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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에서 사회지도층으로 불리는 사람들을 찾아가서 인터뷰 하는 장소의 뒷 배경으로는 병풍처럼 펼쳐진 큰 책장이 보이는 경우가 흔하다. 그것이 자연스럽게 되었든 연출을 한 것이든, 저 두껍고 사전같은 많은 전집들을 읽기는 했는지 참 궁금했었다. 대개는 보여주기 위한 장식용이라고 단정을 하는, 불온한 생각을 많이 했다.

그 사람이 누구인가를 알려면 어떤 책을 읽는지 보면 대개는 책과 사람이 연결된다. 그만큼 책과 사람이 닮았다는 것은 책장에 꽂힌 책을 통해서도 알 수 있고, 전철 안에서 처음 본 어떤 이가 읽고 있는 책 제목만 봐도 그 사람이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짐작해볼 수 있다. 군사정권 시절에 어떤 책을 두고 불온하다며 볼 수 없도록 금서로 만들거나, 트집을 잡아서 사상범으로 엮었던 공안사건이 많았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내가 책을 고르는 기준은 나와 비슷한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추천하거나 특정하게 접하는 언론매체를 통해서다. 언론에 크게 홍보하거나 인터넷서점에서 잘 팔리는 베스트셀러는 제목만 봐도 내 스타일이 아니다.

왜 일반적인 베스트셀러 책들은 나와 정서가 맞지 않고 공감을 하지 못할까 생각해 봤는데, 이유는 내가 지향하는 삶과는 다르게 무척 불편한 내용으로 채워졌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책들은 사람사는 냄새가 느껴지는 양지를 지향하지만 현실에서는 불온서적처럼 음지에 묻혀있기에 항상 찾아내야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농사짓는 철학자 불편한 책을 권하다
 농사짓는 철학자 불편한 책을 권하다
ⓒ 행성:B잎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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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직접 농사를 짓는 농부들이 쓴 책을 좋아한다. 제목에 끌려서 읽은 책 <농사짓는 철학자 불편한 책을 권하다>는 쉰다섯 권의 책에 대한 짧은 서평으로 묶여있다.

전체적인 글에서는 저자가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는지 알 수 있고, 빈껍데기 제도권 교육에 대한 책 서평에서는 자녀에 대한 교육관도 밝힌다. 그리고 저자는 청년세대들을 생각하면서 참된 삶에 대해 부탁하듯이 조언을 해주고 있다.

그들만의 파라다이스가 불편하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며 연애하고 결혼을 한, 청년시기까지 평범한 삶을 살았던 저자는 지금은 산골에서 낮에는 호미를 들고 밤에는 책을 들어 시대에 저항하는 농부철학자로 살아가고 있다.

자본주의적인 모든 것들을 떨쳐버리기 위해서 자기 생존의 뿌리가 땅에 있음을 알고는 환경을 위한 생태적인 생활을 실천하기 위해 도시를 떠났다. 내가 지향하는 삶을 그는 먼저 실행에 옮겼고, 나는 아직 서울이라는 도시에 남아있다. 도시는 생태적인 삶과는 어울리지 않는 잘못 그려진 그림이다.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한국의 경제 성장은 서울이라는 괴물 도시가 중심이었다. 한강의 아름다운 백사장 모래를 콘크리트로 매장하고, 논밭을 밀어낸 자리에는 아파트 블록을 세웠다. 생산은 없고 소비만 하는 서울에는 지금도 약육강식, 적자생존 같은 밀림의 법칙이 국가의 주도로 이뤄지고 있다. 저자는 도시의 하이에나들에게, 탐욕스런 사냥을 이제는 멈추라고 조용히 일갈한다.

"어쨌든 그들이 강남의 '타워'나 '팰리스' 들에서 호화롭게 사는 것은 좋다. 나는 그들의 삶에 손톱만큼도 관심이 없다. 그런데 열리지 않는 전망 창으로 저 멀리 보이는 판자촌까지 집어삼키려고 군침 흘리는 것은 너무나 부도덕하다. 팰리스 안에서 그들끼리 서로 차별하고 배제하는 놀이를 하는 것이야 누가 말리랴. 하지만 벼랑으로 내몰린 가난한 자들의 몫까지 빼앗으려고 기웃거리는 것은 참으로 사악하다. 이미 충분하고도 남을 만큼 빼앗지 않았나." - 본문중에서 -

저자의 글에서는 '아나키스트'라는 단어가 유난히 많이 보인다. 요즘 한국의 정치와 사회현상들을 보면 무정부주의가 낫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드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을 요구하는 유가족과 국민들의 여론과는 반대로 움직이고  소통이 안되는 꽉 막힌 국가의 국민이기를 포기하고 싶은 것이 내 심정이기도 하다.

