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17일)로 꼭 155일째가 된 세월호 사고. 해결된 바 하나 없이 잔인한 시간만 계속 흐르고 있다. 이 참사는 우리 사회가 불행하다는 것을 날 것 그대로 보여준다. 우리가 행복해지려면 이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고 했던가. 감히 단언하건대 지금 우리는 모두 불안한 영혼들이다.
우리는 왜 불안하고, 저들은 왜 행복할까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기자의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를 읽으면서 느낀 행복의 반대말은 불행이 아니라 '불안'이었다. '행복'으로 유지돼 온 사회와 '불안'으로 위태위태한 사회는 삶의 질과 가치가 다를 수밖에 없다. 저녁이 있는 삶 이전에 '내가 있는 삶'이 있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책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를 읽는 내내 마음이 몹시 불편(?)했다. 유엔의 행복지수 조사에서 2년 연속 세계 1위라는 덴마크 사람들의 행복 충만한 일터, 사회, 학교의 모습들을 보면서 자꾸만 우리의 불안하고 못난 현실을 비교하게 됐기 때문이다. 함께 책을 읽은 선배의 "부러우면 지는 거라는데 책 읽으면서 졌다"는 말이 공감됐다.
오연호 기자는 1년 반 동안 덴마크의 행복 사회를 취재하고 돌아본 이야기를 쉽고 친절하게 들려주고 있다. 저자는 덴마크에서 행복한 학교, 행복한 일터, 행복한 사회가 어떻게 가능했는지 돌아봄으로써 우리도 그와 같은 사회를 만들고, 그들처럼 행복한 삶을 누리자고 말하고 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미래로 '행복지수 1위' 덴마크를 제시한 셈이다. 이는 지난 2010년 <오마이뉴스> 창간 10주년 기념 특별 연중기획으로 진행한 '유러피언드림-그 현장을 가다'에서부터 진행돼 온 것이다.
26살의 나이에 쓴 책에서 미군의 횡포를 고발했던 "강인하고 새까만 얼굴과 깡마른 체구에 빛나는 눈을 지녔던 오군"(이부영 당시 전민련 의장의 추천사 중에서)이 26년이 지난 오늘 지천명의 나이에 '행복 사회'를 이정표로 세우고 덴마크 모델을 강조한 것도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다.
평생 학비와 병원비 등의 부담이 없는 나라, 부자일수록 더 많은 세금을 내고 심지어는 월급의 50% 이상까지 세금으로 내면서도 오히려 기뻐하는 사람들, 돈이 아닌 삶에서 행복을 찾으려는 사람들, 협동조합으로 평등과 상생의 문화를 만들어 가는 이들, 25년 동안 건강관리를 해주는 동네 병원 주치의가 있는 나라, 등수를 매기지 않고 성적으로 상을 주지 않는 학교, 교육부나 교장의 지시가 아닌 자율성을 갖고 학급과 수업을 이끌어가는 교사, 4년제 종합대학에 가는 비율이 40%밖에 안 되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스스로 길을 찾아 공부하는 학생들...
어느 하나 탐나지 않는 것이 없다. 여전히 '성장'과 '개발'을 기계처럼 읊조리며 진정한 삶의 가치에는 소홀한 우리의 결핍된 현실과 비교하면 덴마크의 삶은 '충만' 그 자체다.
행복에 익숙해지는 법, 덴마크에서 배운다지난 주말에 함께 공부하는 이들과 충북 제천의 마을 공동체를 다녀왔다. 그곳에서 10여 년째 삶과 일을 가꾸고 있는 분을 만나 그가 일군 마을 공동체 이야기를 들었다. 결코 혼자선 감당할 수 없는 일. 그는 이웃들과 더불어 해내고 있었다. 공식 연수 일정을 마치고 늦은 밤, 우리 일행의 숙소를 찾아온 그에게 물었다. "힘들지 않냐"고. 힘들다고 했다. 그럼 "행복하냐"고 물었다. 그는 말했다. "행복하다"고.
다음 날 돌아오는 차 안에서 '행복'이란 무엇일까 계속 생각했다. 책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에서 읽은 "행복이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것이죠. 기대를 충족시키는 것. 그건 주로 좋은 관계를 맺는 데서 나옵니다. 나는 좋은 관계 속에서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 행복합니다"라고 말했던 덴마크 로스킬레 대학 벤트 그레베 교수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행복은 저축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미래에 올지 안 올지 모르는 행복을 위해 현재의 불안을 당연시할 수는 없다. 지금 이 순간, 행복해야 한다. 그래야 훗날 미래에도 그 행복을 지키고 유지할 수 있다. 서툴고 어색해도 '행복'을 마다할 수는 없다. 이제는 우리도 마땅히 행복할 권리가 있다.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용어 번역의 아쉬움 |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를 읽다 보니 헷갈리는 용어들이 있었다. '초등학교'와 '학교 이사회'가 그것.
덴마크는 우리와 달리 초등학교와 중학교 과정을 따로 구분하지 않고 1~9학년으로 통합해 의무 교육인 기초 교육과정으로 운영한다. 그런데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에서는 이를 모두 '초등학교'라고 번역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과정을 통합하는 북유럽 국가들에 대한 이해가 없는 일반 독자들이 읽기에는 오독을 부를 수 있다. "덴마크의 초등학교는 9학년까지인데, 고등학교는 10학년이 아니라 11학년부터 시작한다(193쪽)"와 같은 문장이 대표적이다. 핀란드 학교를 표현할 때처럼 '종합 학교'라고 하는 게더 낫지 않을까.
'학교 이사회' 역시 우리가 생각하는 개념과 사뭇 차이가 있다. 한국에서 학교 이사회는 사립학교에만 있는 것으로 설립자나 그의 가족 혹은 친분 있는 이들이 이사로 있는 형태의 조직을 말한다.
"학교 행정의 최고 결정기관인 이사회"(160쪽)라는 표현이 말해주듯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에서 말하는 이사회는 우리의 개념과 다르다. 오히려 우리 식으로 하자면 '학교운영위원회'에 훨씬 더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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