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략전쟁에 필요한 노동력(광산이나 비행장, 참호를 만드는 일) 동원도 황민화 정책의 일환으로 매우 흔하게 이루어졌다. 이 노동력 안에는 '성노예'도 포함되어 있었다. …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위안소'를 설치한 데에는 장병들의 성병 예방이라는 목적도 포함되어 있었다. 일본군은 일본인 창기보다 조선인 소녀가 '황군장병들을 위한 선물'로 적당하다고 판단한 것 같다. 만약 종이 한 장을 들이밀고 일본인 여성들을 연행하려고 했다면, 틀림없이 병사들은 심하게 동요했을 것이다. … 당시 병사들 사이에서 "조선의 젊은 여자를 모두 긁어모아 위안부로 삼아 조선 민족의 종자를 절명시켜야 한다"는 발언도 공공연하게 나돌았다고 한다. 김일면(기자 주:위안부 관련 연구자)씨는 일본이 조선에 아편을 밀수입하고 공창제와 도박을 성행하게 함으로써 멸망시키려고 했다는 주장을 폈다. - <일본군 '위안부'가 된 소녀들>에서
<일본군 '위안부'가 된 소녀들>(삼천리 펴냄)이란 제목만으로 무엇을 다룬 어떤 책인지 지레짐작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1932년과 1937년 중국과 일본 간 무력 충돌이 발생한다. 이것이 상해사변(상하이사변). 첫 상해사변 당시 일본 군인들에 의한 강간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이에 점령지역인 중국에서 반일감정이 고조되고, 성병에 감염되는 군인들이 발생한다. 이로써 전쟁수행의 차질을 실감한 일본은 '위안소' 제도를 도입하게 된다.
일본 정부의 위안소 도입으로 식민지 및 침략지 여성들의 동원이 시작되었다. 우리 정부에 등록된 피해자들의 실태조사를 통해 밝혀진, 당시 위안부로 끌려간 여성들의 나이는 11세부터 27세까지.
취업사기는 기본, 당시 일본은 위 인용 부분에서처럼 종이 한 장은커녕 갖은 구실로 동원령을 내려 끌고 가거나, 심지어는 길을 가는 여성을 끌고 가기도 했다고 한다.
그간 일본 정부가 위안소 제도를 도입했고, 적극 지원했음을 말해주는 명확한 근거들이 속속 세상에 드러났다. 당시 위안부로 끌려갔던 수많은 여성들과 위안소를 이용한 적이 있는 당시 장병이었던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 그리고 당시의 자료들을 통해 말이다. 그럼에도 일본 정부는 민갑업자들에 의한 인신매매 정도로 변명, 침묵하고 있다.
"내 방은 두 줄로 늘어선 방중에 하나였어요. 겨울이 되면 벽에 두껍게 얼음이 생겼고, 방바닥 양쪽 끝은 홈을 피놓아 더러운 물이 흘러갈 수 있도록 되어 있었어요. 어떤 날은 하루에 20~30명이나 되는 군인을 상대해야 했어요." (문옥주)"어머니, 어머니 이 사람들이 나를 끌고 가요 하면서 울었어요.… (멀미로) 배안 화장실로 가서 토하고 있을 때 해군이 와서 범했어요. 다른 여자들도 모두 그 배안에서 강간당했어요." (이용수)"그곳에서 짐승 같은 대접을 받으며 지냈어요. 주는 대로 받아먹고 주는 대로 입어야 했고. 외출이라도 하려면 군복을 입어야만 했어요. 방에서는 속옷만 입은 상태로 지내야 했으며, 조금이라도 반항하면 폭력이 날아들었어요. 전투에서 돌아온 군인들을 열 명이고 스무 명이고 상대해야만 했습니다. 그 고통을 말로는 다 표현하지 못해요." (김학순)문옥자(1924~1996)씨는 친구와 놀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군복차림의 일본인 손에 끌려가 위안부가 되었고, 또 다른 사례자 이용수(1928~)씨는 1944년 가을에 친구와 쑥을 캔 후 강가에서 놀다가 군복차림의 두 일본인 눈에 띄는 바람에 끌려가 위안부가 되었다.
1991년 12월 9일 도쿄 스이도바시에 있는 YMCA 아시아청소년센타에서 위안부의 실상을 폭로한 바 있는 김학순(1922~1997)씨는 아버지와 친구 이렇게 셋이 중국 베이징으로 일자리를 찾아 갔다가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끌려가 위안부가 되어 짐승보다 못한 생활을 해야만 했다고 한다.
