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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성 위에 앉아서 바라보는 북한산 풍경도 특별하다.
 북한산성 위에 앉아서 바라보는 북한산 풍경도 특별하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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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에 걸리면 안 되는 때가 요즈음 늦가을이 아닌가 싶다. 약 먹으면 일 주일, 잘 먹고 푹 쉬면 7일이면 낫는다고 해서 후자를 택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문제는 창 밖 풍경이다. 하루가 다르게 노랗고 빨갛게 익어가는 바깥 풍경에 나가보지도 못하고 조바심만 났다. 이러다 가을의 정취와 경치를 그냥 떠나보낼까 싶어 기운을 내어 집에서 가까워 늘 고마운 북한산에 찾아갔다. 

몸 상태를 고려해 백운대나 의상봉 같이 힘든 산행 길보다는 북한산이 품은 옛 사찰과 그 주변을 에두르며 산행을 할 수 있는 곳으로 갔다. 북한산과 도봉산 산꾼을 자처하는 지인이 그런 길을 알려 주었다. 국가 보물이 있는 절 삼천사에서 부왕사라는 사라진 옛 절터를 지나, 북한천 계곡을 따라 북한산성 국립공원 입구로 내려오는 산행 코스다.

길도 험하지 않은 데다 집밥 같은 절밥도 먹어보고, 폐사지(廢寺址)의 적요하고 쓸쓸한 풍경과 함께 가을 산의 아름다운 경치까지 볼 수 있어서 만족감이 컸다. 감기가 다 나은 것 같았다. 산자락을 따라 둘레길도 나 있는 북한산(836.5m)은 세계에서 드물게 도심에 자리해 시민 각자가 사는 집이나 체력에 맞춰 갈 수 있는 길이 많아 참 좋은 산이다.

천 년의 세월 지켜온 마애부처

저마다의 사연을 품고 마애부처 앞에 앉아 기도하고 있는 불자들.
 저마다의 사연을 품고 마애부처 앞에 앉아 기도하고 있는 불자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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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날의 한적하고 고요한 산행길엔 다람쥐, 청설모, 도마뱀, 작은 새들이 친구가 되어 준다.
 평일날의 한적하고 고요한 산행길엔 다람쥐, 청설모, 도마뱀, 작은 새들이 친구가 되어 준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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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산행을 할 때 즐거움 가운데 하나가 산속 고찰에 가보는 것이다. 수려한 풍광 속에 자리한 절에 들어서면 불자이든, 다른 종교를 믿는 이들이든, 종교를 믿지 않는 이들이든 크게 중요하지 않음을 느끼게 된다. 북한산 자락의 그런 절 가운데 하나인 삼천사(三川寺)는 가까이에 있는 진관사와 함께 서울 은평구의 대표사찰이다.

북한산의 비로봉과 노적봉이 병풍처럼 멋지게 뒤에 둘러서 있고, 응봉능선과 의상능선 아래로 흐르는 삼천사 계곡에 위치해 있는 삼천사는 <동국여지승람>과 <북한지(北漢誌)>에 따르면 3000여 명이 수도할 정도로 번창했고, 사찰 이름도 이 숫자에서 유래한 것이라 한다. 1592년 임진왜란 때는 승병들의 집결지로 활용되기도 하였다. 임란 중에 소실됐으나, 뒷날 이 절의 암자가 있던 마애여래 길상터에 진영 화상이 중창했다.

삼천사 경내 커다란 '병풍바위'에 새겨진 마애여래입상(三千寺址 磨崖如來立像)은 보물 제657호로 지정된 천년 고불(古佛)이다. 높이 약 3m의 고려 시대 마애불로 조각된 바위 면에는 붉은 빛이 은은하게 남아 있어 과거에는 채색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지그시 감은 듯한 눈과 복스러운 코가 온화한 분위기를 띤다. 부처님이 친근하게 다가왔다.

천년 고불이다 보니 이 마애불은 예부터 영험이 있다고 알려져 삼천사는 기도를 하러 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사람들은 각자의 사연을 마음 속에 담고 커다란 바위에 새겨진 부처를 한참 바라보기도 하고, 몸을 엎드려 기도를 올리기도 했다. 마애부처는 천 년의 세월을 묵묵히 지켜오며 불자들에게 위안이 되어주고 있었다.

