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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26일 염수정 추기경은 정부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세월호 유가족을 향해 "세월호 아픔 이용해선 안 되며 유족도 양보해야 한다"고 발언해 파문이 일었다. 그 여진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우선 "고통 받는 사람들 앞에 중립은 없다"고 했던 프란치스코 교황의 발언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듯한 뉘앙스다. 거기에 더해 평소 정치적 중립과 사제의 정치참여에 대해 부정적이었던 자신의 입장을 반복하는 위선처럼 보일 여지도 있다. 사실상 입만 다물어도 중간은 갈 수 있는 상황에서 그는 왜 이런 '무리수'를 둔 것일까?

프란치스코 교황이 염수정 추기경과 함께 지난 8월 16일 오전 서울 서소문 순교성지를 방문하고 있다. 교황의 옷에는 세월호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노란리본' 배지가 달려 있다.
▲ 교황, 서소문 순교성지 방문 프란치스코 교황이 염수정 추기경과 함께 지난 8월 16일 오전 서울 서소문 순교성지를 방문하고 있다. 교황의 옷에는 세월호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노란리본' 배지가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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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편 들고 유가족 공격하는 염 추기경

우선은 그의 보수적인 성향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그는 4대조 할아버지가 순교를 당하고 자신의 두 형제도 신부가 될 정도로 독실한 가톨릭 신자 집안에서 성장했다. 1970년 사제 서품을 받은 염 추기경은 서울대교구에서 주로 본당 보좌, 주임신부와 가톨릭대학교 사무처장, 교구 사무처장 등 사목 일선에서 일했다. 이후 2001년 서울대교구 보좌주교로 임명되었고, 2002년 주교 서품을 받은 뒤 2012년 마침내 정진석 추기경의 뒤를 이어 교황 베네딕토 16세에 의해 14대 서울대교구장 겸 대주교로 정식 취임했다.

주교 서품을 받은 대부분의 성직자들이 신부 시절 학자로 명망이 높았거나 로마 등에서 유학생활을 오래했던 것에 비해 그는 주로 국내에서 관리형 교회 행정가로 활동하면서 고위직에 올랐다. 대부분 교계 관계자들이 인정하는 특유의 성실성과 끈기가 어떤 면에서는 진가를 발휘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국정원 대선개입사건에 대한 규탄이 한창 진행되고 있던 지난 2월 말 추기경 서임을 받기 위해 로마에 머물면서 한 발언이 문제가 됐다.

"정의구현사제단은 1987년까지만 해도 매우 중요한 민주화 투쟁을 이끌었지만 오늘날 정치 환경은 완전히 바뀌었다, 지금은 맞서 싸울 독재정권이 존재하지 않는다. 만일 그들이 기존 방법론을 고집한다면 사회의 주변부(변두리)로 밀려날 것이다."

그는 정의구현사제단을 '변두리'라고 비판할 정도로 정치적 보수 성향을 가진 인물이다. 그가 정진석 추기경의 뒤를 이어 서울대교구장이 됐을 때 그동안 정책기조가 변하지 않거나 더 보수화될 것으로 우려했던 예측이 들어맞은 것이다.

그가 정부 손을 들어준 데에는 이번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도 한 몫 했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전례가 없는 정부의 대대적 협조를 받아 프란치스코 교황 주재로 광화문에서 시복식을 거행했다. 그러나 교황은 퍼레이드 도중 차에서 내려 '유민 아빠' 김영오씨를 직접 위로하는 등 상상을 넘어선 행보를 보였다. 교황 덕분에 세월호 유가족에 동조하는 여론이 커지자, 정작 도움을 받은 청와대에 빚졌다는 생각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당초 정부 측에서는 타 종교와의 형평성 등을 고려해 시복식의 광화문 진행을 껄끄러워하는 입장이었다. 일각에서는 염 추기경이 거의 막무가내 식으로 밀어붙인 덕에 광화문 시복식이 가능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만큼 염 추기경 입장에서는 큰 부담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더해 조선 말기 천주교 신자들이 처형당한 염천교 인근 서소문공원을 성지화하는 등 향후 정부의 협력을 받아야 할 일이 쌓여 있다. 어떻게든 청와대 눈에 들어야 된다는 강박이 있었을 것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그러나 서소문 공원은 천주교 순교자들만 처형된 곳이 아니다. 조선 개국 이래 다양한 계층이 피를 흘렸던 장소이기 때문에 천주교가 이곳을 독점 소유할 권리나 명분이 약하다는 반론도 교계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과는 다른 행보

