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태어나 제일 먼저 배운 것이 '나라 사랑'이었다. 그리고 그 나라 사랑의 대표적 인물로 학교와 사회가 가르쳐 준 사람은 '백범 김구' 선생님이었다. 매 학기 방학이면 빠지지 않는 권장 도서도 <백범 일지>였다. 대통령 선거 때마다 출마한 유력 후보 대부분은 존경하는 인물로 이순신 장군과 함께 백범 선생을 빠지지 않고 꼽았다.
그런 나라 사랑의 핵심 인물인 백범 선생이 지금, 이 나라에서 만신창이로 전락했다. 세월호 망언으로 논란을 빚은 정미홍씨가 제일 먼저 포문을 열었다. 지난 6월 정씨는 한 언론사 초청 강연에서 "지금 김구 선생이 최고의 애국자라고 되어 있지만 그분은 김일성에 부역한 사람이고, 좌파 역사학자들이 영웅으로 만들어 놓은 사람"이라고 망언했다. 나는 이 제보를 처음 받고 믿지 못했다. 대한민국에서 백범 선생에게 이런 망언을 공개리에 할 사람이 있을까 싶었기 때문이었다.
김일성 부역자 김구? 도 넘은 망언정미홍씨 강연 음성 파일을 직접 들어본 결과, 제보는 사실이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정미홍씨는 강연 중 "김구는 시골 출신으로 조선의 독립운동만 하다가 시국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무조건 '분단은 안 돼!', 이래 가지고 이쪽(남쪽)에서 선거를 한다고 하니까 그냥 무단으로 김일성을 만나러 갔어요. 그랬더니 북한은 당시에 남한보다 훨씬 잘살고 있어 김일성이 세 보이니까 김일성이 뭐라고 하든 무조건 '통일을 시키겠네' 이렇게 묻어버립니다. 그래서 거기서 김일성 만세를 부르고 했는데..."라는 발언도 했다. 백범 선생이 김일성 만세를 불렀다니...
나는 이런 정미홍씨의 참담한 망언을 그냥 지나친다면 그가 또 다른 곳에서 같은 망언을 되풀이할까 걱정됐다. 그래서 정씨의 망언을 기사화했다(
관련기사 :'세월호 알바비 6만원' 사과했던 정미홍 또 망언 "시위로 100만원 받아"). 그러자 수십 개의 언론 매체가 이를 받아 전했다. 정씨의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자신의 페이스북에 "김구 선생님이 김일성 부역자라는 표현을 쓴 적이 없다"며 "허위 보도한 언론사와 기자들을 상대로 민·형사 소송 책임을 묻겠다"며 강력히 반발했다.
그래서 정미홍씨의 고소를 기다렸다. 하지만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그가 고소한 언론사나 기자는 없는 듯하다. 이 기사를 처음 쓴 기자인 나도 역시 고소를 당하지 않았다. 만약 정씨가 고소한다면 나 역시 무고 및 명예 훼손 혐의로 맞고소하려고 했는데, 괜히 허탈해졌다. 여하간 이 일을 통해 백범 선생님을 둘러싼 어처구니 없는 망언은 더 이상 벌어지지 않으리라 믿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정미홍씨 발언 이후 마치 약속이나 한 듯 백범 선생님을 향한 망언이 줄을 이었다. 정미홍씨의 뒤를 이은 사람은 '서북청년단 재건위원회' 위원장이라는 배아무개씨였다. 그가 일베(일간베스트) 사이트에 올린 주장은 실로 충격적이었다. 그는 "김구는 김일성의 꼭두각시였고, 대한민국의 건국을 방해했다"며, "반공 단체인 서북청년단원 안두희씨가 김구를 처단한 것은 의거"라는 망언을 서슴지 않았다.
그러면서 "안두희가 맞아 죽은 것은 종북 좌익 정권시대"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참고로 백범 선생을 시해한 안두희를 박기서 선생이 응징한 때는 1996년, 그러니까 지금 새누리당 전신인 신한국당 소속 김영삼 대통령 재임 시절이었다. 이때만 해도 나는 백범 선생님에 대한 망언을 극소수 극우 세력의 돌출 행동 정도로 여겼다.
