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 탄핵 규탄 집회장에서 시인을 처음 만났다. 그 때 시인은 분홍색 원피스에 흰 재킷을 걸치고 있었다. 진달래 꽃이 연상될 만큼 아름다웠다.
나는 '저렇게 곱고 순전해서 시를 쓰나보다' 라는 감탄과 부러운 눈길로 그이를 먼발치서 바라봤다.
이후 인연이 닿아 그녀를 직접 만날 수 있었다. 그녀는 먼발치서 본 것보다 더 순전한 사람이었다. 인터넷 방송을 할 때 시인을 초대 손님으로 초청한 적이 있는데 그이는 온전히 이해하고 화해한 자신의 친정어머니를 모시고 나왔다.
암소뼈로 고은 곰국처럼 더는 우려낼 것 없이 뼛속 진액까지 파먹으며 사는 것이 이 땅 어미의 삶이라는 사실에 코 끝 찡했던 시간이었다. 그 날 시인은 어머니와 시로 온전한 화해를 했는지도 모른다.
이후 알게 됐다. 어머니를 알아가는 과정, 그이가 살아오면서 받은 상처마다 폭설 속 키 작은 한 그루 홑동백같은 시가 태어났다는 것을.
시인은 <엄마를 부탁해>를 쓴 신경숙 작가와 중학교 동창이다. 신경숙 작가가 소설로 삶을 풀어내고 있다면 손세실리아 시인은 '시'로 삶을 풀어내지만 작품의 원천은 둘 다 어머니와 상처받은 자기 삶의 옹이들이다.
인간 누구나 지닌 근원적 삶의 뿌리인 어머니와 감수성 예민한 사춘기, 생의 여정에서 안팎으로 맞닥뜨리는 상처를 시인은 하나도 놓치지 않고 시로 탄생시켰다.
시인은 는 열 달 동안 자궁 안에서 생명을 길러내듯이 오래오래 우려내 사골 국물을 만들 듯이 시를 출산하기에, 첫 출산 <기차를 놓치다> 이후 9년 만에 <꿈결에 시를 베다>라는 두 번째 시집을 출간했다.
올레 길을 걷다가 100년을 제주의 비바람을 꿋꿋하게 버텨 온 늙은 집 한 채와 인연을 맺어 섬어 들었고 바다가 보이는 그곳에 북카페를 열었다. 혼탁한 도시에서 상처받은 영혼으로 숨을 곳이 필요했던 이가 어디 올레 길을 지인들과 걷기 시작한 그 여자뿐일까.
남들이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의 변신과 화려한 모습만을 바라봤을 때 시인은 내면의 상처와 외로움을 보았다. 그래서 자신의 첫 시집 첫 판매 인세를 고스란히 올레길을 시작한 그이에게 건넸다.
숨을 데가 필요했던 게지맺힌 설움 토로할 품이 필요했던 개지절대가치라 여겼던 것들로부터상처받고 더러는 깊이 배신당해이룬 것 죄다 회색도시에 부려 놓고본향으로 도망쳐와산목숨 차마 어쩌지 못 하고미친 듯 홀린 듯오름이며 밭담 이정표 삼고바닷바람 앞장세워 후적휘적 쏘다니다설움 꾸들꾸들해질 지음덜컥 길닦이 자청하고 나선 여자처처 순례객들 길잡이가 된 여자그러나 정작 자신만의 오시록한 성소 다 내주고서귀포 시장통 명숙상회 골방으로 되돌아온 여자설문대할망의 현신이니여전사니 말들 하지만알고 보면 폭설 속 키 작은 홑동백 같은 여자너울 이는 망망바다 바위섬 같은그 여자 -올레, 그 여자 전문-어느 날 불현 듯 섬에 들어 백수를 맞은 늙은 집을 지키는 시인도 회색도시에 혼탁한 모든 것을 부려 놓고 바람처럼 섬에 든 것이 아닐까.
발문을 쓴 임옥상 화백은 시인의 첫 시집을 만나고 "찐하고 짠하고 찡한 시 잘 읽었습니다"라는 문자를 보냈다는 문구로 발문을 연다. 그렇다. 문학비평가가 아닌 한 사람의 독자로 나는 손 시인의 시로 삶의 상처를 치유한다.
시인이 지닌 아름답고 순전한 눈길은 자본주의 사회가 내팽개친 약하고 소외되고 가난하고 뒤처진 이들 삶속에 숨겨진 미덕을 놓치지 않는다. 시인의 눈길에 잡혀 자칫 잊힐 뻔한 소외된 곳의 생명들이 제 각각의 빛깔로 꽃 피게 됐으니 감사한 일이다. 폭설같은 도심 속에서 상처를 딛고 홀로 키 작은 홑동백으로 핀 시인의 시향이 도시에서 상처받은 이들 가슴에 위로를 전할 수 있기를.
처마 밑 꽃묘 연일 수난이다들고나는 발길 피하지 못해어깨뼈며 정강이뼈 골절 다반사고혼절해 널브러진 적 부지기수다아랫동아리에 손댈 때마다가늘게 타전해오던 맥이라니안간힘이라니명줄 움켜쥔 것만도 기특한데달궈질 대로 달궈진 땅바닥에바짝 엎드려 살아남아 마침내폭염주의보 속 절정이 되었다.거짓 사랑과 기만과 무례로 인해오래 황폐했던 나와는 딴판이다-채송화 일부-
덧붙이는 글 | 꿈결에 시를 베다/ 손세실리아./ 실천문학/ 8,000원
11월 5일 7시 교보문고에서 시인을 직접 만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