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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2014년 10월 5일 근정전 앞
경복궁2014년 10월 5일 근정전 앞 ⓒ 이정근

땅은 우리 땅인데 한국인 절반, 외국인 절반이 아니라 거의 대부분이 중국 사람인 곳이 있다. 경복궁이 그렇다. 뿐만 아니라 흥례문, 근정전, 건청궁 모두가 중국인 세상이다. 그리고 경복궁 북문인 신무문 밖 청와대 앞까지 중국인 천지다.

중국 국경절(10월 1일)을 맞은 요우커(중국인 관광객)가 경복궁을 점령해버린 결과다. 경복궁 경내 어디를 가도 중국말 소리가 넘쳐난다. 여기가 중국인지 한국인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다.

경복궁 신무문 앞. 청와대 정문 앞이다
경복궁신무문 앞. 청와대 정문 앞이다 ⓒ 이정근

넘쳐나는 중국인 관광객, 좋은 현상이다. 다다익선이라 했던가. 명동과 쇼핑센터에는 관광객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중국인들의 손이 크다 하지 않은가. 하지만 역사 유적지에 중국인 관광객이 넘쳐나는 것을 꼭 좋아할 수만은 없다.

정숙해야 할 궁궐에서 도떼기시장처럼 고성을 지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으슥한 곳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도 있다. 간접흡연이 문제가 아니라 화재가 우려된다. 이러한 것은 지엽적인 문제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역사 인식이다.

폄하는 간단하고 왜곡은 순간이다

 경복궁 경회루
경복궁 경회루 ⓒ 이정근

광화문을 지나고 근정문을 지나 근정전을 바라보던 중국 관광객이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오문을 지나고 태화문을 지나 태화전에 이르는 구조도 똑 같구만, 신무문은 아예 이름까지 같고.' 자금성이 뇌리에 남아 있는 중국 관광객이 비웃음을 날린다.

'그러면 그렇지, 한국이 조금 잘 나가는 것 같아서 대단한 나라인 줄 알았는데 별거 아니구먼.'

그 눈빛에서 조선 관리들을 대하던 중국 사신의 오만함이 느껴졌다면 비약일까? 여기에 소영웅심에 들뜬 유학생 가이드가 기름을 친다. '경복궁이 자금성을 모방하여 따라지었다'고. 폄하는 간단하고 왜곡은 순간이다.

인정한다. 자금성은 크고 웅장하다. 경복궁은 작고 아담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중국은 큰 나라이고 자금성은 황제의 공간이다. 하지만 제후국 조선이 당연히 따라지었을 것이라고 예단하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중국인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자만이고, 한국인이 이렇게 생각한다면 알아서 기는 문화사대주의다.

형보다 먼저 태어난 동생은 없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명을 받들어 정도전이 경복궁을 짓기 시작한 것이 1394년. 일사천리로 밀어붙여 그 이듬해 1395년 완공했다. 이때 중국의 수도는 남경이었다.

경복궁이 완공되고 11년이 지난 1406년, 조카를 몰아내고 황제의 자리에 오른 영락제가 수도를 북경으로 옮기고 자금성을 짓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형이 동생을 모방할 수 없다. 역사는 왜곡할 수 있지만 진실은 살아 있다.

관광 선진국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에서는 외국 단체 여행객이 주요 역사유적지를 관람할 때, 자격증을 취득한 자국 가이드가 관광객을 안내하도록 하는 것이 법제화되어 있다. 미국 관광객이 들어오면 영어를 할 줄 아는 가이드가 나서고 일본인이 들어오면 일본어를 구사할 줄 아는 가이드가 안내하는 시스템이다.

이탈리아 버스에 동승한 이탈이아 가이드가 설명하고 한국인이 통역하는 시스템이다
이탈리아버스에 동승한 이탈이아 가이드가 설명하고 한국인이 통역하는 시스템이다 ⓒ 이정근

스페인 알람브라 궁전은 특이하다. 에스파냐 인 2명이 나선다. 알람브라 궁전이 속해 있는 지역 언어로 설명하는 가이드가 있고 그것을 스페인어로 직역하는 것을 한국인이 통역한다.
스페인알람브라 궁전은 특이하다. 에스파냐 인 2명이 나선다. 알람브라 궁전이 속해 있는 지역 언어로 설명하는 가이드가 있고 그것을 스페인어로 직역하는 것을 한국인이 통역한다. ⓒ 이정근

그렇다면 한국인이 오면 어떻게 할까? 한국 관광객은 폭증하는데 한국어를 구사할 줄 아는 가이드가 없다. 그래서 현지에 있는 한국인이나 유학생을 고용하여 가이드로 활용한다. 밥그릇을 지키기 위한 편법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고용창출과 함께 역사유물에 대한 왜곡 방지다. 요우커 600만 시대, 이런 외국의 지혜가 아쉽다.


#경복궁#요우커#스페인#가이드#관광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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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 <병자호란>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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