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조각가 랄프 샌더(Ralf Volker Sander)씨와 저의 게스트 하우스에서
지난 10월 4일부터 4박 5일을 함께하며 생활과 생각을 나누었습니다. 랄프씨는 독일 베를린에서 나고 자랐으며 그곳에서 공부 했습니다. 5년 전 한국에 와서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 교수로 3년간 재직했던 분으로 지금은 영국 북아일랜드의 수도 벨파스트(Belfast)의 얼스터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서울대학교에 적을 두고 있던 2011년, 부산국제영화제 전용관인 '영화의 전당'을 상징하는 미술 장식품 제작·설치 국제공모에서 그의 작품 'Lady Bird Transformation(mirage)'이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1위 장품으로 선정됐습니다. 이 작품은 2012년, 높이 10.2 m, 폭 4.6 m의 조형물로 설치되어 부산의 명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 입체 조형물은 부산의 시조(市鳥)인 갈매기와 은막의 스타로 상징되는 여인의 이미지가 중첩돼 있습니다.
"저는 오래전부터 한 이미지가 다른 이미지로 전이되는 '변화(transformations)' 작업을 꾸준히 해오고 있습니다. 부산의 'Mirage'작품도 제 작업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지요. 갈매기가 육지와 바다에서 모두 서식할 수 있는 생태적 특징이 서로 다른 세계를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볼 수 있고, 영화 또한 사람의 마음을 전혀 다른 세계로 인도한다는 점에서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저는 그의 작품이 윤회관을 반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말했습니다.
"불교에서 중생이 해탈을 얻을 때까지 그의 영혼이 육체와 함께 업(業)에 의해 다른 생을 받아 끊임없이 생사를 반복하게 된다는 생각과 닿아 있군요. 사람이 생을 마치면 다음 생에서 어떤 동물로 태어날지는 알 수 없어요. 당신 작품의 여배우가 갈매기로 태어날 수도 있지요." 그는 일본과 중국에서 1년간의 작업과 한국에서 3년간의 체류를 통해 동양적인 색채를 띌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랄프씨는 대학 졸업 후 일본과 중국에서 1년간 체류하면서 동양의 문화와 사고를 체험했으며 그 후에도 다른 나라와 장소를 오가며 가르치고 조각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나뭇조각의 갈라짐도 작품의 일부
랄프씨는 부산 영화의 전당의 조각, 'Lady Bird Transformation(mirage)'같은 'Sculptural transformation'작품 뿐만 아니라 'World Saving Machine'같은 순수예술에 태양에너지의 접목을 실험하기도 하고 'my private island'와 같이 2011년 벨파스트의 헤이즐뱅크에서 간조와 만조의 해면의 차이를 활용한 6시간 동안의 퍼포먼스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초기에는 나뭇조각으로 사람의 이미지를 표현하는데 몰입하기도 했습니다. '이면과의 조우(encounter with the other side of appearance)'가 그것입니다. 이 작품에 대해 그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 헤이즐뱅크에서의 퍼포먼스에서 서서히 바닷물이 목까지 차오르는 물속에 6시간 서 있는 동안 어떤 생각들이 스쳤나요?"우선은 추웠습니다. 물론 방수 옷을 입었지만 잠시 동안이 아니라 간조에서 만조까지 물속에서 버티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 나무가 훌륭한 조각재료긴 하지만 재료 특성상 아무리 잘 건조해도, 장소가 이동되거나 습도의 차이가 발생하면 갈라진다는 것이지요. 이 문제를 어떻게 극복하시나요?"갈리지는 것을 근본적으로 막을 수는 없어요. 나무의 속을 파냅니다. 속을 비우면 큰 갈라짐을 막을 수 있어요. 잔금들은 어쩔 수 없지요. 그것을 즐길 수밖에..."
스트레스에서 부터 자유까지, 그와 나눈 대화들
부인은 폴란드에서 삼림학을 공부하다가 독일로 정치적 망명을 한 사람으로, 독일에서 다시 건축을 공부했습니다. 무남독녀 따님은 런던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랄프씨지만 뼛속까지 깊이 박힌 문화의 원형은 '독일'입니다. 그러니 서로 각기 다른 주제의 이야기가 끊이질 않습니다.
랄프씨와 매일 아침 식사를 함께 했습니다. 저는 아침 식사를 거르는 일이 태반입니다. 식탁에서 랄프씨에게 그 사실을 말했습니다.
"랄프! 제 아내가 특히 랄프씨에게 고마워해요. 제가 아침 식사를 거르는 것이 마뜩치 않았던 것이 랄프 덕분에 규칙적이 되었으니...""다행이군요." 랄프에게 저의 불규칙한 식사 습관의 이유를 말했습니다.
"사실 전, 식사를 규칙적으로 하는 것을 즐기진 않아요. 사바나의 사자와 인간이 다른 점은 사자가 배가 부를 때는 톰슨 가젤이 옆을 지나가도 아랑곳하지 않지만 사람은 배가 불러도 사냥을 멈추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쉼 없이 사냥을 하지요. 그리고 창고에 쌓아둡니다. 사자는 식사 후 다시 배가 고플 때까지 그늘에서 한가함을 만끽하지만 사람은 숟가락을 놓기 바쁘게 다시 사냥에 돌입해야합니다. 언제나 창고를 채우느라 쉴 틈이 없어요." "흥미로운 사실이에요. 한 창고를 채우면 다시 창고를 지으니 그 스트레스가 얼마나 크겠어요. 사람과 가장 가까운 침팬지와 보노보는 유전자 염기 서열이 유사하지만 성격이나 사회성은 많이 다르답니다. 예컨대 침팬지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동료를 죽이기도 하지만, 보노보는 서로 성 관계를 한답니다."
"보노보가 침팬지보다 더 현명한 스트레스 해소 방법을 찾아냈군요. 사실 적당한 스트레스는 삶의 의욕을 지키는 요소가 되기도 합니다. 청어는 먼 바다에서 잡혔기 때문에 수조 속에서도 운반 중에 대부분 죽었습니다. 싱싱한 청어를 먹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청어를 살리는 방법을 찾아야했어요. 마침내 찾아낸 방법이 청어의 천적인 물메기를 수조에 한두 마리 넣는 것입니다. 한 수조에서 물메기에게 먹히지 않기 위해 긴장해야하지요. 그 긴장이 청어를 살아있게 하는 것입니다."랄프씨가 말했습니다.
"전 '자유'가 두려워요." 랄프씨의 이 말은 자유가 가진 다른 속성을 일깨워주었습니다.
"저는 아내에게 순종하는 편을 더 좋아합니다. 사실 사람들이 더 많은 자유를 구하지만 편하기로 말할 것 같으면 제한된 자유가 오히려 편안하지요. 결정권을 행사한다는 것은 결과에 대한 책임에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 작별... 다음을 기약하다
저의 동의에 랄프씨가 사람 좋은 웃음을 웃었습니다. 4일간의 체류를 마친 랄프씨와 마당에서 작별을 했습니다.
"영국에 오면 연락주세요. 제 집이 넓지는 않지만 당신을 집밖에서 재울정도는 아니에요. 어떻게든 게스트룸을 마련할 수 있어요." 랄프씨는 작별에 미련을 두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제가 답했습니다.
"걱정 마세요. 저는 지붕 바깥이라도 상관없어요. 주차된 차 안이나 차고도 좋아요. 사실 제일 좋아하는 것은 정원이에요. 별빛이 빛나는 하늘을 지붕으로 두었으니... 그러니 저는 어느 곳이나 게스트룸이에요."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motif.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