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코 오징어녀 리셋! 프리티걸로 재탄생!""AAA컵 가슴 실종녀 관능미 넘치는 S라인으로 변신!""0.1톤 모태 거구녀 서구적 도시 미인으로 변신!"호들갑스러운 이 문구는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1월까지 방영된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미녀의 탄생 : 리셋>(TRENDY, 아래 '리셋')의 방송 안내 문구다. 이 프로그램은 최근 몇 년 사이 꾸준히 인기를 얻은 '메이크오버(Make-Over)' 프로그램 중 하나다. 메이크오버는 말 그대로 변신을 시켜준다는 뜻이다. <리셋> 역시 다음과 같은 슬로건을 내세웠다.
"외모 콤플렉스 때문에 꿈을 포기하려는 여성들에게 각 분야의 전문가 닥터들이 종합 솔루션을 제공하고 자신감을 되찾아주는 본격 메이크오버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외모 때문에 꿈을 포기한다'는 말을 공공연하게 내걸 만큼 한국은 이미 오랜 외모지상주의에 빠져 있다. 외모에 대한 강박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공정거래위원회와 국제미용성형수술협회의 2011년 자료 따르면 한국은 전 세계 성형시장의 4분의 1을 차지하고, 인구 천 명당 성형수술을 받은 사람은 13.5명으로 가장 많다.
이런 세태 속에서 메이크오버 프로그램들은 케이블 채널의 '킬러 콘텐츠'로 자리 잡았다. 지난 2011년에 첫 방영된 <렛미인>(스토리온)은 올해 9월 네 번째 시즌을 마쳤다. <렛미인>은 첫 시즌에서 최고 시청률 1.99%를 기록하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케이블 채널의 시청률이 보통 0%대에 머무는 점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대박'을 친 것이다.
<렛미인>에 이어 비슷한 프로그램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다. 앞서 언급한 <리셋>이 올해 1월 방영을 마쳤고, 지난 9일에는 <도전 미라클>(MBC퀸)이 첫 선을 보였다. 같은 채널의 <소원을 말해봐>는 내년 방송을 위해 출연자를 모집 중이다. 오는 12월에는 <도전 신데렐라>(비욘드동아)가 방영될 예정이다.
"변신시켜 드려요"... 믿어도 될까
"눈, 코, 사각턱 수술을 했어요. 매부리코라 코를 좀 줄이고, 뒤트임을 해서 눈 폭도 넓히고, 원래 있던 쌍꺼풀을 조금 더 자연스럽게 만드는 눈매 교정도 하고. 그런데 코가 삐뚤어진 거예요. 어디서 보느냐에 따라 코 모양이 달라요. 하지만 방송을 통해 무료로 수술을 받은 거라 재수술 해달라고 말을 할 수 없었어요."12일 한국여성민우회가 지난 6월~8월 동안 메이크오버 프로그램을 집중 모니터한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나온 인터뷰 내용이다. 메이크오버 프로그램을 통해 성형수술을 받았다는 이 여성의 말을 보면 그들이 내건 '인생역전' 등의 구호가 무색해 보인다. 결국 해당 여성의 얼굴은 전파를 타지 못했다.
실제 메이크오버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스태프도 같은 발표 자료에서 "크고 작은 부작용이 있지만 그런 부분은 방송에 내보내지 않는다"고 전했다.
남윤인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지난 10월 내놓은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성형외과 의료분쟁 상담건수는 2012년 444건에서 2013년 731건으로 64.6% 증가했다. 또한 의료분쟁 조정 신청도 2012년 71건에서 2013년 110건으로 크게 늘었다. 하지만 "놀라운 변신", "재탄생" 등 성형수술의 좋은 점만 부각시키는 메이크오버 프로그램의 호황 속에서 이런 사실은 좀처럼 알려지지 않았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규정에 따라 이들 프로그램도 성형수술의 위험성과 부작용을 시청자에게 알리긴 한다. 하지만 "성형수술은 부작용에 대한 위험이 있습니다, 본 수술은 출연자에게 부작용 및 위험성에 대한 내용 고지 후 전문의와 충분한 상담으로 결정되었습니다"(<렛미인4>), "본 수술은 출연자와 보호자에게 부작용 및 위험성에 대한 내용 고지 및 전문가와 출연자 간의 충분한 상담을 거친 뒤 진행되었습니다"(<리셋>)라는 자막을 2~3회에 걸쳐 내보낼 뿐이다.
'외계인녀' '노안 꽃거지녀'... 부정적 표현으로 성형수술 부추겨
출연자의 외모를 혐오하는 듯한 자막을 사용하며 성형수술을 부추기는 일도 문제다. '굴곡진 얼굴 노안 꽃거지녀'(<리셋> 4회), '팔각형 얼굴 외계인녀'(<리셋> 10회), '심각한 부정교합과 매섭고 사나운 인상'(<렛미인4> 4회), '남자의 각진 윤곽과 우울한 인상'(<렛미인4> 2회) 등 출연자의 과거 외모에 부정적 수사를 매회 붙이며 이를 반드시 고쳐야만 하는 '비정상인 것'으로 낙인을 찍기 때문이다.
이윤소 한국여성민우회 활동가는 "성형수술 전의 외모를 두고는 '거친', '늙어버린', '심각한' 등 부정적으로 묘사하면서 메이크오버 후에는 '우아', '도도', '세련' 등으로 표현해 성형수술의 긍정적 효과만 부각시킨다"며 "이런 내용을 방송을 통해 반복적으로 전달하면서 많은 여성들이 외모 관리에 뛰어들도록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외모차별을 조장하는 언어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징계 대상이다.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21조(인권 보호) 3항'에는 "방송은 정신적·신체적 차이 또는 학력·재력 등을 조롱의 대상으로 취급하여서는 안 되며, 부정적이거나 열등한 대상으로 다뤄서는 안 된다"고 규정했다. 실제로 지난 8월 방심위는 위 조항에 근거해 <리셋>과 <렛미인4>에게 각각 경고와 주의 조치를 내렸다.
이 자리에서 이 활동가는 "메이크오버 프로그램은 성형외과가 방송을 통해 광고 효과를 누리려는 사례가 다수"라며 "(전문 의료 지식이 없는) 시청자가 이런 방송을 통해 과장된 정보를 얻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이어 "의사가 출연하는 방송에는 전문의·비전문의 표기를 명확하게 하고, 의료 사고를 낸 의사는 출연하지 못하게 하는 등 제작 가이드라인 마련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같은 자리에 패널로 참석한 김선웅 대한성형외과의사회 법제이사는 "수술이 잘못되어도 환자가 의사에게 책임을 묻기 어려운 구조 속에서 방송이 '인생이 바뀐다'는 식으로 소비자를 현혹해서는 안 된다"며 "(방송과 광고에서는) 해당 의사가 전문의인지 아닌지, 의사 면허는 언제 취득했는지, 병원 위치는 어딘지 등 검증된 정보만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기용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유료방송심의2팀 차장은 "심의규정에 따라 의료 시술을 과신하게 만드는 단정적 표현이나, 인권을 침해한 방송에 대해서는 심의 후에 징계를 내리고 있다"며 "다만 방심위는 방송된 내용만을 가지고 사후심의를 하기 때문에 의사 자격이나 병원 선정 과정 등을 조사할 권한이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