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 낙태·단종 피해로 국가 배상 판결을 받은 한센인들이 항소심에서도 승소했다.
1심 재판부에 이어 2심 재판부도 한센인에 대한 낙태·단종이 강제로 이뤄졌다는 점을 인정하고 반인륜적 행위에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낙태·단종, 강제성·국가 책임 재확인... 심리 중인 소송에 영향 줄 듯22일 광주고등법원 민사2부(부장판사 서태환)는 낙태·단종을 당한 한센인 피해자 19명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와 피고의 항소를 모두 기각했다.
지난 4월 광주지법 순천지원 1심 재판부는 "정관절제 수술을 받은 강아무개씨 등 원고 9명에 각 3천만 원, 임신중절 수술을 받은 김아무개씨 등 원고 10명에 각 4천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한 바 있다.
1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원고들이 죄를 짓거나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일을 한 것도 아닌데 합리적인 대책을 세우지 않고 실시한 전면적인 출산금지 정책은 명백히 잘못된 선택"이라고 밝혔다.
동의나 승낙 없이 수술을 한 데 대해서도 재판부는 "임신중절은 절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이 법의 취지이고, 정관수술은 모자보건법에 따라 장관의 명령으로만 정당성을 가질 수 있다"며 "임신중절과 정관절제 수술은 인간 본연의 욕구와 기본적인 행복추구권을 제한하고 원고에게 죄의식과 수치심을 주는 반인권적 반인륜적 성격이 강하다"라며 국가의 책임을 인정했다.
이에 대해 피고인 국가는 낙태·단종이 한센인들의 동의에 따라 시행됐고 불가피한 정책이었다는 점 등을 들어 지난 7월 항소했다. 한센인들도 국가의 책임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미있지만 배상액이 적다며 항소했다.
광주고법 항소심 재판부가 피고의 항소를 기각함에 따라, 또다른 한센인 630여 명이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판결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현재 서울중앙지방법원에 3건의 손배 소송이 제기된 상태다.
피해 한센인들 "상고 포기하고 하루 빨리 일괄 배상해야"항소심 재판부의 이같은 판결에 대해 피해 한센인들은 "판결을 존중한다"라며 상고 포기와 함께 일괄적인 배상을 요구했다.
재판 직후 한국 한센총연합회·소록도자치회·한센인권변호단은 광주고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미 일본은 과거 강제격리 등 피해에 대해 1만여 명에 이르는 일본 한센인에게 사과하고 일괄 배상을 했다"라며 "우리 정부도 하루 빨리 과거 인권유린에 대해 사과하고 배상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소록도 자치회장 남아무개씨는 "재판부의 판결을 환영한다, 이제 우리의 아픔과 슬픔을 뿌리 뽑았으면 좋겠다"라며 "(배상액) 얼마를 주든지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다만 하루라도 빨리 정부가 우리의 아픔을 품어주고 모두 배상해 주길 요청한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우홍선 한국한센총연합회 사무총장은 "한센병이라는 의료적 질병은 치료가 되었는데 사회적 편견과 차별이라는 '사회적 질병'은 아직도 치료가 되지 않았다"라며 "사법부의 준엄한 판결에 따라 정부가 합당한 조치를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한센인권변호단장 박영립 변호사도 "정부가 사법부의 판결을 인정하지 않고 상고를 하면서 시간을 끌거나, 국가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한센인들을 두 번 죽이는 것이다"라며 상고 포기, 공식 사과, 피해자에 대한 일괄 배상을 거듭 요구했다.
한편 일본의 경우 1906년부터 1996년까지 한센인의 인권침해에 대한 사죄와 함께 국가가 일괄 보상(최소 800만 엔에서 최대 1400만 엔)했다. 일제강점기 소록도 한센인에게도 보상을 한 바 있다.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한 한센인 원고들은 해방 이후 1948∼1980년대 초반까지 강제 낙태·단종 피해를 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