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잘가, 시도니 시도니는 신념을 지켜나갈 의지가 없는 기회주의로 물든 시대의 희생양이다.
잘가, 시도니시도니는 신념을 지켜나갈 의지가 없는 기회주의로 물든 시대의 희생양이다. ⓒ 느림보
1933년 8월 18일, 슈타이어라는   오스트리아 북부 자그마한 도시의 시립 병원 정문 오른편 바람막이 안에서 한 아이가 버려진 채 발견된다  아마도 집시가 버리고 간 듯 했다.  그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집시의 산'이라 불리는 언덕이 있고 유랑 집시들은  경찰들에게 쫒겨나기 전 하루 이틀 밤을 그곳에서 묵어가곤 했다.

아이는  이국적인 외모에 까만 피부를 가진 여아였다. 아이는 구루병을 앓고 있었다. 팔과 다리의 관절은 굳어가고 다리는 바깥쪽으로 휘어졌다. 신선한 공기와 영양공급이 필요했다. 옆에 놓인 종이쪽지에는 서투른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이름은 시도니 아들러스부르크이고 알트하임 가에서 태어났습니다. 아이의 부모가 되어 주십시오.'

'잘가, 시도니'는 실화를 바탕으로 쓴 책이다. 당시 슈타이어 시는 심각한 빈곤에 시달리고 있었다. 아이를 덜 열악한 다른 도시에서 양육비를 대게 하려고 사방으로 부모를 찾았으나  시도니 친 엄마는 소식이 없었다. 병원에서 치료를 끝낸 아이는 아동복지기관으로 보내졌다. 흑인에다 다리가 안으로 굽은 구루병을 않는 아이를 맡아 줄 사람은 마땅치 않았다.

그런 시도니를 사회민주당원인 한스와 요세파 부부가 데려간다. 아들 하나뿐이던 요세파는 돈을 벌기 위해 이를 맡아 기르는 일을 했다. 하지만 시도니를 데려가 친자식과 다름 없이 기른다. 시도니는 건강이 나빴다. 눈과 코 귀는 죄다 곪았고 좀처럼 낫지 않았다. .요세파는 시도니를 감싸 안고 시립병원으로 간다. 병원장은 보혐 혜택을 받을 수 없는 환자들을 무료로 치료해 주는 너그러운 의사로 소문이 나 있었기 때문이다. 병원장 쇤아우어는 아이를 보자 손사레를 치며 이렇게 말한다.

"어떻게 검둥이를 데리고 병원에  생각을 했지요? 여기선 검둥이를 진료하지 않소이다."

요세파와 한스 부부는 시도니를 친자식처럼 대했다. 아이가 아파 울거나기침 발작일 일으킬 때면 몇 날 밤을 자카고 앉아 아이를 살려내곤 했다.

사회주의 사상을 지닌 한스 부부는 나치 치하에서도 자신의 생각과 신념을 지킨다.  지하 운동을 하거나 위첨에 처한 이들을 돌보다가 감옥에 가기도 하고 목숨이 위태로운 위험에 처하기도 한다. 그러나 요세파와 한스 부부는 이웃에 대한 신의, 동료에 대한 신의를 끝까지 지킨다. 입양한 딸인 힐데와  시도니를 자신들이 낳은 아들인 만프레드보다 더 정성을 쏟으며 기른다.  시도니는 요세파 부부에게 없어서는 안 될 딸이었다.

1943년  독일의 수도였던 린츠시로부터 한 장의 공문서가 날아온다. 시도니 아슬러스부르크의 친어머니를 찾았으니 시도니를 친어머니에게 보내애 한다는 명령서였다.  시장,  아동복지관 관장, 시더니 담당 복지사인 켈킬리아 그림은 나치의 명령에 순응해 사도니를 집시들을 가둬두던 지역으로 돌려보낸다. 집시의 피가  시를 더럽힐 것이라는 생각, 집시의 피가 흐르는 시도니가 혹시 아이를 낳아 책임지지 못하면  자신들이 양육비를 대야 할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귀찮은 물건을 떠넘기듯 자신들의 도시로부터  시도니를 떼어내 버린 것이다.

끌려긴 시도니는 집시의 피가 흐르는 흑인 이이라는 이유로 아우슈비츠에서  비극적인  죽음을 맞는다. 전쟁이 끝나고 시장이 된 한스는 사방으로 시도니의 행방을 수소문한 끝에 비극적인 죽음을 알게 된다. 한스와 요세파의 주변 사람들은 한스가 죽음을 맞기까지  처음무터 시도니가 없었던 것처럼 행동한다. 하지만 1980년 5월 20일 세상을 떠난 한스의 묘비에는 아내인 요세파. 아들 만프레드. 양녀 힐데와 시도니 아들러스부르크의 이름이 새겨졌다.

시도니 아들러스부르크: 1933~ 43년, 아우슈비츠에서 사망.

