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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올 한 올 알알이 얄궂은 마음들이 맺혀 있다. 그래서 읽는 이의 가슴에도 멍울이 진다. 난 무엇하고 있었나? 난 무엇을 하고 있나? 난 이제 무엇을 해야 하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답이 안 나온다. 그래서 피멍이 맺힌다. 할 수 있었는데 안 하는 것하고, 할 수 없어서 못 하는 것은 다르다. 전자이기에 아프다. 워낙 아프다.

그 아픔들이 여기 모여 있다. '0416', 무슨 난수표 같지만 아니다. 4월 16일, 돈이라는 맘몬에 엮인 세월호가 300여 명을 안고 맹골수도에 침몰하며 물귀신 작전을 펼친 날이다. 책 <0416>(한겨레 펴냄)은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한겨레신문>이 '한국사회의 길을 묻다'란 제목으로 공모한 에세이들을 묶은 책이다.

이제라도 진정한 어른이 되기를

 책 <0416>의 표지
책 <0416>의 표지 ⓒ 한겨레
피멍과 절규가 오롯이 스며있다. 그때 내가 아무것도 한 일이 없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내가 지금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게 더 슬프다. 그런 '나'들이 여기 모였다.

그리고 정부나 선주나 선장을 원망하기에 앞서 '나'를 채근한다. 이 '나'들은 자신이 죽은 아이들의 부모다. 그들이 그 아이들이다. 선주이며 선원이며, 대통령이며 정부다.

이제 잊으라고들 한다. 이제는 그만 '세·월·호'에서 나오라고들 한다. 그러나 그 '나'들은 그럴 수 없어 노란 리본을 심장에 꽂은 채 오늘도 글 속에서 절규한다.

미처 어른이 되지 못한 '나'는 어른이 되고자 하는 학생들을 향하여 "가만히 있으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이내 후회하곤 이제라도 어른이 되겠다고 결심한다.

"마지막 순간까지 배를 탈출하라는 어른들의 목소리와 구조의 손길을 '가만히 있으며' 하염없이 기다렸을 친구들, 그 친구들이 진정으로 보고 싶어 했을 '진짜 어른'들의 대한민국을 나는 기다립니다. 아니, 이제부터 내가 그 어른이 될 것입니다. 내 마음속의 노란 리본, '2014년 4월 16일 세월호'는 그런 어른이 될 나를 기다리며 내 기억 속에 꼭 매달려 있을 것입니다."(18쪽)

이 절규가 감정만이 아니다. 이 절규가 위로만이 아니다. 진정한 가치의 회복을, 진정한 사람됨의 희구를, 진정으로 보이는 세계의 환상이 아니라 더 깊은 곳의 진리를 추구하자고 한다. "공감의 능력이 결여된 정권은 발연기와 발연출로 막장극"을 만들어 시청자를 우롱하지만, "방치된 죽음이 중계"되는 마당에서 놀지만, '나'들은 깨어있어 더욱 가슴이 매어진다. "타인의 고통"으로 남으면 안 되기에, '나'는 '너'가 된다.

"그 길은 '나'라는 길이 '너'라는 길에서 흘러나오고 있음을 깨닫고 지금 걷는 이 길이 무수한 너의 발자국으로부터 나온 것임을 이해하면서 걸어가게 될 때 우리가 가는 길은 더 선명해질 것입니다."(54쪽)

이제라도 천천히 바르게 가기를

올리히 벡은 유럽이 150년이나 걸려 이룬 근대화를 한국은 15년 만에 이뤘기에 위험에 대처할 능력이 없다고 말한다. '부조리 백화점'인 대한민국호가 문제다. 박근혜 대통령은 말끝마다 '규제완화'를 들먹인다. 아직도 고도성장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경제망령이 대한민국호를 침몰시키고 있다. 침몰해 가는 대한민국호의 일등석에 앉아 지금도 경제타령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가만히 있으라"고 외치고 자기는 도망을 친 선장처럼.

"삶의 방식을 바꾸기 전에 병은 낫지 않는다"는 니체의 충언을 새겨 볼 때다. '경제 대통령'을 자처하는 이나 '경제 대통령'을 요구하는 이나 공범이다. 세월호를 침몰시킨 공범이요, 대한민국호를 침몰시키고 있는 공범이다.

