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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 경남도지사에 이어 남경필 경기도지사도 무상급식 예산 지원을 거부하고 나서면서 정착 단계로 여겨지던 무상급식이 다시 혼란을 겪고 있다. 여기다가 무상급식 비율이 전국 최하위인 울산에서는 그동안 진보구청장이 추진해왔던 초등학교 일부 학년의 무상급식도 축소될 위기에 처했다. 울산의 사례를 들어 무상급식 축소가 서민경제에 미칠 영향을 살펴봤다. - 기자 말  


지난 10월 13일, 울산 동구청 홈페이지 '구청장과의 대화'에 한 주민이 올린 글. 새로 당선된 구청장이 5학년 무상급식은 폐지하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무상급식 약속을 지켜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지난 10월 13일, 울산 동구청 홈페이지 '구청장과의 대화'에 한 주민이 올린 글. 새로 당선된 구청장이 5학년 무상급식은 폐지하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무상급식 약속을 지켜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 울산 동구청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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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명의 자녀를 둬 급식비용이 한 달에 20만 원에 육박했다. 막내가 중학교에 가는 바람에 (올해는) 더 이상 그 혜택을 받을 수 없지만, 다른 가정에서도 저의 사정과 별반 다르지 않을거라 생각한다. 저희 집은 맞벌이 임에도 자녀에게 부담되는 비용이 만만치가 않다".

지난 10월 13일, 울산 동구청 홈페이지 '구청장과의 대화'에 주민 김말순씨가 구청장을 향해 올린 글이다. 전임 구청장이 초등학교 5학년과 6학년에 지원하던 무상급식비 예산을 6·4지방선거에서 새로 당선된 구청장이 5학년은 폐지하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서다.

이 글에서는 자신의 경우에 더해 더 어려운 이웃이 급식비 부담으로 겪을 어려움을 걱정하는 모습이 엿보인다. 사실 필자의 경우도 이와 비슷해 공감이 갔다. 올해 중학교에 입학한 막내가 요즘 학교에 내는 한 달 급식비는 6만 원가량. 그나마 울산 동구에 살기 때문에 초등학교 6학년이던 지난해는 무상급식 혜택을 봤다. 하지만 올해는 빠듯한 가계에서 한 달에 6만 원이 더 지출된다.

만일 무상급식 비율이 높은 제주(86.9%)와 전남(84.5%), 전북(83.7%), 강원(82.1%) 지역에 살았다면 앞서 글을 올린 주부와 우리 집은 한 달 6만 원가량 가계에 보탬이 됐을 것이다. 이 주부의 경우처럼 초·중·고교에 다니는 자녀가 많을 경우 혜택의 폭이 더 커질 것은 불문가지다.

도시마다 다른 무상급식 비율, 왜 그럴까

올해 국정감사 결과 초·중·고 학생 가운데 무상급식을 지원받는 비율은 전국 17개 시도 중 울산(36.3%)이 최하위였다. 대구(45.5%), 경북(49.5%), 경남(51.1%), 부산(55.4%), 인천(55.7%)도 전국 평균 무상급식률(69.1%)에 미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수지자체장, 보수교육감의 철학 때문'이라는 정치적 논쟁을 떠나 도시마다 현저히 차이 나는 무상급식 비율은 곧바로 지역 주민들 간의 가계부담 차이와도 연결되는 것이라 서민들에게는 중요한 의미로 다가온다.

비단 전국 최하위 울산만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 홍준표 경남도지사와 남경필 경기도지사 등이 무상급식 예산 지원을 거부하면서 일부 도시에서는 '내년도 무상급식이 축소될 것 아닌가'하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처럼 이제 자리를 잡은 것 같던 무상급식 정책이 오히려 축소될 위기에 처한 것은 무슨 이유일까? 울산의 사례를 살펴보면 어렴풋이 그 답을 유추해 볼 수 있다.

무상급식 축소가 추진되는 울산 동구는 지역 5개 구·군 중 예산 규모와 재정자립도가 가장 열악한 곳이다. 하지만 진보구청장이 당선된 동구는 북구와 함께 자체 예산을 투입해 무상급식을 점차 확대해 왔다. '예산집행의 우선순위가 서민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실감케 했다.

특히 최근 전임 구청장이 시행하던 무상급식을 오히려 축소하겠다고 천명한 새누리당 권명호 동구청장의 경우를 보면 '무상급식이 꼭 예산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을 들게 한다.

권 구청장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지 한 달만인 지난 7월, 올해 1차 추가경정에서 의전차량 교체 예산을 편성해 통과시킨 후 지난 9월 5일 5700여만 원을 들여 3천㏄급 중형 승용차 제네시스를 구입했다.

당초 동구의회 장만복(새누리당) 의장의 차량도 제네시스로 교체하기로 했지만, 구의원들의 반발로 무산됐다. 결국, 선거가 끝나자마자 구청장과 구의장의 의전차량 교체비용만 1억 1400만 원을 추가경정예산에 편성한 것이다.

추가경정예산이 당초 예산에서 못 다한, 주민들에게 반드시 필요하고 시급한 사업일 경우에 편성하는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다.