버려진 한 아이의 짧은 생애와 비극적인 죽음은 인간에 대한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그대로 보여준다. 세상에는  위험사회가 되었을 때도 서로 도와가며 상생의 길을 찾는 사람들과  살기 위해 타인 생명은 어찌되든 상관이 없다는 식으로 사는 사람이 뒤섞여 살아간다. 자신의 기득권을 지켜내기 위해 비겁한 자기변명으로 양심을 속이고 비인간적인 범죄를 저지르는 악의 평범성을 지닌 공무원과 경찰들은 위험사회가 아니어도 여전히 존재한다. 저자는 '시도니의 죽음은 신념을 지켜나갈 굳은 의지가 없는 기회주의로 물든 시대의 희생양'이라고 말한다.

돈을 앞세워 열일곰 청춘들을 수장시킨 대한민국은 타인의 아픔에 대한 공감 능력을 잃어버린 악의 평범성에 물든 관료들과 괴물들이 가득한 사회다. 이주노동자들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한국말이 서툴다는 이유로 차별을 받는 한국사회다. 이런 상황에서 구루병을 앓고 있는 신원이 불분명한 한 아이가 시립병원에 버려져 있었다면 대한민국 사회는 어떻게 반응했을까?시설에 방치하다 죽음으로 매몰진 않았을까.

우리 한번 어떤 마을을 상상해 보자. 맑은 물이 흐르는 강변 마을이 있다. 바 ㄹ그대로 '소박한 사람들'이 대부분 석찬 광산에서 일하고 글을 읽지도 못하는 무식한 노동자들이 사는 마을이 있다고 하자. 마을 사람들은 거의가 일자리를 잃고  날마다 끼니 걱정을 해야한다. 하지만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마을 사람들은 서로 도와가며 산다. 마을 밖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거슬릴 수도 있디. 그래서 협박과 약속, 금지와 유혹으로 주민들을 이간질하려고 해 보았디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는다. 이 때 위대한 시대가 시작되었다. 잘살기 위해서는 군사 무장을 해야 하고, 전쟁을 하면 일자리를 얻을 수 있다고 사람들을 설득한다. 단 잘살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이 죽어야마 ㄴ한다거나, 다른 사람들을 죽게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은 한동안 비밀에 부친다.

이번에는 특별한 사건을 하나 살펴보자. 가난하게 살 때에는 흔히 일어나는 일이라서 그리 특별한 사건은 아니다. 마을에 한 여자아이가 ㅌ어나닞 얼마 안 돼서 버려졌다. 아이를 낳은 엄마는 얻에 이ㅛ는지 알 수 없고, 누군가는 아이를 보살펴 줘야만 한다. 그래서 한 부부가 아이르 ㄹ입양하여 제 자식처럼 키운다. 자신들이 쓸 것을 줄이면서까지 아이를 돌보고 옷을 입히고 음식을 먹인다. 해당기관은 양부모에게는 아주 부족한 돈을 충분하다고 여기며 지원한다. 위대한 시대가  시작되자 해당기관은 더욱 생색을 낸다. 아이는 한눈에 봐도 떠돌이 유랑민 출신이다. 피부색이 까맣다. 아무리 열심히 닦아도 하얗게 되지 않는다.

아이의 양아버지는 노동자였다.  그는 자신과 가족의 행복이 모든 사람이 행복과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개인의 자유는 더 큰 자유, 사회가 보장하는 자유가 없이 존재할 수 없음을 안다. 그는 정의감이 있고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받아들이고 함께 아파한다. 그는 어떤 위험 상황에서도 인간에 대한 예의와 신의를 지키며 살았다.

이 상황을 우리 사회, 아니 당신 자신에게 대입해 자신을 평가해 보라. 당신이 시장이라면 당신이 결정은? 당신이 사회복지사라면 당신의 결정은? 당신이 아동복지관 관장이거나 학교에서 저 아이의 교육을 담당한 교사거나 교장이었다면?

이제 우리의 아주 특별한 사건인 '세월호'에 이 사건을 한번 대입해 보자. 아이들을 구해내려면 많은 돈이 들고 위험을 감내해야 할지도 모른다.  당신이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책임져야 할 대통령이라면? 당신이  해경이며 배가 침몰하는 순간 그 곳에 있던 해경이었다면? 이제 다시 묻고 싶다. '세월호' 사건은 그들만의 문제인가, 우리 모두의 문제인가? 당신 자신에게 자문해 보시라. 그리고  가슴에 손을 얹고 가만히 당신 자신의 심장 박동과 양심의 속삭임에 귀 기울여 보시라.

덧붙이는 글 | 잘가, 시도니/ 예리히 하클 글. 손주희 옮김/ 느림보/ 10,000원



잘 가, 시도니

에리히 하클 지음, 손주희 옮김, 느림보(2010)


#잘가, 시도니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