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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서 위험에 대한 근본적 대책이 나오지 않는 이유는 위험정의 자체가 그 과학적 타당성으로 인해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복잡한 산업 체계와 개별 요인들을 연결시키며 사업, 개인, 법과 정치 행위자들의 상호의존을 따로 떼어낼 수 있는 단일 원인 및 책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토양 오염의 경우를 살펴보자. 농부들은 화학사료 및 비료로 토양을 오염시키지 않으며, 당국자들은 화학물질의 판매를 금지하거나 적극적으로 제한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누가 뜨거운 감자를 먹을 것인가. 당국자인가 농부인가 아니면 입법자인가. 이 경우만 보더라도 책임의 소재가 갈라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서 고도로 분화된 산업사회는 복잡성에 의해 책임소재가 불분명하게 된다. 모든 사람이 원인이자 결과이며, 따라서 원인이 아니다. 아마 세월호도 마찬가지였을 거다.

문명의 위험은 밑 빠진 독과 같아 끊임없이 생산된다. 새로운 기술의 발전으로 위험은 항상 새롭게 등장하는데, 큰 비용을 투입하는 것에 대해 집단의 의견이 갈리다보니 항상 완벽한 통제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결국, 사람들은 위험에 영향 받을 수밖에 없다.

결국 근본적인 문제점은 위험을 쉽게 받아들이는 집단과 그대들의 공감능력 상실로 인한 안일함이 원인이 된다. 필자는 이것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많은 고민을 해보았는데, 결국 '공감능력의 최대화'를 해결하기 위해서 떠올린 것은 군대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화생방 훈련이었다.

화생방 훈련을 통해 화학탄의 위험성과 방독면의 소중함을 온몸으로 체험할 수 있다.
▲ [일밤-진짜 사나이] 공포의 화생방 훈련 화생방 훈련을 통해 화학탄의 위험성과 방독면의 소중함을 온몸으로 체험할 수 있다.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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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를 다녀온 한국 남성들이라면 화학탄의 위험이 얼마나 잔인하고 위험한지 몸으로 체험해서 알 수 있다. 화생방 훈련을 통해 극한의 공포를 체험하면서 방독면의 소중함을 온몸으로 느낀다. 예비역이라면 방독면이 필요 없다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없는 것으로 봐선 그 효과는 상당히 유효하다고 보아야 한다. 바로 재난재해의 대책도 여기서부터 출발해야한다.

방독면의 소중함을 알기 위해 화생방 훈련을 하듯, 귀신이 무서우려면 귀신의 집 체험을 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의회의 입법자들이 올바른 특별법의 소중함을 알기 위해선 재난 체험을 해야 한다.

2001년 경 발생한 미국 9·11 테러 이후, 그 나라에서는 대형빌딩에서 주기적으로 안전훈련을 실시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아마도 재난재해의 위험과 그 대처법을 몸으로 익히기 위함이 아닐까 생각된다. 위에서 얘기한데로 의회의 입법자들이 올바른 재난대책을 강구하기 위해선 재난 체험을 해야 하면서, 또한 일반시민들에게도 재난 상황 체험과 대책에 대한 훈련을 이수할 수 있도록 유도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대구 지하철 참사의 경우를 떠올려보자.

무언가 타는 냄새가 난다고 하여 모든 사람들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줄행랑을 쳤는가? 아니다. 재난의 상황에서는 침착함은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다. 사건의 징후를 발견했다면 빨리 그 장소를 이탈하는 성급함이 오히려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리고 이런 행동은 재난에 대한 체험과 대책 훈련을 통해서 충분히 유도할 수 있다.

결국, 사회적 체계는 단순히 '물리적'인 부분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재난에 대한 탈피는 '문화적'인 부분으로도 충분히 이루어질 수 있다. 그 문화적인 부분으로 입법자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 전반적인 재난 시스템이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재난 체험과 대책 훈련은 '공감능력의 최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공포라는 감정은 때론 독약같이 느껴지지만, 재난에서 만큼은 쓴 한약과 같을 수 있다. 재난 체험을 통해 획득한 공포로 빨리 위험을 감지할 수 있게 되며, 대책 훈련으로 그 위험을 감지한 뒤 준비된 행동을 통해 재난 상황에서 황급히 빠져나갈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 그를 위해선 온 국민이 반드시 체험하고 훈련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고가 잦지 않은 사회에서는 재난이 발생하면 사람들은 '서프라이즈' 하게 된다. 공포는 드물고 익숙치 못한 것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사고가 잦은 사회다. 이 사회에서는 재난이 발생하면 사람들은 '서스펜스'하게 된다.

너무 빈번한 재난이 사람을 무디게 만들고 단순히 긴장만 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 피로감은 없어지지 않는다. 근본적인 해결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피로는 끊임없이 사람들을 괴롭히고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킨다.

결국, 이 긴장감을 완화시키고 사람들을 안심시키기 위해선 그 근본적 해결책이 필요하며, 그것은 재난에 대한 인식의 체험에서 출발할 수 있다. 입법자를 포함한 개개인의 체험된 긴장은 올바른 시스템을 유도할 것이며, 결국 많은 비용이 투입되겠지만 차근차근 진행된 올바른 재난 시스템은 종국에 사람들의 피로감을 해소시켜 줄 것이다.

대한민국은 현재 위급한 위험사회

브라질에는 파리시 촌이라는 더러운 화학도시가 있다. 빈민굴의 주민들은 산성비가 갉아먹기 때문에 해마다 지붕을 교체해야 한다. 심지어 이곳의 슈퍼마켓에서는 가스 마스크를 팔고 있을 정도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악어 피부'가 돋는데, 또한 아이들은 천식, 기관지염, 각종 콧병과 목병 그리고 피부염에 걸려있다.

그럼에도 과거 브라질 자본주의가 급속히 성장하던 시절, 군사정권은 외국 기업을 유치하며 "브라질은 아직 오염을 수입할 여유가 있다"고 큰소리쳤다. 후에 70만 리터의 석유가 소코 촌의 판자집들이 들어 서 있는 습지로 흘러들어 화염이 2분 만에 이곳을 휩쓸어버렸다. 500명 이상의 사람들이 불에 타 숨졌다. 아이들은 열기 때문에 증발해 버렸다. 대한민국의 입법자들 역시 큰 착각을 하고 계신 것 같다. 어쩌면 "대한민국은 아직 재난을 받아들일 여유가 있다"고 큰소리치는 것 같다. 얼마나 더 죽어야 위급한 상황임을 인지할는지 모르겠다.

국민TV라디오 '김진의 시사돌직구' 4월 21일 방송에서, 전 국가홍보처장 김창호씨가 말하길 국가위기관리체계가 MB정권 때 지난 정부의 청산이라는 미명 아래 대부분 사라졌다고 한다. 재난 대책이 끊임없이 퇴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염려된다. 지금 잘못세운 재난 대책은 일시적인 만족감을 줄 뿐이다. 또다시 사건은 발생하고 긴장은 배가 된다.

국민들의 피로감을 가중시키고 싶지 않다면 입법자분들께서 이 글을 읽고 반드시 숙고해주셨으면 한다. 재난은 부메랑과 같다. 완벽히 통제되지 못한 재난은 피라미드의 바닥부터 무너뜨린 뒤 잘못된 재난대책을 세운 입법자에게도 부메랑이 되어 꽂힐 것이다.


태그:#롯데월드, #세월호, #재난원인, #재난대책, #위험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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