재판정에서 거듭 '김일성 만세'를 외쳐 추가 기소됐다는 어느 극좌 세력처럼, 자칭 애국 보수세력이라고 주장하는 또 다른 극우 세력의 망언이라고 여기며 무시했다. 그런 행위는 상식을 가진 이들로부터 적절히 비판받으면 족하다고 이해한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뒤를 이어 망언 대열에 선 그 사람, KBS 이사장 '이인호'에 관한 이야기다.
친일파 이명세와 그의 손녀 이인호"김구 선생은 임시정부 수반까지 하면서 독립운동가로 대단히 훌륭하지만 1948년 대한민국 독립에는 반대했기 때문에 대한민국 공로자로 거론한 것은 옳지 않다." 지난 22일 열린 국회 국정감사에서 "김구 선생이 대한민국에 반대했다고 밝힌 것이 맞느냐"는 최민희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질의에 대해 이인호 KBS 이사장이 "맞다"며 이어진 그의 답변이었다. 정말 놀라운 답변이었다. 대한민국 공영방송 이사장 입에서 백범 선생을 두고 '대한민국 공로자가 아니'라는 발언이 나오리라 상상한 국민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파장은 클 수밖에 없었다.
이인호 이사장은 심지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통성에 대해서도 부정했다. "상해 임시정부는 임시정부로도 평가받지 못했다"고 발언한 것이다. 이는 '대한민국은 3·1 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대한민국 헌법 전문을 무시하는 발언이었다. 무엇보다 더 큰 충격은 대한민국에서 다른 사람도 아닌 바로 백범 선생과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이인호 이사장이 부인했다는 사실이다. 많은 이들이 '일본 강점기 친일 단체를 이끌었던 이명세의 손녀가 어찌 이럴 수 있냐'며 경악한 이유다.
나는 2006년부터 2010년까지 4년간 '대통령 소속 친일 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 조사관으로 일했기에 이명세와 관련한 조사 업무를 수행한 적이 있다. 이명세는 1893년 11월 30일 태어나 1972년 7월 28일 사망했다. 그는 일제 시대 대구지방법원 서기를 시작으로 1923년 이후에는 호서은행 서무과장과 홍성 지점장을 거쳐 1932년에는 동일은행 검사역까지 승승장구했다.
이명세가 본격적인 친일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은 1939년 11월 1일이었다. 그날 이명세는 조선유도연합회 상임 참사로 선출됐다. 이어 1941년 6월 1일 조선유도연합회 상임 이사로 올라선 그는 1941년 조선 임전보국단 발기인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 이명세가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조선 유도연합회'와 '조선 임전보국단'의 실체다.
친일파 후손들의 공통점친일파 이명세가 상임이사를 역임한 '조선 유도연합회'는 일본의 식민지배에 논리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황도 유학'을 육성하기 위해 적극 협력한 친일 관변 단체였다.
(관련기사 : KBS 이인호 조부 "일본은 어진 나라라서 천하무적") 이 단체는 침략 전쟁에 나선 일제를 위해 국방 헌금을 내고, 징병에 자원하도록 조선인을 독려하는 강연을 적극적으로 개최했다. 또한 임기를 마치고 떠나는 조선총독부 총독을 위해 유학자답게 애틋한 한시를 써서 책으로 묶어 바치기도 했다.
더 주목할 것은 이명세의 '조선 임전보국단' 발기인 참여 사실이다. 조선 임전보국단은 최악의 '친일 주도 단체'였다. 최악의 친일파들이 모인 최고의 친일 지도 세력이 '조선 임전보국단'이었다. 이명세는 바로 이 단체를 발기하기 위해 모인 전국의 대표적 친일파 600여 명 중 한 명이었다. 이 같은 이명세를 두고 손녀 이인호 이사장은 지난 9월 9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할아버지는 유학의 세를 늘려가기 위해 타협하면서 사신 것이다. 그런 식으로 친일을 단죄하면 일제 시대 중산층은 다 친일파"라고 말한 바 있다.
