 5시 30분]서울에 있는 3개 대학 학보사의 2학기 개강 첫 호 신문 발행이 취소되거나 연기됐다. 주간교수나 학교 측과 편집권을 두고 마찰을 빚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학교가 대학 구성원의 알 권리를 위해 존재하는 학보사를 홍보를 위한 부속기관쯤으로 취급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각각 지난 1일과 3일 발행 예정이었던 <성대신문>(성균관대), <삼육대신문>(삼육대)은 발행이 취소됐고, 발행을 연기했던 <국민대신문>(국민대)은 학교 측과 협의해 지난 3일 신문이 나왔다. 특히 <성대신문>과 <국민대신문>은 각각 지난해와 올해, 편집권 침해로 발행을 중단하거나 연기한 적이 있음에도 또다시 같은 문제가 불거졌다.
발행일 지났지만, 빛 보지 못한 대학 신문들
격주로 발행되는 <국민대신문>(국민대)은 지난 1일에 개강 첫 호를 발행할 예정이었다. <국민대신문> 기자들은 "인쇄를 앞둔 지난 8월 29일, 주간교수와 편집편성국장(교직원)은 기자들에게 학교에 비판적이 기사가 많다는 점을 문제 삼으며 '우호적인 기사를 넣어 균형을 맞추라'고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기자들이 이를 거부하면서 결국 윤전기는 돌아가지 못했다.
발행 연기 하루 만인 지난 2일 <국민대신문> 기자들은 주간교수와 편집편성국장과 만나 1면에 학교의 성과를 알리는 기사를 넣고, 지면을 재배치하는 식으로 합의점을 찾았다. <국민대신문>은 지난 3일 발행됐다.
하지만 비슷한 이유로 지난 학기 한 차례 발행 연기를 겪었던 기자들은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나면 강경하게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박상희 <국민대신문> 편집장은 <오마이뉴스>와 통화에서 "학내 소식을 전하는 보도면을 두고 계속 마찰을 빚어왔다"라면서 "일단 발행을 하자는 기자들의 의견으로 (마찰이) 일단락됐지만, 이런 일이 또 일어나면 제작거부 등 강경하게 대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성대신문>도 지난 1일 나올 예정이었던 1566호의 발행이 취소됐다. 조수민 <성대신문> 편집장은 "이미 편집기획회의를 거쳐 기사 출고 현황을 주간교수와 합의했다, 하지만 뒤늦게 주간교수가 신문 구성을 두고 기자들과 이견을 보여 발행이 취소됐다"라고 전했다.
현재 기자들과 주간교수는 신문 발행 여부를 두고 협의 중이다. 이와 관련 박선규 <성대신문> 주간교수와 통화를 시도했으나 "학교 안의 일"이라며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다.
지난해 <성대신문> 기자들은 두 달 동안 제작을 거부하기도 했다. 당시 <성대신문> 기자들은 학내 동아리와 삼성전자서비스노조의 간담회 행사 장소를 학교가 폐쇄했다는 내용의 기사를 실으려했지만, 주간교수가 이를 반대했고 신문은 발행되지 않았다. 결국 주간교수가 그해 종강호를 마지막으로 사퇴하기로 하면서 신문은 두 달 만에 정상 발행됐다.
2학기에 네 번 발행하는 <삼육대신문>은 발행 예정 하루 전날(9월 2일)에 갑작스럽게 인쇄가 중단됐다. <삼육대신문> 기자들은 '국가장학금과 학자금 대출과정에서 한국장학재단과 학교 측의 잇따른 실수로 학생들이 불편함을 겪었다'는 내용의 기사를 지면에 실었다. 하지만 삼육대학교 학생처는 '기사를 보면 학교가 전적으로 잘못한 것처럼 느껴진다'며 문제제기를 했고 학생처 직원이 인쇄소에 전화해 인쇄 중단을 요청했다.
송형근 <삼육대신문> 편집장은 "학생처가 사실 관계의 오류가 아니라 '느껴진다'는 식으로 기사의 뉘앙스를 문제 삼고 인쇄 중단을 요청한 것은 학보사 주간교수에 대한 월권"이라면서 "현재 학교와 편집권을 두고 대화를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대학 내 늘어나는 '독립언론'... 왜?학보사와 주간교수로 대표되는 학교가 편집권을 두고 마찰을 빚는 일은 하루이틀 이야기가 아니다. 학보사 기자들은 '학보사가 대학본부에 종속돼 있는 구조에서 비롯한 문제'라고 진단한다. 학교로부터 예산지원을 받는 학보사는 총장을 발행인으로 두고, 총장의 권한을 위임받은 주간교수가 학생기자들을 지도하며 신문 발행을 총괄한다.
