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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경기도 평택에 있는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앞에서 '쌍용차 투쟁 2000일 승리를 위한 결의대회'가 열렸습니다. 이 글은 이날 문화제에서 낭독된 탁이미정씨의 편지입니다. 탁이미정씨는 지난 2011년 5월부터 현재까지 쌍용차 해고노동자들과 함께해온 '연대 시민'입니다. [편집자말]
10월 25일 저녁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고동민의 전화 한 통으로 시작된 저의 고민이 오늘로서 20일이 넘어갑니다. 왜 동민이는 제게 이 발언을 부탁한 걸까요? 연대하는 이들도 많은데 왜 하필 제게 부탁을 한 걸까요? 머리가 복잡하고 마음도 복잡해지고 과연 '2000일'이라는 무게 앞에 제가 나서서 뭘 얘기할 수 있을까요? 더군다나 인정할 수 없는 대법원의 판결 후에 이 자리에서 어떤 말을 해야 할 지 어젯밤 12시가 지나서도 저는 단 한 글자도 적지 못했습니다.

'힘내라'는 말은 못 하겠습니다. 6년의 싸움 중에 4년을 지켜본 저로서는 차마 더 힘을 내서 싸우라는 말은 할 수 없었습니다. 그 싸움의 과정을 함께하는 것조차도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 자리에 있습니다. 또다시 끝까지 함께 하겠다는 약속을 온 마음과, 온 영혼과, 온몸에 새겨 넣으며 이 자리에 서 있습니다.

끝까지 함께 하겠다는 약속을 깬다고 감옥을 가는 것도 아닌데, 왜 저는 이 약속을 지키려고 많은 시간과 노력과 열정을 쏟은 것일까요? 이 자리에 서게 하는 힘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제 자신에게 여러분에게 곰곰이 물어봅니다.

내가 쌍용차 해고노동자 투쟁을 지지하는 이유

쌍용자동차 정리해고무효소송이 원심판결파기환송 선고가 난 지난 13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입장을 발표를 마친 이창근 정잭기획 실장이아들과 뽀뽀를 하고 있다. 옆에 있던 부인 이자영씨는 두 사람을 향해 "주강아, 아빠 이제 집에 더 못들어 오실거야. 더 싸워야 하니까"고 말했다.
 쌍용자동차 정리해고무효소송이 원심판결파기환송 선고가 난 지난 13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입장을 발표를 마친 이창근 정잭기획 실장이아들과 뽀뽀를 하고 있다. 옆에 있던 부인 이자영씨는 두 사람을 향해 "주강아, 아빠 이제 집에 더 못들어 오실거야. 더 싸워야 하니까"고 말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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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다시 돌아가봅니다. 저의 첫 발을 두 번째, 세 번째, 매주, 멈추지 않고 오게 만든 이는 쌍용차 동지들도, 와락(쌍용차 해고노동자와 가족들을 위한 심리치유공간)의 엄마들도 아니었습니다. 세상의 관심을 끊고 지냈던 저를 평택으로 매주 오게 만든 이는 바로 아이들이었습니다.

로봇을 갖고 싶다는 득중형(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의 둘째 아들 건엽이의 손을 잡고 평택 시청을 몇 바퀴나 산책했던 그 첫날의 기억, 그 손을 또 잡고 싶어서였고. 엄마 아빠에게 떨어지지 않으려는 동민의 막내 아들 가온이를 떼어서 내가 아이의 엄마라는 걸 증명하겠다는 오기가 생겨서였고. 모든 봉사자들의 인기를 독차지 하고 있던 창근이(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정책기획실장)의 아들 주강이에게 나도 뽀뽀 한 번은 꼭 받아보고 싶은 희망 때문이었고. 내 아들 녀석과 같은 또래라 더 정이 많이 가는 희선이, 세민이, 은혜, 민희, 선택이와 한마디라도 더 나누고 들어주려면 이곳에 와야 했습니다.

엄마가 그리울 상현이와 석현이도 한 번씩 안아줘야 했고, 우리 이쁜 민주, 민중이랑도 놀고 싶었고, 사총사 놀이를 하는 세민이, 이든이, 태경이, 주강이에게 오총사로 껴달라고 졸라서 꼭 그 무리에 들어가고 싶었습니다. 섬기, 솔비, 다빈이, 다인이, 내린이, 재원이, 은서까지…. 전 사실 한 아이의 엄마였지만, 엄마로서 아들을 이해하고 놀아주는 그런 엄마가 아니었습니다.

이곳에서 아이들과 '함께' 놀면서 '아~, 아이들은 다 이렇구나, 아이들은 이런 걸 좋아하는구나, 아이들과는 이렇게 놀아줘야 어른이라는 계급장을 떼고 친구로 받아주는구나'를 배웠습니다. 우리 쌍용차의 아이들이 저의 놀이 선생님이었습니다. 쌍용차 아이들과 놀면서 전 비로소 아들을 이해하고 아들과 놀아주는 엄마로 변할 수 있었습니다.