이런 귀한 문화재가 있음에도 문화재 관람료를 따로 안 받는 삼천사가 두 번째로 마음에 드는 점은 바로 점심 공양. 다른 절처럼 삼천사에서도 무료로 점심을 제공하며 이곳을 찾는 불자나 등산객을 맞이한다. 삼천사에서 제공하는 점심은 등산객들이 흔히 생각하는 국수나 비빔밥이 아니다. 잘 짜인 식단에 맞춰 밥과 국, 김치를 포함한 4가지 반찬으로 식사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어 고마운 마음에 시주를 조금 했다.

옛 절터에서 느끼는 쓸쓸함과 색다른 운치  

늦가을 정취를 나무 그림자로 그려놓은 부암동 암문.
 늦가을 정취를 나무 그림자로 그려놓은 부암동 암문.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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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가을 경치가 나타날적마다 걸음을 멈추고 자연의 예술작품을 감상했다.
 멋진 가을 경치가 나타날적마다 걸음을 멈추고 자연의 예술작품을 감상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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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천사 뒤편에는 삼천리골 계곡을 따라 비봉능선, 부암동 암문으로 가는 산행길이 나있다. 이 산행길은 북한산의 수많은 등산길 가운데 가장 완만해 산책 삼아 가벼운 산행을 할 수 있어 남녀노소 누구나 오르기 좋은 산길이다. 누군가 조그만 돌탑들을 무수히 쌓아 놓은 삼천리골 계곡은 서울에서 수량이 풍성하고 맑은 계곡으로도 그 명성이 자자해 계절마다 들려도 참 좋겠다.

시끌벅적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오르는 주말과 달리 평일의 산행 길은 호젓하고 적막해서 오히려 좋다. 졸졸졸~ 흐르는 계곡물 소리와 작은 새들의 지저귐이 귀를 간질이듯 들려오고, 나뭇가지 위를 날듯 뛰어다니는 까만 청설모와 다람쥐의 재롱이 귀엽다. 푸석거리는 소리가 나 발치를 쳐다보니, 갈색의 꼬리 끝이 뭉툭한 작은 도마뱀이 보행 자세로 얼어버린 듯 그대로 멈춰서 있어서 웃음이 났다. 주말엔 못 보았을 산속의 생명들이 반갑기만 하다. 가끔씩 마주치는 등산객 아저씨와 가벼운 인사를 나누는 여유도 좋다.

옛 절터인 부왕사로 가는 길은 부암동 암문 이정표를 따라가면 된다. 암문까지는 오르막길의 연속이라 처음 십여 분간은 헉헉~ 숨소리를 내며 올랐다. 한결 부드러운 늦가을의 햇살과 땀을 식혀주는 신선한 바람을 벗 삼아 걷는 산길이 이어졌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야외로 나와 햇살을 즐기며 산행하기 좋은 계절임을 두 다리로 느끼게 된다. 오르막길이 끝나는 북한산 능선위 부왕동 암문(暗門)엔 수고했다는 듯 성벽을 캔버스삼아 나무 그림자가 수묵화처럼 그려져 있었다. 잠시 넋을 잃고 서서 감상을 했다.

이 돌문은 1711년(숙종 37) 북한산성을 축조하면서 설치한 8개의 암문 중 하나다. 암문은 비상시에 병기나 식량을 반입하는 통로이자 때로는 구원병의 출입로로 활용된 일종의 비상출입구다. 부왕동의 동(洞)이란 요즘처럼 동네 이름이 아닌 '아름다운 골짜기'를 가리킨다. 숙종·영조 때 인물로 북한산성을 쌓는 데 기여한 승려인 성능이 지은 <북한지(北漢誌)>에 따르면, 북한산에는 북한동·백운동·중흥동·부왕동 등 18개의 '동'이 있었단다.

부왕동은 예전에 이곳에서 가까운 신혈사에서 임금(고려 현종)을 구한 적이 있다고 하여 왕을 도운 계곡이란 뜻으로 부왕동(扶王洞)이라 명명했다고 한다. 암문에서 옛 절터 부왕사지로 가는 길은 완만한 내리막 흙길이라 걷기 좋고, 무엇보다 단풍나무가 북한산 어느 곳보다 많기로 유명한 길이다. 둔중한 바윗돌에 어울린 멋진 단풍 풍경이 보일 적마다 걸음을 멈추어 서서 그림 감상하듯 감탄을 하며 보게 된다. 