타인의 슬픔과 아픔에 공감하지 못할 수는 있지만, 단식에 맞서 폭식이라는 폭력으로 유가족을 조롱하는 차마 인간이라면 해서는 안 될 패륜을 조장하거나 방관하는 국가를 나의 조국으로 생각하면서 살고 싶지는 않다.

"애국심에 호소해서 이익을 보는 자들이 있다는 것. 국가가 국민을 보호해주리라는 기대를 버려야 한다는 것. 국가에 대한 순진한 환상을 버리자는 주장에 나도 동의한다." - 본문 중에서 -

국가주도형 제도권교육의 숙주로 자라난 괴물들

한국사회가 이렇게 된 것은 국가주도의 제도권교육을 탓하지 않을 수 없다. 학교에 들어가면서 애국가와 국민교육헌장을 무조건 외웠던 세대들이 지금 청년세대들의 부모가 되었다.

그 부모세대 중에는 국가는 무조건 왕이고 충성을 해야하는 최고 권력이며, 어떤 이유로도 비난해서는 안되는 절대 권력으로 받아들인다. 물론, 그것은 자신들이 원하는 권력에만 해당되는 맹목적인 충성이다.

그리고 한국사회의 관행으로 자리잡은 출세를 위해서라면 비굴함(혹은 쪽팔림)쯤은 당당하게 받아들이는 문화가  퍼져있다. 현정부의 총리와 장관 지명에서 실패한 인물들을 보면 그 치부가 확 드러났음에도 낯짝을 숙일 줄 모른다.

또한 이들은 교육뿐만 아니라 모든 부문에서 경쟁을 상시적인 것으로 제도화시켰다. 그러면서 경쟁에서 밀려난 이들의 슬픔에 대해서도 나만 아니면 된다는 뿌리가 너무도 깊이 박혀버렸다.

기득권의 울타리 안에 안착한 이들은 더욱 공고하게 아무나 넘볼수 없는 성벽을 쌓아올렸고, 들어가지 못한 이들에게는 노력하면 사다리를 올라 탈 수 있다고 선전한다. 어떻게든 그 울타리를 넘은 제한된 극소수는 처지가 바뀐 일신의 안위를 위해서 썩은 사다리를 놓는 역할을 한다. 그래야만 어렵게 또는 부모 덕에 혹은 운좋게 얻은 기득권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두에게 평등한 교육도 아니었고, 참교육은 더더욱 아닌 학(學)교도소에서 인성(人性)은 사라졌고, 짜고치는 경쟁판에서 밀려난 패배감은 유가족을 조롱하는 패륜의 정신분열증을 보이는 지옥문까지 열어제쳤다. 이것이 지금까지 국가주도의 제도권교육이 남긴 쓰레기의 부스러기다. 저자는 자식들의 교육관에 대해서 상생을 강조한다.

"지금의 구조 속에서 성공한 전문가는 자원을 약탈할 가능성이 높은 사람이다. 그러니 너희는 소박하게 손으로 뭔가를 만들고, 먹을 것을 생산하고, 다른 존재들을 적절하게 돌볼 줄 아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 본문 중에서 -

쉰다섯 권의 서평을 읽으면서 내가 살고자 하는 삶을 먼저 살아가는 저자에게 동지애를 깊이 느꼈다. 소개된 책들을 다 읽지는 못하겠지만 살면서 꼭 읽어야 할 책을 알게 된 것은 큰 배움이다. 저자가  청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남에게 맞춰 살아가지 말라'는 것으로 글을 마친다.

"남들이 그대에게 맞춰 살아가길 기대할 수 없는 것처럼, 그대 또한 남에게 맞춰 살아가지 마라." - 젊은 회의주의자에게 보내는 편지 중에서, 크리스토프 히친스 -

덧붙이는 글 | 농사짓는 철학자 불편한 책을 권하다 / 도은 지음 / 행성:B잎새 / 14,000원



농사짓는 철학자 불편한 책을 권하다

도은 지음, 행성B(행성비)(2014)


태그:#농사, #도은, #아나키스트, #경쟁,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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