이제 방향키를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에서 인간적으로 살아가는 사회를 향하여 천천히 전환하기로 온 국민이 인정해야 한다. 잘(풍요롭게) 사는 게 문제가 아니고 바르게 제대로 사는 게 문제다. 돈으로 꾸려나가는 사회가 아니라 사람답게 사는 사회여야 한다. 좋은 삶은 돈 주고 살 수 없다.

이참에 종교를 탓하는 이들이 있다. 전적으로 감내하고자 한다. 내가 기독교인이며 목사로서 참 잘못했다. 유병언이 이단의 수장이라며 피해가고 싶은 생각은 차마 못하겠다. '그'가 바로 '나'다. 304명을 주검으로 거두고 가슴으로 멍울을 삼키는 이들에게 유병언이 정통 기독교인이 아니란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제라도 맘몬숭배에서 벗어나야

책에서 정문순씨가 "대통령을 위시하여 국민의 방송이라는 공영방송사의 간부, 부자교회 목사, 재벌 집 자식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 기득권의 정점에서 단맛을 맛보는 자리"라고 말한 대목에 주목한다. "부자교회 목사"는 "재벌 집 자식"과 나란히 쓰였다. 그렇다. 내가 목사다. 부자교회는 아니지만 부자교회를 탐하는 목사다.

'축복'이라는 말을 쓸 때 어느 정도 '돈'이라는 가치를 인정하고 썼다. 이런 '나'들이 '목사'들이라면 잘못되었다. 부디 나만 그런 목사였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게 나만이 아니란 걸 모든 국민은 알고 있다. 이게 기독교의 현주소다. 이게 모든 종교의 비극적 상황이다. 다른 종교는 끌고 들어갈 생각이 없지만 이 나라의 종교가 정말 이런 데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고등종교의 핵심인 '가장 낮은 곳'에서 절대자가 제시하는 길을 갈망하든지 아니면 인생의 허무를 극복할 수 있는 정신적인 뿌리에 대한 개인의 영성적 성찰을 해야 한다. (중략) 이 민족의 미래를 걱정하는 작은 무리와 더하여 극소수의 종교인만 피를 토하듯 절규하고, 도시의 대형교회와 성당, 절간의 종탑은 거만하게 서 있으며 사람들에게 구도의 삶을 각성케 하는 고등종교로써의 책임을 멈춰버린 지 이미 오래되었다."(108쪽)

"가장 거룩하고 재물과 멀리 있어야 하는 종교마저도 예외가 아니고 아무리 신실하여도 조그만 교회의 목회자는 오히려 무시와 조롱의 대상이 되는 것이 작금의 대한민국 현실이다."(173쪽)

그렇다. 세월호는 유병언, 선장, 정부, 정치가 침몰시킨 게 아니다. 바로 '나'같은 목사(종교지도자)가 침몰시킨 것이다. 축복의 개념조차도 제대로 가르치지 않은 '나'가 침몰시킨 것이다. 세상가치를 말하면서 천국을 들먹이는 종교주의자들이 침몰시킨 것이다.

물신이 지배하는 사회를 조장했던 '나', 자본을 종교로 숭배하도록 내버려 두었던 '나', 교회 사이즈로 목회성공을 가늠하도록 방치했던 '나', 얼마나 빠른 기한에 교인의 수를 더했느냐를 물었던 '나', 마틴 루터킹 목사가 말했던 "선한 사람들의 소를 끼치는 침묵"을 방기했던 '나', '나'를 회개한다.

그리고 이제라도 좋으니 교회들이여! 맘몬숭배에서 나오자! 이제 혼자만 잘 살려는 세상에 같이 잘살자고 외치자! '빨리빨리'를 외치는 세상에 '천천히 바르게'라고 말하자. 그래도 교회에는 어른이 있더란 말 좀 듣자! 제발, '나'들이여!

덧붙이는 글 | <0416>(장윤서 외 58인 지음 / 한겨레 펴냄 / 2014. 9. / 363쪽 / 1만3천 원)



0416 : 세월호 참사 글쓰기 공모작 - 세월호 참사 계기 한겨레 <한국 사회의 길을 묻다> 에세이 공모전 선정작 모음집

강경숙 외 61인 지음, 한겨레신문사(2014)


#0416#세월호#한국 사회의 길을 묻다#에세이 공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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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행복이라 믿는 하루가 또 찾아왔습니다. 하루하루를 행복으로 엮으며 짓는 삶을 그분과 함께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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