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창한 가을 하늘이 연일 계속되고 있어서 이번 주말에는 남부의 바닷가를 다녀오기로 했다. 그런데 텔레비전 화면은 적도 부근의 바다에서 발생한 거대한 달팽이 모양의 구름띠 가장자리가 남부지방 인근에 자리잡고 있는 위성사진을 보여주었다. 기상캐스터는 대한해협 인근의 촘촘한 등압선을 가리키며 주말 내내 남부 지방에 강풍이 불 것이라고 경고했다. 아쉽긴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바닷가 날씨가 때로는 좋지 않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니까.
복잡하지 않은 관측 자료와 앞선 경험만으로 장마가 시작될지 눈보라가 그칠지 내일의 기상을 알아 맞출 수 있다는 것, 나아가 미리 대비할 수 있다는 점은 놀라운 일이다. 그렇다면 아내가 '저기압'이거나 사무실에 '먹구름'이 잔뜩 끼었을 때 역시, 같은 방식으로 기상도를 예측하고 대처할 수는 없을까.
프랑스의 정신과 전문의 프랑수아 를로르와 심리치료사 크리스토프 앙드레가 인간관계의 기상전문가가 되어, 이상 징후를 보이는 성격의 기상도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지침서를 마련했다.
이상 징후를 보이는 성격은 금방이라도 폭풍우가 몰아치거나 한파가 급습할 것 같아서 '내 인생에 없었으면' 하고 바라는 사람들의 성격, 다시 말해 사람들의 대처가 절실한 '힘든 성격들'이다.
두 전문의는 기업에서 스트레스 관리를 자문해 주면서 만난 다양한 직급과 수준의 직장인들이 가정과 직장에서 겪은 '힘든 성격들'에 대한 상담 경험들을 <내 인생에 너만 없었다면>(책담, 2014)으로 정리했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 사회는 점점 강박적으로 되어 간다고 말할 수 있다. 대량생산으로 인해 기업들은 점점 더 엄격한 절차를 고안해 내야 했다. 언제든 경쟁사로 갈 수 있는 까다로운 소비자들을 만족시키려면 모두 동일하고 완벽하게 믿을 만한 제품들을 생산해 내야 하기 때문이다. 안전에 대한 걱정 때문에 요쿠르트 제조에서부터 아기 의자나 자동차 제조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에서 표준이 만들어졌다. 이 모든 절차들은 꾸준하게 평가와 검사를 받는다. … 현대의 정부는 수치와 수치, 더욱 검증된 수치들을 요구한다. 그러므로 현대 사회는 강박성 성격의 사람들에게도 자리를 내어 준다." (4장 '강박성 성격에 대처하는 법', p112)강박성 성격의 사람들은 세부 사항과 절차, 정리, 조직에 집착하는 완벽주의자이며, 고집이 세고 자기가 정한 규칙에 따라 자신이 생각한 대로 일이 진행되도록 끈질기게 주장한다. 따뜻한 감정을 표현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매우 형식적이고 차가우며 어찌할 바를 몰라 인간관계에 냉정하다.
또한 실수할까 봐 두려워서 결정을 내리는 데 어려움이 많고, 망설이거나 지나치게 궤변을 늘어놓는다. 강박성 사회가 양산한 이러한 강박성 성격의 소유자들은 나의 상사일 수도, 직장 동료나 부하직원일 수도, 나의 배우자, 그리고 바로 내 자신일 수도 있다.
이렇게 <내 인생에 너만 없었다면>의 '힘든 성격' 유형들을 하나씩 살펴보고 있으면, 역사책과 소설 혹은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우리의 인간관계 테두리 안에 있는 여러 사람들이 떠오른다. 가령 세상에 대한 불신과 완고함을 보이는 편집성 성격이나, 자신은 특별한 존재이기 때문에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규칙이 자신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믿는 자기애성 성격의 경우, 독재자들에게서 쉽게 발견된다. 그런데, 우리 주위에는 스탈린과 같은 독재자들의 목록이 또 얼마나 많은가.
"극단적으로 의심하는 그들의 성격은 전쟁이나 쿠데타, 혁명 등 권좌에 이르기까지 겪은 위험천만한 상황들에서 살아남도록 도와준 장점이었다. 더구나 그들의 완고함과 에너지는 두려움에 떨고 길을 잃은 국민들 눈에는 매우 안심이 되는 지도자의 모습으로 보인다. 그들이 제시하는 간단하고 자극적인 해결책의 공통점은 현재의 비극을 낳은 주적을 찾아내는 것으로, 적이 해를 끼치지 못하도록 막으면 평화와 행복이 돌아온다는 것이다. 시대나 정치 경향에 따라 '적'은 달라진다. 그렇지만 편집성 성격의 소유자는 꾸준히 적들을 제거해야 행복하고 정의로운 사회가 온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 (2장 '편집성 성격에 대처하는 법', p51)<꾸뻬 씨의 행복 여행>으로 '나는 행복한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에 잔잔한 배움을 일러주었던 를로르와 <나라서 참 다행이다>의 마음주치의 앙드레는 오랜 연구와 철저한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풍부한 예시들을 보여주고 있어, 곳곳에서 정말 '내 이야기' 같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또한 다른 많은 온화한 성격들 보다 비바람 치는 '힘든 성격'들이 성격 특성을 결정짓는 환경 요소에 의해 어떻게 여러 세대를 거쳐 오늘날 더욱 발달할 수 있었는지를 진화론적 관점에서 충실히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를로르와 앙드레는 '힘든 성격'이 고통스럽지만 '내 인생에서 없애려고' 하지 말라고 강조한다. 우리가 대머리나 근시를 가진 사람에게 왜 머리카락이 없는지 글을 잘 읽지 못하는지 따지거나 발목을 접질린 사람에게 왜 절뚝거리느냐고 비난하지 않는 것처럼, '힘든 성격'도 배척의 대상이 아니라 이해의 대상이라는 점을 상기시키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를로르와 앙드레는 인간관계의 기상전문가로서 11가지 '힘든 성격'에 대해 '이렇게 하라', '이렇게 하지 마라'라는 통찰력 있는 대처방법들을 제시한다. 임상 경험의 성공적인 실례들과 함께 정리된 이 대처방법들은 이 책을 가까이에 놓고 수시로 펼쳐봐야 할 훌륭한 지침서로 만들어준다.
이 지침서만 있다면, 가정과 직장에 닥치는 어떤 악천후 속에서도 인간관계의 항해를 평화롭고 흥미롭게 계속할 수 있을 것 같다. 다음 주에는 강풍을 동반한 태풍이 어서 지나고 남부지방의 바다에도 눈부신 햇살이 비쳤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