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1970년대 미국은 CBS에서 방영한 한 편의 월남전 다큐멘터리 때문에 발칵 뒤집혔다. 존 로렌스라는 기자가 월남의 한 중대에 들어가 생활을 같이 하면서 그들의 실상을 그대로 보도했기 때문이다.

논란이 된 장면은 작전을 위해 부대가 이동해야 하는데, 상부에서 이동 시간을 줄이기 위해 산길로 가라는 명령을 내리자 병사들이 거부하는 장면이었다. 부대원들은 베트콩이 아군보다 훨씬 지형을 잘 아는 산길로 향하는 것은 자살 행위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비록 명령위반으로 감옥에 가더라도 죽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한 것이다.

일반 병사와 지휘관의 트라우마, 다를 수밖에 없다

실제로 월남전 와중에 정글에 들어갈 땐 남이 갔던 길 대신 새 길을 내며 가는 것이 상식이었다. 적이 어디에다 매설물을 설치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위에서 언급한 다큐멘터리 '찰리 중대'에서 공공연히 지휘관의 명령을 거부하는 미군의 행태가 보도되자 논란이 됐다. 그러나 전쟁의 현실은 생각과 다르다.

전쟁 중 사람을 공격할 때 상대가 멀고, 보이지 않을수록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고 한다. 때문에 공군, 해군은 육군보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즉 트라우마가 적다고 한다. 그런 면에서 월남전이 전면전이 아닌 게릴라 전이라 적과 대면할 기회가 적었던 것은 하나의 아이러니한 축복이었다. 공식 집계에 의하면 월남전에 참전한 8년 동안 한국군이 사살한 적군의 숫자는 4만 명이다. 그렇다면 4만 명을 죽이는 현장에 있었던 병사들의 심리 상태는 어땠을까?

월남전에서 십자성 부대의 야전병원에 입원한 부상 전우들을 방문하는 것이 내 임무의 하나였다. 때문에 부상병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입원한 환자들 가운데 자신이 용감하게 싸우다 부상을 당했다고 이야기하는 전우는 거의 없었다. 간혹 자기가 베트콩을 사살했을 것이라고 믿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전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자기가 쏜 총에 적이 맞아 죽었으리라는 것을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것이 인간이다.

1966년 6월 14일 북베트남 상공에서 미 공군의 F-105 썬더치프 전폭기가 폭탄을 투하하고 있다.
 1966년 6월 14일 북베트남 상공에서 미 공군의 F-105 썬더치프 전폭기가 폭탄을 투하하고 있다.
ⓒ 미 공군

관련사진보기


먼저 밝힐 것은 나는 전장에서 적과 조우하는 직접적인 전투는 해보지 못했지만, 적이 나타날 가능성에 대비해 매복과 정찰을 한 경험은 있다. 즉, 전투 준비의 심리적 경험은 있으나 직접 전투 경험은 없다는 것이다. 전투 준비 심리와 직접 전투의 심리가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그것이 계량 가능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가장 궁금했던 것은 막상 적이 내 눈앞에 나타났을 때 심리가 어떨까 하는 것이었다. 용기와 불안 중 무엇이 더 앞설까 궁금했다. 만일에 모든 병사가 전투를 앞두고 공포심에 사로잡힌다면 전쟁은 수행될 수 없을 것이다.

여기서 구분돼야 할 것은 전투에서 타의적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는 병사들과, 자의적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있는 지휘관의 심리 차이이다. 지휘관이 전투를 앞두고 느끼는 부담과 일반 병사들이 느끼는 부담은 아무래도 다를 수밖에 없다. 아무래도 타의적으로 움직이는 일반 병사들이 느끼는 공포심이 더 클 것이다. 반대로 전투 결과에 따라 자신의 앞날이 달린 지휘관은 보다 계산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무리 냉철한 지휘관을 만나도 정작 죽어 나가는 것은 병사들이다.

개인 또는 민족의 내상

미국은 월남에서 1700억 달러의 전비를 소모했고, 전쟁이 끝난 뒤 월남전 참전 군인을 위해 2000억 달러를 더 지불했다. 1982년 11월 헌정된 월남전 참전 기념관은 280만 명의 생존 귀환자들에겐 통곡의 벽과 다름 없었다.

그중 80만의 귀환 군인이 전후 정신질환과 고엽제 후유증에 시달렸고, 1970년대 초만 해도 수천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1990년대 초까지 베트남 전쟁에 참가한 약 6만 명의 퇴역군인들이 자살했다. 이 숫자는 실제로 전쟁 기간 죽었던 군인들의 숫자보다 많은 것이었다.

트라우마 측면에서 월남전의 결과를 객관적으로 보면, 미국은 개인적으로, 베트남은 민족적, 집단적으로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 즉 때린 쪽은 개인 트라우마를 느끼지만, 맞은 쪽은 집단적 트라우마를 느낀다는 것이다. 전쟁의 상처는 개인이 내상을 입히기도 하지만, 민족이나 국가도 집단으로 내상을 입는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딴지일보에도 송고되었습니다.



태그:#월남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