우리는 흔히 친일파 후손이라고 해서 그 후손에게 연좌제를 적용하면 안 된다고 말한다. 당연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한 가지 간과해서는 안 될 지점이 있다. 그것은 친일파 후손이 자기 조상의 친일 행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이다. 즉, 친일 조상의 잘못으로 비판받는 것이 아니라 그 스스로 또한 친일 행위를 한다면 이는 따로 비난받아야 할 일이다.
친일파는 과거 1945년 8월 15일 이후로 끝난 것이 아니다. 친일파는 여전히 살아 있다. 나는 <대통령소속 친일 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 조사관으로 만 4년간 일하며 적지 않은 친일파 후손을 만났다. 친일 재산을 국가 귀속하기 위해 그 후손에게 알리는 우편물을 보내고, 이의가 있을 경우 기한 내에 제기하도록 안내했기 때문에 관련 일로 찾아온 친일파 후손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때마다 늘 한 가지 공통점을 느꼈다. 그들 중 누구도 친일 조상의 친일 행적에 대해 반성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반성하지 않은 친일 후손들은 한결같이 비슷한 말을 했다. 친일파로 비난받는 자기 조상은 사실 신작로를 놓고, 저수지를 만들었으며, 학교를 세운 진짜 애국자라고 했다. 한 후손은
마을 사람들이 당시 이를 고마워하며 공덕비까지 세웠다고도 했다. 정말 가당찮은 주장이었다.
일제 당시 대부분 친일파는 농토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농사를 짓고, 생산된 쌀을 외지에 팔기 위해 필요했던 것이 물이 담긴 저수지와 신작로였다. 이처럼 친일 행위 대가로 형성된 재산을 안전하게 유지하는 한편 사회적 명성까지 얻는 방법으로 제일 쉬운 것이 학교를 짓는 것이었다. 그렇게 만든 학교에서 그들은 조선인에게 천황에게 충성하라는 황국신민 교육을 했다. 그것이 친일파다.
그런데 이인호 KBS 이사장은 그동안 내가 봐 왔던 그들과 전혀 다르지 않은 변명으로 자신의 할아버지인 이명세의 친일 행적을 비호했다. 그러면서 백범 선생에 대해서는 '대한민국 공로자가 아니'라는 말로 교묘하게 능멸하고 있다. 참담하기 그지없는 말로 민족 정기를 흔들고 있는 것이다. 그뿐인가. 지난 9월 23일 이인호 이사장이 전국경제인연합회 초청 강연에서 행한 발언 역시 상상을 초월하는 도발적 수준이었다.
1948년 8월 15일, 진짜 해방된 세력은?그는 이날 '우리 역사 바로보기–진짜 대한민국을 말하다' 강연에서 "이승만 박사가 박헌영을 만나 '소련과 손을 끊고 나와 손을 잡고 하자'고 제의했으나 박헌영이 거절했다"며 "그때 박헌영이 '친일파 청산부터 해야 손을 잡을 수 있다'는 명분을 내세웠는데, 그건 결국 소련에서 내려온 지령 때문"이라는 주장을 폈다. 정리하면 '친일파 청산이 소련의 지령'이라는 뜻이었다.
정권은 바뀔 수 있다. 그것이 민주주의다. 그러나 민족정기는 바뀌는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에서 이러한 주장을 하는 사람이 공영 방송의 이사장을 할 수는 없다. 그래야 옳다. 그렇기에 최근 이인호 이사장의 망언을 들으며 나는 임시정부 국무위원을 지냈던 독립운동가 고 차리석 선생님의 장남 차영조 선생님 말씀을 떠올렸다. 언젠가 차영조 선생님이 나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셨다.