때문에 학보사 기자들은 주간교수의 주관 아래 진행되는 편집기획회의에서 논조를 두고 종종 마찰을 빚어왔다. 주간교수는 편집회의에서 기자들의 기획안을 발전시켜주는 등 긍정적 역할도 하지만, 반대로 학교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억누르거나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는 지적이다. 한 학보사 기자들은 "또한 총장이 발행인이라는 점을 근거로 학교 당국이 사전 검열을 요구하거나, 예산지원을 빌미로 편집권에 개입하는 일도 발생한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최근 대학 내에서 학생들이 만드는 독립언론이 크게 늘어난 것도 학보사가 학교로부터 편집권을 침해받는 일과 무관하지 않다. 대학 독립언론들은 학교의 '검열'이 뒤따르는 예산 지원 대신 완전한 편집권 독립을 택했다.
2012년 3월, 수업시간에 삼성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해고된 류승완 전 강사와 관련한 기사를 실으려던 <성대신문>이 발행되지 않았다. 이에 성균관대 학생들은 독립 언론인 <고급찌라시>를 창간했다. 중앙대에서는 총장을 비판하는 기사를 실은 교지 <중앙문화>를 학교가 강제 수거하고, 예산 지원을 삭감해 논란이 됐고, 이를 계기로 독립언론 <잠망경>(2011년 12월)이 태어났다. 이 외에도 <성신퍼블리카>(성신여대) <국민저널>(국민대) <외대알리>(한국외국어대) <연세통>(연세대) 등의 독립언론들이 활동하고 있다.
"학칙개정으로 학생 의견 반영할 수 있는 창구 만들어야"<국민대신문>에서 학교와 편집권을 두고 마찰을 빚다 지난 2012년에 독립언론 <국민저널>을 창간한 박동우 전 <국민저널> 취재부장은 "현재의 학보사에서는 실질적 편집의 주체인 학생들의 의사를 철저하게 배제한다, 학생들이 의견 개진도 할 수 없는 구조"라고 주장했다.
그는 "기사가 나가려면 편집편성국장과 주간 교수의 데스킹을 거쳐야 하고, 마지막으로 총장 재가를 얻어야 한다"라면서 "이 과정에서 학교에 비판적인 문장이나 표현이 삭제되는 경우가 많다"라고 전했다.
실제 박동우씨는 2012년 문대성 새누리당 의원이 국민대로부터 받은 박사학위논문이 표절로 알려졌을 때 관련 기사를 썼다가 주간교수와 갈등을 빚기도 했다. 그는 "'논문 검증을 소홀히 한 학교에도 책임이 있다'는 교직원과 학생의 발언을 기사에 실었다가 주간교수의 데스킹 과정에서 교직원·학생들의 발언이 삭제됐다"라며 "이후에도 비슷한 일이 반복됐다, 결국 나는 제작거부에 들어갔는데 이후 <국민대신문> 기자로 활동하지 못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박씨는 학보사가 대학 본부 안에 속해 있는 구조에서는 완전한 편집권 독립을 얻기 힘들다고 진단한다. 그는 "학칙 개정으로 데스킹 과정에 학생들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는 창구 만들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학보사가 학내 구성원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스피커이자, 공론장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받는 게 선행돼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학보사가 완전한 편집권 독립을 누릴 수 있도록 학교가 보장해줘야 한다고 진단한다. 학교가 학보사를 홍보 기관으로 취급하면서 건전한 비판의 목소리를 억누르고 편향된 정보만을 제공하려 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학내 구성원의 알 권리 침해로 이어진다는 지적이다.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학보사 또한 언론의 사명을 지닌 어엿한 언론사"라면서 "지성의 전당이고 합리성이 보장돼야 하는 대학에서만큼은 학보사에게 언론의 자유가 충분히 보장돼야 한다"라고 밝혔다.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도 최 교수와 같은 입장이다. 김 사무처장은 "학보사는 단순히 대학에서 만든 홍보기관이 아니라 우리 사회 언론사 중 하나이고, 학생들에겐 표현의 자유를 배울 수 있는 배움의 전당"이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학보사는 학내 소식뿐만 아니라 사회문제도 전달하는 기능을 하는데, 편집권이 침해 받으면 사회 전반에 대한 학생들의 알 권리가 축소된다"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