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화 국회의장이 예고한 30일 본회의를 이틀 앞둔 시점에서 여야의 협상은 전무했다. 의장이 주말 사이 여야가 세월호 특별법 협상 최종타결을 주문한 것도 소용이 없었다. 새누리당은 전혀 움직일 생각이 없어 보였다. 문희상 새정치민주연합 비상대책위원장의 작심 비판도 통하지 않았다. 국회가 또 다시 공전될 우려와 세월호 특별법 협상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대표회담 단칼에 거절한 새누리당문희상 새정치연합 비상대책위원장은 본회의를 이틀 앞둔 28일 오전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여야 대표회담을 제안했다. 막힌 정국을 뚫자는 의미였지만 발언 수위는 상당히 높았다. 세월호 특별법과 국회 정상화를 위한 방안을 대표 회담에서 '담판' 짓자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참사의 책임이 야당에게 있다는 것인가? 적반하장도 유분수"라며 "가장 큰 책임은 정부와 여당에 있다는 것을 확실히 말씀 드린다"라고 새누리당을 강하게 질타했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문 위원장의 제안과 비판을 단칼에 일축했다. 시간이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문 위원장의 회담 제안 기자회견이 끝나고 10여 분 후 김영우 새누리당 수석대변인은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야당이 모든 책임을 청와대와 여당에만 전가시키는 일이야말로 적반하장"이라고 비판했다. 문 위원장의 회담 제안을 사실상 거절하면서 세월호 특별법과 관련해서는 어떤 협상도 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분명히 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여야는 30일 본회의를 앞두고 주말 내내 세월호 특별법 협상을 한 차례도 하지 못했다. 지난 26일 정의화 의장이 특별법 협상과 국회정상화를 위한 추가 협의를 주문하며 본회의를 연기했지만, 그때와 달라진 것은 전혀 없다. 새누리당은 90여 개 법안처리를 위해 야당의 조건 없는 등원을 요구하고, 새정치연합은 세월호 특별법 합의가 이뤄져야 본회의에 참석하겠다고 버티면서 여야는 계속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불리해진 쪽은 야당이다. 정의화 의장은 본회의를 연기해 달라는 새정치연합 측의 진정성을 받아들였지만, 그와 함께 30일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본회의를 열어 국회일정과 법안을 처리하겠다는 확고한 의지도 표현했다. 12월 2일로 예정된 예산안 처리와 국정감사 등의 국회일정은 반드시 정상적으로 진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정 의장이 차기 본회의도 야당의 요구대로 연기하거나 산회시킬 가능성은 희박한 상태다.
새누리당이 추가적인 세월호 특별법 협상에 나서지 않는다면, 새정치연합은 결국 30일 국회 참석을 놓고 깊은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의장이 야당의 뜻을 수용해 한차례 연기한 본회의에 또 다시 불참하기에는 명분이 약하기 때문이다. 새정치연합은 29일 의원총회를 열고 본회의 참석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국회 공전에 세월호 특별법 장기화 국면 가나
이날 새정치연합 의원총회 결과에 따라 두 가지 상황을 예측할 수 있다. 여당이 세월호 특별법 협상에 나설 가능성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특별법 제정은 불가능하다. 현재 법안이 상정돼 있지도 않고, 야당과 유가족이 반대하는 특별법을 여당이 단독으로 처리하기엔는 정치적 부담이 크다. 결국 국회가 정상화 되느냐, 아니면 다시 일정기간 파행되는냐로 모아진다. 어느 쪽으로 결론이 나든 특별법 협상은 장기화될 수밖에 없는 국면이다.
당초 새정치연합은 주말동안 이뤄지는 세월호 특별법 협상에서 합의안이 나오면 그 합의안을 의원총회에서 최종 논의하겠다는 계획이었다. 새정치연합의 그동안 당론은 세월호 특별법과 다른 법안을 묶어 처리해야 한다는 것이었지만, 협상이 전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본회의 참석 여부를 이야기 할 수밖에 없다.
현재로서는 본회의 참석을 놓고 큰 논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지만, 일각에서는 본회의에 참석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코앞에 닥친 국정감사와 예산안 처리 같은 의사일정은 법안처리를 미루는 것 이상의 정치적 부담을 져야 한다. 또 세월호 특별법 역시 여당이 꼼짝도 하지 않는 상태에서 불완전한 형태로 제정되는 것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제대로 된 법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개혁적 성향의 한 초선 의원은 "여당이 자신들의 책임을 무시하는 상황에서 제대로 된 특별법을 만들기 어렵다는 게 현실적인 인식"이라며 "본회의를 계속 거부하는 것도 부담스럽다, 처음부터 세월호 특별법을 여야만의 협상이 아니라 유가족과 시민사회까지 아우르는 테이블에서 논의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30일 본회의 참석은 더 고민해봐야겠지만, 우리가 더 어떻게 할 수 있는 방안이 떠오르지 않는다"라고 고충을 토로했다.
3선의 한 중진 의원은 "더 이상 국회 정상화를 미루기 어렵다, 세월호 특별법 협상도 국회도 포기해서는 안 된다"라며 "세월호 특별법은 유가족과 협의해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 뜻을 충분히 수용할 수 있는 법안을 만드는 쪽으로 가야 하고, 국회도 제대로 돌아갈 수 있게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한편,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과 비상대책위원들은 이날 오후 국회 외부에서 모여 새누리당의 협상 불응과 29일 의원총회에 대응하기 위한 회의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