동구청의 올해 무상급식 예산은 15억 9800만 원. 하지만 제네시스로 차량을 바꾼 권명호 구청장은 5학년 무상급식을 폐지해 2억 9900만 원의 예산을 줄이겠다고 한다. 제네시스 차량 구입 후 드러난 그의 무상급식 축소 의지로 볼 때, 줄어들 것으로 전망되는 무상급식 비용이 고급 의전차량 교체 비용으로 들어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울산시가 2010년 울산대공원에서 SK에너지(주)와 공동으로 개최한 110만 송이 장미축제 모습. 당시 울산시는 다음해 예산 편성에서 야당과 시민사회단체가 요구하는 친환경무상급식 예산은 배제한 채 장미식재 예산은 편성해 논란이 일었다. 무상급식 예산은 0원, 장미 예산은 향후 3년 28억이었다
 울산시가 2010년 울산대공원에서 SK에너지(주)와 공동으로 개최한 110만 송이 장미축제 모습. 당시 울산시는 다음해 예산 편성에서 야당과 시민사회단체가 요구하는 친환경무상급식 예산은 배제한 채 장미식재 예산은 편성해 논란이 일었다. 무상급식 예산은 0원, 장미 예산은 향후 3년 28억이었다
ⓒ 박석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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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이 전국에서 무상급식 비율 꼴지도시가 되는데 기여(?)한 것으로 평가되는 전임 3선 박맹우 울산시장(새누리당)의 경우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무상급식이 전국적으로 화두가 되던 지난 2010년. 당시 박맹우 시장은 무상급식을 포퓰리즘으로 규정하면서 다음해 예산안에 무상급식비를 0원으로 책정했다. 하지만 그에 반해 3년간 장미 식재 예산으로 28억 2000만 원을 편성해 논란을 빚은 바 있다.

앞서 박맹우 시장은 지난 2007년부터 2010년까지 4년간은 사업비 58여억 원을 들여 시내 곳곳에 덩굴식물 100만 본을 식재토록 해 시민사회단체로부터 지적받은 바 있다. 4년이 지난 현재 이 사업이 무슨 의미가 있었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하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연이어 무상급식은 0원, 다시 장미 예산 수십 억 원을 책정한 것이다.
(관련기사: 울산시, 무상급식 0원 장미 예산은 28억)

당시 '무상급식 0원, 장미 식재 28억 원'을 두고 논란이 거셌다. 예산심사를 하던 류경민 시의원은 "조경전문가들에 의뢰한 결과 장미는 유독 병해충, 특히 진딧물에 약해 입지조건이 까다롭고 전문가의 손질이 가지 않으면 잘 크지 않는다"며 "특히 장미의 병해충이 다른 식물로 번져 시민들과 함께하는 식재로는 적당하지 않다고 전문가들이 우려했다"며 장미 식재 무용론을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예산은 그대로 관철됐다.

무상급식 축소가 가져올 서민 경제 부담은 어찌하나

문제는 무상급식의 축소가 가져올 서민 경제 부담이다. 울산의 사례를 살펴보면 무상급식 축소 움직이 일고 있는 일부 도시의 바로미터가 될 듯하다.

울산은 1인당 GRDP(지역총생산) 6300만 원, 지역수출이 1000억 달러, 세계적인 조선, 자동차, 석유화학 대기업이 소재해 전국 최고 부자도시라고 지칭된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바로 이점이 무상급식에 관한 한 오히려 서민층에게는 마이너스 경제적 심리적 효과로 작용한다. 여기다 상대적 박탈감이라는 이중의 고충으로 다가온다.

대기업 정규직은 같은 공정에서 함께 일하는 비정규직을 비롯해 일용직, 영세상인 등에 비해 임금이 높다. 울산을 부자 도시로 만든 한 요인이다. 하지만 대기업 정규직은 여기다 더해 사내 복지차원에서 자녀 학자금과 급식비를 지원받는다. 꼬박꼬박 학교급식비가 계좌에서 빠져나가는 시민들은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더 문제는, 급식비에 신경 쓸 일이 없는 시민구성원들이 많다보니 '무상급식 전국 최하위'라는데 대한 지역의 문제의식이 떨어진다. 결국, 부자도시 내에서의 보편적 무상급식은 주민간의 갈등을 유발하는 동시에 서민층을 더 어렵게 하고 있는 것이다.

보편적 복지개념의 무상급식 도시 울산에서는 차상위 혹은 차차상위 등 법적으로 인정된 저소득계층과, 대기업 정규직의 자녀가 무상급식의 대상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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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울산 동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일어난 웃지 못할 일은 무상급식을 두고 서민층이 받는 상대적 박탈감을 잘 말해준다. 한 초등학교 행정실에서 학부모들에게 보낸 휴대전화 문자가 발단이다.

학교 측은 학부모들에게 급식비 계좌안내를 하면서 "현대중공업과 현대자동차에 다니는 학부모님들은 증빙서류만 제출하면 됩니다"라고 문자를 보냈던 것. 물론 나중에 학교 측이 "잘못 보낸 문자"라고 해명했지만, 나머지 학부모들의 반발이 거셌다. "누구는 학교급식이 무료로 누구는 돈을 내야 하나"하는 반감이 터져 나온 것.

당시 한 학부모가 한 말이 새삼 떠오른다. 그는 "내 소득으로 볼 때 사실 동사무소에서 증빙서류를 받아 학교에 제출하면 급식비를 면제받을 수 있다. 하지만 한 달 6만 원 때문에 우리 아이가 받을 상처를 생각해 그 돈을 내고 만다"고 토로했었다.


태그:#울산 무상급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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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지역 일간지 노조위원장을 지냄. 2005년 인터넷신문 <시사울산> 창간과 동시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활동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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