옛 절터인 폐사지를 지날 땐 발길이 저절로 머물게 된다.
 옛 절터인 폐사지를 지날 땐 발길이 저절로 머물게 된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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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김정희, 다산 정약용 등의 선조들도 즐겨 찾아온 정자 산영루 앞 계곡가.
 추사 김정희, 다산 정약용 등의 선조들도 즐겨 찾아온 정자 산영루 앞 계곡가.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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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같은 숲속 산길 가에 폐사지(廢寺址) 혹은 옛 절터 '부왕사지'가 있다. 조선 숙종 43년(1717 년)에 지어진 독특한 이름의 절 부왕사는 버려진 사찰이 되어 커다란 주춧돌, 석조유물 등의 흔적만 남아 있다. 스님의 잔잔한 독경소리, 낭랑한 목탁소리가 사라진 폐사지 주변 분위기는 무척 쓸쓸하고 적막한 기운이 감돈다.

이런 폐사지를 찾아 작품을 남기는 사진가와 예술가들이 있는 것을 보면, 시간과 세월은 쓸쓸함과 적막함마저도 아름다움과 운치 있는 고즈넉함으로 바뀌게 하는 것인 듯싶다. 늦가을 특유의 허허로운 공기가 더욱 선선하게 느껴져, 쉬어 갈 겸 길쭉한 나무 의자에 앉아 한참을 머물게 한다. 사람들이 오가는 산행 길에서 살짝 벗어나 있어서 그런지 사위는 고요하기 이를 데 없고, 주춧돌 너머로 보이는 북한산이 그 옛날 삼각산으로 돌아간 듯했다.

산 구경은 어디가 좋은 고 하면 看山何處好
부왕이라 옛날의 선림이라네 扶旺古禪林
해 지니 봉우리는 물든 것 같고 日落峯如染
단풍 밝아 골짝은 어둡지 않네 楓明洞不陰
종어소리 원근에 들려오는데 鍾魚來遠近
온갖 새들 유심을 함께 즐겨라 禽鳥共幽深
머리머리 절묘함을 차츰 깨치니 漸覺頭頭妙
영구는 곧 도심과 서로 맞거든 靈區愜道心

- 추사 김정희가 지은 <부왕사(扶旺寺)>

뒤로 북한산(당시엔 삼각산)이 그림처럼 펼쳐진 주춧돌과 몇몇 석조유물만 묵묵히 남아 폐허가 된 절터를 보니, 그리 아름다웠다는 절이 어쩌다 이리 허망하게 사라지게 되었을까 절로 상상하게 된다. 주지 스님이 아름다운 여성 불자와 눈이 맞아서 절을 떠난 것일까... 다행히 내 엉뚱한 상상을 깨워 주는 안내 팻말이 나있었다.

북한산성 내에는 산성의 축조와 수비, 관리를 담당하는 승병이 주둔했던 승영사찰이 있었는데 부왕사도 이런 사찰 가운데 하나였단다. 부왕사 주변에 있는 중흥사, 용암사, 태고사 등 13개의 승영사찰이 있었다고 한다. 학창시절엔 조선시대 하면 숭유억불(유교를 숭배하고 불교를 배척함)이라고 배웠는데 실은 '숭유용(用)불' 이었구나 싶었다.

부왕사지에서 10분 정도 걸어 계곡으로 내려서면 산영루터와 비석거리 그리고 중흥사지가 연이어 있다. 특히 복원중인 산영루(山映樓) 정자는 나무들 우거진 계곡가에 절묘하고 그림처럼 자리하고 있어 우리 조상들의 미적 감각이 돋보인다. 지나가는 사람들 누구나 사진을 찍게 했다. '아름다운 북한산의 모습이 물가에 비친다'는 그 이름에서 보듯 북한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절경 중 한곳에 자리 잡은 문화유산이라는 안내 소개말에 고개가 끄떡여졌다. 다산 정약용이 이곳에 찾아와 남긴 시문이 안내 팻말에 써있다.