책 속 또 다른 사례자인 노청자(1920~2004)씨는 16세에 산길을 혼자 가다가, 윤두리(1928~2009)씨는 경찰서 앞을 지나가다가, 이미 결혼한 몸이었던 유유타씨는 우물에 물 길러 갔다 지나가던 일본 순사에게 끌려가 위안부가 되었다고 한다.
<일본군 '위안부'가 된 소녀들>은 이처럼 어느 날 갑자기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가 혹은 공부도 공짜로 시켜주고 돈도 많이 벌게 해준다와 같은 감언이설에 속아 위안부로 끌려가 일본군만을 위한 성노리개로 살아야만 했던 수많은 위안부들의 생생한 증언을 바탕으로 일제강점기 당시 위안소와 위안부 관련 많은 것들을 드러내는 책이다.
언제 어떻게 어디로 끌려가 위안부가 되었으며, 위안부의 생활은 어땠는가. 어떤 대접을 받았고 관련해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가? 등과 같은 생생한 증언을 바탕으로 일본 내 강연 내용과 저술 등을 참고, 위안소는 어떤 배경에 의해 어떻게 설치되었으며, 당시 일본의 분위기, 일본정부와 일본군대의 위안소 정책과 지원 등을 낱낱이 들려준다.
이 책의 저자는 인권운동가들 사이에 일본의 양심으로 불리는 이사카와 이쓰코. 시인이자 교사이며 반전 운동가인 그는 스스로 반핵과 반전 평화를 실천, 관련 잡지(계간지)인 <히로시마-나가사키를 생각한다>를 100호까지 발간했고, <한국 원폭 피해자들의 수기> 등 일본 근현대사의 치부를 파헤치는 책을 여러 권 펴냈다고 한다.
이 책은 이런 저자가 한국정신대대책협의회가 창립(1990년)되고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이 세상에 처음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1993년에 발간된 <'종군 위안부'가 된 소녀들>, 그 개정판. 올해로 82세가 된 저자가 지난날 직접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니고, 한국의 나눔의 집까지 찾아와 지금은 고인이 된 할머니들을 취재, 인터뷰한 것을 바탕으로 쓴 책에 최근의 정황을 보충해 다시 발간한 것이라고 한다.(출판사의 저자 프로필 인용 정리)
(위안부) 그 실상은 여러 공문서와 피해자들의 피를 토하는 증언, 가해자였던 병사들의 증언을 통해 밝혀졌습니다. 그럼에도 이 모든 것을 어둠 속에 매장시키고 은폐하려는 세력이 유감스럽게도 아직 일본에 판을 치고 있습니다. 최근 재일 한국ˑ조선인, 재일 중국인에 대한 비열한 '헤이트 스피치'가 나타난 것은 부정적인 역사를 은폐하려는 국가의 정책에 중요한 원인이 있습니다. 유엔의 기관들이 수차례 권고와 제언을 했지만 일본 정부는 일관되게 무시해 오고 있습니다. 교과서 검정을 통해 '위안부'에 대한 기술을 완전히 삭제해 버린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소녀들에게만큼은 진실을 알렸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쓰게 되었습니다. 피해자들과 같은 또래로 그 시대를 살았던 가해국의 소녀였던 책임으로서 말입니다. - '저자의 말' 중에서책은 아키란 일본 소녀가 일본 내 종군 위안부 마을인 '가니타 여성마을(기자 주:지바 현 다테야마 소재)'을 반전 운동가인 가와세 마키코와 함께 방문, 그곳에서 보고 들은 것들을 친구 유미에게 편지로 들려주는 형식으로 시작된다. 반전과 위안부 문제는 두 소녀의 공통 관심사. 두 소녀가 이에 대해 자신들의 생각을 말하기도 하고, 가와세 마키코씨나 다른 활동가들의 관련 글 등을 함께 읽고 자신의 생각을 들려주는 형식으로 써졌다.
저자가 이런 형식으로 이 책을 쓴 이유는 위 저자의 말에 인용된 것과, 무거운 주제를 많은 사람들이 쉽게 읽게 하고자. 이 책을 먼저 읽은 사람으로 단언하건데 청소년부터 어른까지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인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저자의 뜻대로 초판 출판 당시 일본의 청소년들에게 많은 공감을 일으켰다니 말이다.
초판 이후 저자는 20년 동안 관련 현장과 자료들을 찾아 이 책에 보충했다고 한다. 저자의 이런 양심과 열정이 특히 우리 청소년들에게 많이 전해져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청소년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일본군 '위안부'가 된 소녀들>이시카와 이쓰코 (지은이) / 손지연 (옮긴이) / 삼천리 / 2014-09-19 / 1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