"고 선생. 일제로부터 진짜 해방된 사람들이 누군지 아세요?"나는 차영조 선생님의 질문에 쉽게 입을 열 수 없었다. 그 질문에 뭔가 다른 깊이의 답이 있는 것 같아서였다. 말문이 막힌 나를 보며 차영조 선생님이 입을 열었다.
"우리 민족도 아니고, 대한민국도 아닙니다. 바로 친일파입니다. 왜 친일파냐고요? 친일파는 일제 시대 순사도 하고, 검사도 하고, 세무서 과장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경찰청장이나 검찰총장은 될 수 없었습니다. 그건 일본인만 할 수 있는 자리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해방이 되니 어떤가요? 자기 위에 있던 일본인이 쫓겨나니 그 자리를 친일파들이 전부 다 차지했지요. 1945년 8월 15일에 진짜 해방된 사람들은 바로 이 나라 친일파입니다."그야말로 머리를 울리는 충격이었다. 지금 나는 차영조 선생님의 말씀을 그대로 확인하고 있다. 만약 지금도 이 나라가 일제 식민지 상태였다면 어떠했을까. 아무리 친일파 거두의 손녀라 할지라도 일제가 자기나라 공영방송인 NHK 이사장으로 조선인을 앉혔을까. 그런데 지금 이 나라에서는 친일파 후손이 공영방송 이사장으로 임명됐으니 차영조 선생님의 말씀이 그대로이지 않나. 도대체 이 나라는 누구의 나라인가.
이인호 KBS 이사장, 사과하고 사퇴해야
그래서 묻는다. 이인호 이사장은 백범 선생이 독립운동가일 수는 있으나 대한민국 공로자는 아니라고 했다. 그렇다면 1920년 청산리 전투에서 일본군과 맞서 싸우다 처절하게 목숨을 잃은 100여 명의 독립군은 어떤가? 그들 역시 독립운동을 했을 뿐 대한민국 건국에는 아무 역할을 하지 않았으니 대한민국 공로자가 아닌가?
지금 백범 선생과 함께 효창원에 안장된 안중근, 윤봉길, 이봉창, 차리석, 이동녕, 조성환 선생은 또 어떤가? 그들 역시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참여하지 못하고 숨을 거뒀으니 대한민국 공로자가 아니라고 부인할 것인가? 이런 식의 논리라면 일제 시대 부역자로 살아남은 친일파만 대한민국 공로자로 남을 수밖에 없다. 이게 말이 되나. 더구나 1962년 당시 대한민국 정부는 백범 선생에게 대한민국장인 건국훈장 1등급을 수여했다. 이런 백범 선생을 부인하는 사람이 어찌 대한민국 공영 방송 이사장에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독립 정부에서 청사의 문지기를 소원했던, 그래서 그 청사의 뜰을 쓸고 죽을 수 있기를 소망했던 백범. 그런 백범이 "38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구차한 안일을 위해 단독정부를 세우는 데 협력하지 않겠다"며 분단을 막고자 몸부림쳤던 진실을 다른 사람도 아닌 친일파의 손녀가 능멸하고 있음을 보면서 다수의 국민은 분노를 금할 수 없었다.
그래서 요구한다. 이인호 KBS 이사장은 사퇴해야 한다. 지금이라도 그토록 본인이 애틋하게 여기는 조부 이명세를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이미 42년 전 세상을 등진 조부의 이름을 오늘날 다시 세인들 속에서 친일파로 비난받게 되살린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손녀 이인호 이사장이다. 이인호 이사장이 조부의 친일 행적을 세상이 주목하도록 만든 사람이다. 만약 사퇴하지 않고 버틴다면 더 많은 비판과 치욕만이 있을 뿐이다.
대한민국은 결코 친일파의 나라가 아니다.
잠시 혼돈은 있지만, 결국 대한민국은 독립운동가의 나라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청산리 전투에서, 하얼빈 역에서, 홍커우 공원과 아우내 장터에서 목숨을 바친 독립군의 나라다. 더 이상 민족정기를 훼손하지 말라. 역사가 기억할 것이다. 이인호 KBS 이사장은 사과하고, 사퇴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