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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나카의 미소를 보여준 타욱짜 시장 근처에서 만난 소녀
▲ 린린(가명) 타나카의 미소를 보여준 타욱짜 시장 근처에서 만난 소녀
ⓒ 전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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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린!

그녀를 만난 곳은 양곤 외곽 타욱짜 시장 근처였다. 저수지 위에 양계장을 지어 놓고 닭들의 배설물로 물고기를 키우는 양어와 양계를 동시에 하는 독특한 농장을 둘러보고 난 후였다. 근처 노점상에서 음료수를 살 생각으로 들렀는데 타나카를 바른 소녀의 미소가 내 시선을 사로 잡았다. 14~15살로 보이는 수줍어하는 소녀의 미소 속에는 모든 것을 빨아 들이는 마력이 있었다. 이 소녀의 나이는 15살을 더 먹었을 수도 있다.

미얀마에서 얼굴로 나이를 가늠하는 것은 무척 어렵다. 어린아이 같이 보여도 19~20살인 경우가 많았다. 사실 린린이라는 이름도 그녀의 진짜 이름이 아니다. 수줍은 소녀의 미소를 보면서 미얀마의 대표 미소라는 생각이 났고 수요일에 태어났을 것 같아 '린린LinLin'이라는 이름이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미얀마 사람들은 태어난 요일에 따라 이름을 짓는다. 코끼리를 상징동물로 하는 수요일에 태어난 사람의 이름에는 린Lin, 쉬웨Shwe, 윈Win, 흘라Hla, 예Yee, 인Yin 이라는 이름이 들어간다(미얀마 사람들의 이름 짓기에 대해서는 추후 별도로 다루어 보겠다). 이런 어설프게 알고 있는 지식으로 떠오른 이름이 바로 '린린'이었다.

린린의 가족들은 도로 옆에 허름하게 대나무 집을 지어 놓고 작은 가게에 의지하여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지나가는 뜨내기 손님들의 푼돈으로만 생계 유지는 어려울 것이다. 아마도 가족 중에 누군가는 다른 곳에서 밥벌이를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허름한 노점상이 가족 생계에 큰 버팀목임은 분명해 보였다.

그리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도 린린을 포함하여 가족들의 얼굴에서는 궁핍함에 찌든 고단함 보다는 삶을 관조하는 듯한 미소가 넘쳤다. 짧은 미얀마어로 소통의 한계는 있었지만 잠깐의 만남 속에 말하지 않아도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는 시간이었다. 비록 내가 본 모습이 미얀마의 극히 일부의 모습이겠지만 린린의 가족과의 짧은 만남을 통해 왜 사람들이 미얀마를 미소의 나라라고 하는지를 조금 알게 되었다.

나는 그렇게 타나카의 미소 속에서 미얀마에 대해 한발 더 들어가 볼 수 있었다. 미얀마에 방문하게 되면 여러 가지 독특한 첫 인상 중에 린린의 타나카 미소처럼 갈색의 칠을 한 타나카의 얼굴을 수없이 만나게 된다. 어느 나라를 이해하기 가장 빠른 방법은 그 나라 사람들의 사는 모습(문화)을 이해하는 일이다. 다름을 이해하게 되면 결국 누구나 친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린린의 가족이 사는 모습과 린린의 수줍은 타나카의 미소가 미얀마 속으로 나를 더 깊숙이 끌어 들였다.

어린이들에게는 남녀 불문 타나카를 발라준다. 사진기를 들이 대자 귀여운포즈를 취해 주었다.
▲ 린린의 동생 어린이들에게는 남녀 불문 타나카를 발라준다. 사진기를 들이 대자 귀여운포즈를 취해 주었다.
ⓒ 전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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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나카와 첫만남, 그 강렬했던 기억

내가 처음 타나카를 접한 곳은 바로 도착하는 날 공항에서였다. 기대를 안고 늦은 밤 도착한 양곤국제공항은 화려한 인천국제공항에 비교되어 너무나 수수해 보였다. 인천공항은 고사하고 김포공항의 반에 반도 안 되는 이 소박한 이국의 국제 공항은 이방인을 조용하게 맞아 들였다. 공항 입국 심사대에서 호기심으로 이곳 저곳을 살피던 중 제복 입은 사람들 사이로 한 여인이 시선에 들어왔다.

그 여인은 얼굴에 흰 가루 칠을 한 독특한 인상 탓에 멀리서도 눈길을 확 끌었다. 순간 나는 80년대 흰 분칠을 한 강시영화가 생각났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미얀마의 얼굴이라는 타나카를 보고 강시를 생각해 낸 내 정신상태가 의심스럽긴 하다. 늦었지만 낯선 땅에 대한 약간의 긴장감과 장시간의 비행피로가 가져온 일종의 착시였다는 구차한 변명으로 미안함을 대신해 본다. 멀쩡하게 생긴 예쁜 얼굴에 낙서한 것처럼 흰 칠을(정확하게 말하면 약간의 갈색의 가루) 하고 다니는 여인의 모습은 미얀마를 만나는 첫인상으로 충분히 강렬했다.

타나카를 바른 미얀마의 얼굴들
▲ 타나카의 얼굴 타나카를 바른 미얀마의 얼굴들
ⓒ 전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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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나카는 미얀마 사람들의 삶이다

타나카를 바른 모습은 아프리카 추장들이 얼굴에 하고 나오는 페인팅 같기도 하고 가끔 영화에서 본 적이 있는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표식 같기도 하다. 한두 명이 아니고 대부분 여인들의 얼굴에 칠해져 있는 이런 모습은 이곳에서 내가 이방인 이라는 사실을 시각으로 깨닫게 해준다.

