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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용태(78ㆍ태안읍 동문5리ㆍ사진)ㆍ지순월(78ㆍ사진) 부부 오후 6시 30분. 할아버지가 할머니의 노상을 정리하고 집으로 향하기 전 취재진의 카메라에 화답했다.
황용태(78ㆍ태안읍 동문5리ㆍ사진)ㆍ지순월(78ㆍ사진) 부부오후 6시 30분. 할아버지가 할머니의 노상을 정리하고 집으로 향하기 전 취재진의 카메라에 화답했다. ⓒ 이미선

할머니가 장에 가는 날이면 어김없이 두 내외는 오토바이에 오이며 호박, 풋고추, 당근, 가지, 달걀, 쑥갓 등을 싣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뭐가 그리도 많은지 10여 가지에 달하는 채소는 할아버지의 오토바이 앞 발판과 뒷좌석까지를 모두 차지한다.

열일곱 꽃다운 나이에 부부라는 이름으로 인연을 맺은 두 사람은 올해 나이 일흔아홉 동갑내기. 황용태(78, 태안읍 동문5리)·지순월(78) 부부.

바람 불면 날아갈세라 비 내리면 옷 젖을 세라 금지옥엽 키운 5남매는 어느새 자신들처럼 새하얀 서릿발이 내려앉아 친구 같은 벗이 됐고,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증손주는 4대 가문의 영광을 빛내고 있다.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아직도 노부부는 비료가게와 시장 노점상 일로 경제적으로 부족함 없이 건강함을 유지하고 있다는 게 큰 자산이라면 자산.

"그저 건강하게 하루하루를 지낸다는 게 다지 뭐. 특별할 것이 없어." 끌끌 혀를 차며 취재진의 방문을 되레 이상스러운 얼굴로 흘끗 쳐다보는 할아버지.

태안읍 동문5리에서 나고 자라며 지금껏 호적 한번 옮긴 적 없다는 황용태 할아버지. 지금은 첫째 아들 황기남(60)씨에게 비료가게 대표 자리를 물려주고 여기 저기 6612m²(2천여평)에 달하는 밭을 일구는 걸로 새벽 5시에 시작하는 하루를 온전히 쓰고 있다.

소원면 천리포에서 태어나 열일곱 가마타고 시집와 태안읍내서 평생을 살고 있는 지순월 할머니. 다음 달이면 백일인 증손자의 재롱을 보며 꼬부라진 허리가 더 휘도록 밭과 시장을 오가지만 자식들에게 떳떳한 엄마로, 또 할머니로 기억되길 바라며 오늘도 시장 노점에 앉았다.

자식 모두가 건강히 장성해 이젠 그만 쉬셔도 되련만 마을 경로당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보단 사람 많고 시끌벅적한 시장이 좋다며 오늘도 시장과 밭을 찾은 두 내외. 지난 19일 가을이라곤 하지만 아직 한낮이면 뜨거운 태양이 시장 노상에 앉은 할머니의 이마에 뜨거움을 적시는 오후 사람들과 웃으며 물건 값을 흥정하는 할머니를 만났다.

"어머니가 글자를 모르세요. 그래도 돈 계산만큼은 한 치의 오차가 없으시죠."

장사하는 모습을 바라보던 둘째 아들 황기상(57)씨가 어머니에 대해 입을 열었다.

"제 위로 형님, 아래로 여동생 하나, 남동생 둘이 있는데 모두 둘씩 자식을 낳았어요. 그러면 10명 아닙니까? 어머니가 대학갈 때 손자들에게 100만 원씩을 입학선물로 주시는가 하면 세뱃돈으로도 10만 원씩을 주세요. 자식 된 도리로서 생각한다면 아픈 몸 이끌고 일하시러 나오는 게 가슴 아프지만 본인들이 열심히 벌어 보람되게 쓰신다며 저희 형제들의 만류에도 한사코 손사래를 치십니다. 저야 뭐 항상 고맙고 감사할 따름이죠."

땀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가르침을 토대로 황기상씨도 태안에서만 벌써 38년째 전자 및 이벤트 일로 굳은살이 박힐 대로 박힌 베테랑.

70대인 아버지와 60대인 큰형님, 50대인 본인이 나란히 앉아 세상 돌아가는 얘기라도 할라치면 세월의 무상함에 먼지 묻은 바람도 참으로 고맙게만 느껴진다.

그 시각 장남인 기남씨와 비료가게 안에 앉아 잠깐 선풍기 바람을 쐬던 할아버지는 마늘 비료 10포대를 사러온 사람들과 잠깐 동안 얘기를 나눈다.

지금껏 그래왔지만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그렇게 서로를 다른 공간에서 또 그리워하고 있다. 저녁 6시. 부쩍 해가 짧아진 탓에 7시면 하던 것을 6시 30분이면 장옥을 마감한다.

아침에 널어놨던 채소들을 다시 싸 짊어지고 오기 위해 할아버지가 시장을 찾았다. 비록 많은 양을 팔진 못했지만 웃는 얼굴로 할아버지를 반기는 할머니. 오늘도 당당히 자신들이 농사 지은 양심을 팔았기에 하루는 더욱 뜻 깊고 보람되다.

오늘 남은 물량을 바구니 2개에 빼곡히 쌓고 나서야 헬멧을 쓰고 오토바이에 탄 할아버지.
오토바이가 똑바로 서자 뒤로 돌아 할아버지 뒤로 할머니가 앉는다.

"허리가 꼬부라져서 잘 서기도 어려운데 할아버지가 이렇게 내 손 발이 돼주니까 너무 좋아. 호호호"

쑥스러운 할머니의 미소는 그 옛날 가마를 타고 갓 시집온 열일곱 소녀의 얼굴을 기억하는 듯 하다.

"이젠 뭐 이룰 게 없지뭐. 증손자까지 봤는데. 그저 안 아프고 우리 두 내외 건강히 살다 가는데 마지막 소망이라면 소망이야."

예순아홉의 나이에 한번에 운전면허 2종에 합격한 도전의 사나이 할아버지는 아직은 두 내외가 더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오토바이를 고수하고 싶다며 저녁 편안한 황혼 노을 뒤로 오토바이를 탄 채 사라졌다. 그렇게 할아버지, 할머니의 오늘도 저물어 간다.

60년을 잠깐의 청춘처럼 아름답게 불태우고 자식들에게, 혹 사람들에게 노년의 향기로움을 전하고 있는 이 부부의 모습이 호젓하지만 아름다운 노년을 노래하는 한권의 지침서가 될 수 있길 바라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태안미래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황용태#지순월#태안군#노점상#비료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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