이런 상황에서 조계종 총무원장인 자승 스님의 행보는 염 추기경과 비교된다. 자승 스님은 지난 8월 18일 교황 집전 미사 때 비표를 분실해 입장 저지 당했다가 겨우 들어갔다. 한 천주교 신자로부터는 개종 권유를 받는 등 굴욕을 당했다는 주장까지 제기되며 불교계 내에서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8월 18일 오전 서울 명동성당 꼬스트홀에서 조계종 자승 총무원장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 종교 지도자들 만난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8월 18일 오전 서울 명동성당 꼬스트홀에서 조계종 자승 총무원장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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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자승 스님은 이에 개의치 않고 교황이 한국을 떠난 이후인 지난 8월 21일 여러 종교계 인사들과 함께 광화문을 찾았다. 그는 광화문에서 당시 39일째 단식하며 목숨이 경각에 달렸던 김영오씨를 직접 만나 위로했다. 자승 스님은 김영오씨를 향해 "유민이 아빠가 바라는 소원 성취를 위해 기도하겠다"며 입장을 밝혔다. 오히려 염 추기경이 해야 할 역할을 먼저 한 것이다.

그러자 염수정 추기경도 부랴부랴 다음날인 8월 22일 광화문 농성장을 방문했으나 김영오 씨는 건강악화로 이미 서울 동부병원으로 긴급 후송된 상황이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사람들이 "어떤 기도문을 줄 수 있는지, 무슨 내용으로 기도해야 하는지"를 묻자 "마음이 아프시면 마음에 그대로 담고 계시라"는 엉뚱한 답을 했고 급기야 8월 26일에는 유가족 양보발언까지 하면서 파문을 일으켰다. 이후 자승 스님도 8월 31일 "세월호 문제가 정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성명을 발표했지만 유가족을 직접 공격하지는 않았다.

"조직의 안위에만 치중하는 교회가 돼서는 안 된다. 교회는 말과 행동을 통해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개입해야 하며, 필요하다면 신발에 거리의 진흙을 묻힐 수도 있어야 한다. 나는 교회가 좀 더 깨지고 상처 입고 더러워지기를 원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2013년 11월, '사제로서의 훈계'라며 발언한 내용이다. 결과적으로 염 추기경은 교황이 강조했던 이 가르침과는 정반대로 행동한 셈이다.

물론 염수정 추기경의 행동은 성장을 도모해야 할 한국 천주교의 현실을 고려한 것일 수 있다. 하지만 그가 추구하는 천주교 운영방식은 과거 한국 개신교의 부정적 유산인 물량주의와 별반 다를 바 없다. 당장은 달콤하겠지만 결과는 눈에 보인다. 염 추기경이 계속 물의를 일으키자 천주교 바깥의 어떤 종교에서는 "프란치스코 교황 때문에 어려울 줄 알았더니 염 추기경 덕분에 한 시름 놓았다"는 말까지 회자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상징적으로나마 전 지구적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다. 그가 많은 이들에게 존경을 받는 것은 기득권 편이 아니라 약자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그들의 편에 서 있기 때문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미 보여줬다. 한국 천주교의 미래는 거대한 성전과 성지 조성에 달린 것이 아니다. 염 추기경은 더 이상 세월호 유가족처럼 고통 받는 자들의 상처에 소금을 문지르는 행위를 멈춰야 한다. 순교자의 피를 이어받은 사람으로서 최소한의 양식이다. 그는 김수환 추기경이 머물렀던 서울대교구의 교구장에 있지 않은가.


태그:#염수정, #천주교, #프란치시코, #교황, #자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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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모.함석헌 선생을 기리는 씨알재단에서 홍보위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씨알정신을 선양하고 시민사회발전에 기여하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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