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보강 : 8일 오후 9시 4분]<동아일보> 해직기자로서 자유언론 수호와 언론민주화운동을 이끈 성유보 (사)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이사장, 희망래일 이사장이 타계했다.
성유보 이사장은 8일 오후 7시께 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향년 72세다. 언론시민단체들은 9일 낮 회의를 열어 빈소를 비롯해 장례 절차를 확정할 예정이다.
일제 말기인 1943년 경북 경산에서 태어난 성유보 이사장은 지난 1968년 <동아일보>에 입사해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중앙정보부 등 정보기관의 정보원이 언론사에 상주하던 때였다. 1972년 박정희 정권이 언론 통폐합과 함께 '긴급조치'로 언론을 통제했다. 성유보 이사장 등 <동아일보> 젊은 기자들은 노조를 결성해, 언론자유를 요구하는 투쟁을 벌였다.
1974년 10월 23일 중앙정보부가 '서울대 농대생의 데모'를 다룬 기사를 빌미로 <동아일보> 송건호 편집국장 등 간부들을 연행하자, <동아일보>와 <동아방송>의 기자·프로듀서들이 '자유언론실천선언'을 했다. 정권은 그해 12월 '광고 탄압'을 가했고, 이듬해 3월 성유보 이사장 등 '자유언론실천선언'을 한 기자·프로듀서들이 대거 해직됐다. 이들은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를 결성했다.
이후 성유보 이사장은 언론민주화운동을 이끌었다. 1984년 민주언론운동협의회 초대 사무국장를 맡아 월간 <말>을 창간했다. 1986년에는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사무처장 등을 맡는 등 민주화운동에도 힘을 쏟았다. 1988년 <한겨레> 초대 편집국장을 지냈고, 1998년 언론개혁시민연대 공동대표,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이사장을 맡았다.
2000년대에 들어서도 방송위원회(현 방송통신위원회) 남북방송교류 추진위원장, 제17대 대통령선거 선거방송심의위원 등을 역임했다. 2013년에는 희망래일 이사장, 2014년에는 사단법인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이사장을 맡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왕성한 활동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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