이 갈색의 가루는 타나카라는 나무를 물을 조금씩 뿌리면서 작은 돌판에 먹을 갈듯이 갈아 만든 것이다. 타나카 나무를 갈면 타나카 가루들이 물과 희석 되어 나오게 된다. 가이드 말에 의하면 2천년 전 고대도시국가 시대부터 애용했었다는 기록이 문헌에 있다고 한다.

이렇게 오랜 된 관습을 거의 원형대로 21세기까지 이어오고 있다는 점이 참으로 놀랍다. 물론 이처럼 원형대로 타나카 나무를 갈아서만 쓰는 건 아니다. 양곤 보족 아웅 산 마켓에서 보니 파운데이션, 썬블록 크림, 수분 크림 등 현대식 화장품으로도 이미 나와 있었다.

서민들이 사기에 부담스런 가격 탓인지는 몰라도 아직은 일반화 되어 있지 않다. 아무리 세련된 화장품이라도 기능만 살린 화장품이 원형대로 바르며 느끼는 타나카 본래의 정신을 다 담을 수 없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타나카는 미얀마사람들에게 화장품이라기 보다는 삶의 일부이다. 가이드 말에 의하면 미얀마 사람들은 해외에 이민을 가서 살아도 그곳에서 타나카를 바르든 안 바르든 타나카 나무와 맷돌을 가지고 간다고 한다. 그 만큼 미얀마 사람들에게 타나카란 화장품의 개념을 넘는 고향 같은 의미라고 할 수 있다.

타나카의 효능은 피부에 바르면 마르면서 피부의 기름기를 조절해주고 피부 건조도 막아 주며 미얀마 여인들이 좋아하는 향을 낸다고 한다. 또한 강력한 자외선 차단 효과가 있어 햇빛이 유난히 따가운 미얀마 기후에서 밖에서 일하는 인부들은 볼과 코에 타나카를 두껍게 바르고 일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사실 자세히 살펴보면 양 볼에 부적처럼 집중적으로 바르고 그 외 부분은 노출 되어 있어 어차피 자외선 차단 효과는 부분적일 것이다. 타나카는 이런 이유를 넘어 외출할 때 옷을 입듯이 습관적으로 바르는 듯했다.

이는 태어나면서부터 누구나 타나카를 바르면서 자랐기 때문에 오히려 바르지 않는 모습이 이상해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 나라 사람들이 타나카를 얼마나 많이 애용하고 있는지 시장에 가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미얀마의 어느 시장에 가나 곳곳에 타나카 나무와 맷돌 같은 돌판 그리고 갈아서 뭉쳐 만든 갈색 덩어리들을 수북하게 쌓아 놓고 판다. 관광지가 아닌 시골의 작은 장터에 가봐도 타나카는 이곳 저곳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이처럼 타나카는 미얀마 사람들의 삶 자체이다.

시장에 가면 타나카 재료들을 수북하게 쌓아 놓고 판다. 돌판, 타나카를 갈아 뭉친 덩어리, 타나카 나무(왼쪽 아래부터 시계방향)
▲ 시장에 쌓여 있는 타나카 재료 시장에 가면 타나카 재료들을 수북하게 쌓아 놓고 판다. 돌판, 타나카를 갈아 뭉친 덩어리, 타나카 나무(왼쪽 아래부터 시계방향)
ⓒ 전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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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나카의 미소가 벌써 그립다

미얀마 현지 한국어 통역 가이드 떼떼씨에게 미얀마 사람들에게 타나카란 어떤 의미인지 물어 보았다. 떼떼씨는 미얀마 사람임에도 여행객을 위한 배려인지 타나카를 바르지 않았다. 그것이 궁금하기도 하여 겸사겸사 물어 보았다.

"미얀마 여인들에께 타나카란 무엇인가요?"

카톡으로 보내온 떼떼씨의 솔직한 답변이 타나카를 바르는 미얀마라는 나라를 더욱 친근감을 갖게 했다

"미얀마 사람에게 타나카란? 전통을 시키면서 심플하고 순수하게 예쁠 수 있는 화장품!
미얀마 사람들(특히 남자들)은 타나카 바른 여자가 순수하고 미얀마 전통을 시키는 여자로 생각합니다.(그 느낌을 표현한 노래들도 많아요)
'아이라이너 쓰는 여자는 여친으로 타나카 바른 여자는 결혼할 여자로' 이런 말도 있어요.ㅋㅋㅋ
제가 안 바른 이유는 땀이 많이 나는 편이라 타나카 바르면 얼굴이 더럽게 보여서요 ㅎㅎㅎㅎㅎ "

생각해보니 정말 가끔 젊은 여성 중에 타나카를 안 바른 사람을 본 적이 있는 것도 같다. 그럼에도 아직 대부분 사람들은 타나카와 함께 산다. 언듯 보면 광대분장을 한 것처럼 보이는 이런 화장법을 21세기에도 모든 사람들이 즐겨 하고 있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참 신기한 일이다. 이방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니 타나카는 단순한 화장품이 아니라 전통을 중시하며 살아 가는 미얀마 사람들의 자존심이라는 생각이 든다.

미얀마의 얼굴 타나카!
타욱짜 시장 근처에서 만난 린린의 수줍은 타나카의 미소!
그 얼굴을 꼭 다시 한 번 보고 싶다.

덧붙이는 글 | 미얀마말 표기는 현지 발음 중심으로 하였으며 일부는 국내에 일반적으로 알려진 표기법을 따랐습니다.



태그:#타나카, #미얀마, #미얀마의 미소, #미얀마 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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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공작소장, 에세이스트, 춤꾼, 어제 보다 나은 오늘, 오늘 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고자 노력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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