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도 시체안치실이란 곳에 가본 적이 없다(살면서 이런 곳에 갈 일은 없는 것이 좋다). 그렇지만 범죄소설에 등장하는 시체안치실은 여러 차례 구경했었다.
시체안치실에 놓인 시신들은 기본적으로 신원이 불명확한 상태다. 또는 신원은 확실하지만, 유족들이 시신의 수습을 거부했거나 그럴만한 연고자가 없는 경우다.
하긴 죽어서 장례식장으로 가지 못하고 시체안치실로 들어 온다면 그 주인공에게는 그리 떳떳하지 못한 사연이 있을 가능성이 많다. 도나토 카리시는 자신의 2013년 작품 <이름 없는자>에서 이들을 몇 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첫 번째는 신원불명의 노숙자거나 불법체류자인 경우다. 신분증도 없고 찾는 가족도 없어서 시신이 방치되는 경우다.
두 번째는 자살이나 사고로 사망한 사람들이다. 이유야 어쨌든 모든 변사자는 동일한 법적절차에 따라 관리되기 때문에 이들도 시체안치실의 한쪽을 차지하고 있다. 세 번째는 미제살인사건의 희생자들이다.
사라진 사람들을 뒤쫓는 형사미제살인사건의 경우, 사망원인이 된 범죄행위가 명확하게 밝혀지기 전까지 시신이 훼손되어서도 안 되고 부패되어서도 안 된다. 그래서 이들은 시체안치실에 놓여있다. 이들 중에는 신원불명인 경우도 있다. 이들이 '이름 없는 자'들이다.
범죄행위에 대한 용의자를 특정하지 못한 사건의 희생자들이다. 이들은 오랜 기간 동안 산 사람과 닮은 꼴을 한 채, 이곳을 떠나지 못하게 만드는 저주를 풀어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누군가에게 살해당한 것도 억울한데, 그 진상이 규명되지도 않고 땅에 묻히지도 못한다면 얼마나 원통할까.
<이름 없는 자>의 주인공 밀라 바스케스는 경찰청 실종전담반에서 근무하고 있다. 부서의 이름처럼 실종된 사람들을 찾아다니는 일이다. 실종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자발적으로 사라진 사람이 있는 반면 누군가에게 납치된 어린 아이들도 있기 마련이다. 아무튼 이렇게 실종된 사람들은 시간이 지난 후에 시체안치실로 들어오게 될 가능성이 많다. 자신을 꺼내줄 누군가를 기다리면서.
대신에 <이름 없는 자>에서는 수년 전에 실종된 사람이 어느날 갑자기 나타나서 살인을 하고 다닌다. 밀라 바스케스는 우연한 기회에 이 사실을 알게되고 이 살인범을 추적하게 된다. 실종자가 몇 년 만에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가족에게 돌아가는 대신 살인을 하기로 결심했다. 그 실종자에게 그동안 어떤 일이 있었을까?
우리가 알지 못하는 실종자들의 이야기살면서 한 번쯤은 '세상을 떠나보았으면...'하고 생각할 때가 있다. 세상을 떠난다는 것이 죽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글자 그대로 속세를 잠시 떠난다는 것이다. 버스터미널에서 아무 버스나 집어타고 창가에 기대앉아 꾸벅꾸벅 졸면서 어디론가 떠나는 것이다.
햇살 가득한 여름날, 그냥 아무도 날 알지 못하는 곳으로, 인터넷도 휴대폰도 없는 곳으로 떠나서 모든 연락을 끊고 며칠 보내다가 돌아오는 것이다. 그런다고 뭐가 달라지겠나. 어차피 세상은 내가 없어도 잘 돌아가는데.
작가 도나토 카리시는 오래전부터 '실종된 사람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져 왔단다. 실종된 이후의 세계를 어둠이라고 표현한다면, 이들은 스스로 어둠의 세계를 택했거나, 또는 어둠이 이들을 택한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실종자들의 이야기에는 큰 관심을 갖지 않는다. 살인사건에는 관심을 갖더라도 실종사건에는 별 호기심을 느끼지 않는 것이다. <이름 없는 자>의 살인범은 그래서 살인을 택했는지도 모른다. 살인이야말로 정말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행위니까. 죽는 것보다 더 안타까운 일은 잊혀진다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름 없는 자> 도나토 카리시 지음 / 이승재 옮김. 검은숲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