북한산 풍경 품고 있는 초등학교, 이름값 하네

북한산 초등학교 앞에 있는 유흥억 할아버지 공덕비와 장승.
 북한산 초등학교 앞에 있는 유흥억 할아버지 공덕비와 장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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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값을 하는 북한산 초등학교, 의상봉이 학교 수호신처럼 우뚝 서있다.
 이름값을 하는 북한산 초등학교, 의상봉이 학교 수호신처럼 우뚝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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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동 북한천 계곡을 시원하게 조망하며 중성문을 지나 북한산성 입구로 내려오다 보면 북한산의 백운대, 만경대, 원효봉, 노적봉 등이 한 눈에 펼쳐져 보이는 조망 장소가 마련되어 있다. 그런데 위쪽 가까이에 전봇대와 굵은 전깃줄이 자리하고 있는 바람에 보기 드문 풍경을 망쳐 버렸다. 때문에 누구나 '쯔쯧~ 저눔의 전봇대' 하며 아쉬움을 표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 아쉬움을 풀어주는 곳이 산행이 끝나는 북한산성 입구 탐방지원센터 인근에 있다.

바로 북한산 초등학교(서울시 은평구 진관내동)다. '들꽃 피는 배움터 서울 북한산 초등학교' 팻말을 따라 5분 정도 걸어가면 소박한 분위기의 시골학교 같아 더 정이 가는 학교 정문이 나타난다. 정문 앞엔 익살맞은 표정의 장승들과 함께 1967년 학교를 세울 때 큰 역할을 했다는 '유흥억 할아버지 공적비'가 세워져 있어 눈길을 끌었다. 당시 산자락 아래 빈터였던 학교 터를 다듬어서 교실을 짓고 나무를 심으며 운동장을 닦는데, 동네 어른들이 모두 나서서 땅을 파고 수레를 끌며 정성을 쏟았다고 한다. 당시의 동네 이름은 북한동으로, 북한산성 안에 살았던 사람들의 아이들이 이 초등학교를 다녔다고 한다.

정문 앞 학교 이름 밑엔 '서울시 교육청 지정 야영수련 협력학교'라고 밑에 한 줄 더 써있다. 공기 좋고 풍경 좋고 나무가 많아 누가 봐도 야영하기 좋은 곳이다 보니 여름엔 다른 학교에서 신청을 하고 단체로 야영을 하러 온단다. 정말 학교 안에 방갈로, 샤워장, 취사장 같은 야영장이 있다. 천체망원경 시설도 있어 밤에 별과 달을 관찰할 수 있다니, 타 학교들의 캠프 신청이 줄을 설만 하겠다.

학교 정문에 들어서면 북한산 의상봉의 장쾌하고 늠름한 모습이 마치 학교의 수호신처럼 운동장 위로 펼쳐져 있어 누구나 감탄을 하게 된다. 아마 북한산 의상봉이 가장 멋들어지게 보이는 곳 일게다. 북한산을 병풍처럼 거느린 학교는 그 자체로 한 폭의 그림이다. 경비실 아저씨도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당신이 계절마다 찍어 놓은 학교 주변 풍경 사진첩을 펼쳐 보여주셨다.

북한산 초등학교는 그림 같은 풍경도 좋지만 여러 나무들이 많아 좋다. 유흥억 할아버지를 비롯한 동네 주민들이 당시 학교에 심은 나무들이 잘 자라 산림청 주관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아름다운 학교 숲 상을 받기도 했다. 봄에는 풍성한 벚나무에서 펼쳐지는 수려한 벚꽃들이 가을에는 단풍나무와 은행나무, 눈 내린 겨울에는 골짜기, 암벽에 하얗게 눈이 쌓인 설산이 된 북한산이 수묵화처럼 뒤로 펼쳐진다. 서울에서 제일 아름다운 학교라는 말에 손색이 없다.

운동장 또한 인조잔디를 깔은 요즘 학교들과 달리 풍성한 풀밭 같은 잔디가 푹신푹신해 아이들이 뛰어다니기 좋겠다. 학교 안에는 40분 정도 걸리는 산책로가 교정을 따라 둘레길처럼 나있다. 아이들이 심어 놓고 반과 이름 표시를 한 야외 텃밭엔 갖가지 채소들이 아이들처럼 잘 자라고 있었다. 북한산 초등학교는 교정이 바로 자연학습장이다. 내가 졸업한 학교도 아닌데 북한산에 갈 적마다 자꾸만 찾아가게 될 것 같다.

* 주요 산행길 : 삼천사 – 부왕동 암문 – 부왕사 옛 절터 – 산영루 – 중성문 – 대서문 – 북한천 계곡길 – 북한산성 입구 탐방지원센터 – 북한산 초등학교

덧붙이는 글 | 지난 10월 28일에 다녀왔습니다. 삼천사 교통편 : http://www.3004.or.kr



태그:#북한산, #삼천사, #마여여래입상, #부암사, #북한산 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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