이젠 (아이들이) 가끔 본다고 기억나지 않는다며 타박하는 지경에 와 있지만, 그래도 난 평생 너희들을 기억하고 언제나 감사하며, 사랑한단다. 엄마 아빠가 너희들에게 함부로 하면 이 이모에게 이르렴. 이 이모가 엄마 아빠를 제대로 혼내줄 테니까 말이야. 언제든 서울 오면 이모네 연락하고 놀러와. 너희들은 이 이모의 스승이고 은인이란다. 이모는 너희에게 큰 빚을 지고 있어. 평생 갚으며 살고 싶어. 고마워.

해고노동자들과 함께한 '와락'

어느 날 밤이었습니다. 트위터의 타임라인에 난리가 났었습니다. 유성이라는 기업에 용역과 공권력이 투입돼 쌍용차 아빠(노조원)들이 왕창 갔다며, 밤새 걱정하는 트윗을 날리는 엄마들과 '함께' 저도 덩달아 밤을 새우며 결사투쟁이 뭔지도 모르고 결사적으로 트윗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제 본래의 트위터 계정은 새로 나온 책이나 소개하며 지인들과 잡담을 주로 하는 용도로 쓰였는데, 그날 이후 제 트위터는 전투모드로 새롭게, 가열차게 단장하게 됩니다.

우린 그날 결연한 의지로 전대미문이라는 '미모'를 앞세운 투쟁단체를 결성하게 됩니다. 권지영(쌍용차 해고노동자 가족)을 대장으로 한 이 단체는 그 이후 세력을 무한 확장하며 한동안 트위터 세상을 호령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당시 멤버들로는 이정아, 조은영, 이자영, 전은숙, 박미희, 김정숙, 송정숙, 남미경, 설경애, 송명숙, 김혜숙 등이 있습니다. 난 정말 자기들의 미모에 빠져서 여기까지 온 거야. 해숙 언니, 영희 언니 그렇게 자꾸 동안 미모 유지하시니까 암 걱정 없는 줄 알고 정우형, 상균형이 저렇게 독하게 투쟁하시는 거 아녜요?

우리 와락 엄마들의 미모가 조금만 빠졌어도 저 오늘 이 자리까지 오지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그대들의 미모에 찬미와 칭송을 드립니다. 저는 감히 절대로 못 견뎠을 겁니다. 가정을 지켜내지도, 가장을 지지하지도, 또 나 자신조차 지켜내지 못했을 겁니다. 이 세상 누구보다 당신들을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가정을 지켜내는 것이 무엇인지, 삶을 견뎌내는 것이 무엇인지, 제게 몸소 보여주고, 가르쳐준 당신들을 평생 스승으로 은인으로 받들어 모실 겁니다. 고맙습니다.

쌍용차 동지들이 떠나간 뒤... 일상이 바뀌었습니다

매주 만나도 그저 눈인사와 함께 꾸벅 목례만 하던 사이였는데 어느 날은 가온이를 보고 있는 내 옆에 불쑥 앉더니 동민이가 고민을 털어놓습니다. 으음…. 우리가 이런 고민을 털어놓아도 되는 사이였나? 갑자기 어쩔 줄 모르는 내게 동민이는 스스럼없이 다가와 '해고된 노동자'를 다시 보게 만듭니다.

그래서 전 쌍차가 궁금해집니다. 왜 해고됐는지가 궁금했습니다. 이렇게 가정적이고 착하고 열정적인 사람이 왜 해고됐지? 이들은 왜 다른 회사를 취직하지 않고 이렇게 몇 년째 싸우고 있는지가 몹시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공부하게 되고, 외면하고 싶었던 고통스러운 진실과 대면하게 됩니다.

서울에 무슨 투쟁에 온다며 쌍용차 동지들이 서울 왔다고 저녁 번개가 소집되고, 뭔지도 모르고 집회 뒷자리에서 얼떨결에 참여하게 됩니다. 어느 날부터인가 창근이는 자기가 기획한 투쟁이라며 우리의 참여를 종용합니다. 주강이 아빠고, 자영이 남편이니, 뭐 나쁜 사람은 아닐 거야. 참여하라는 대로 뭔지도 모르고 막 참여합니다. 그러다 한진(중공업)도 가고, 재능(교육)도 가고, 콜트콜텍도 가고, 중외제약도 가고, 현차비(현대차 비정규직지회)도 가고, 심지어 노동자대회도 가고, 희망버스도 닥치는 대로 타고…. 아, 정말 잘나가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 와중에 쌍용차의 노동자들은 한 달이 멀다 하고 떠나갑니다. 그러다가 굳게 믿었던 투쟁 동지가 떠나간 날 결국 쌍용차 동지들은 대한문에 옵니다. 살이 떨리고 치가 떨리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못 보던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웃는 모습이 마냥 귀여운 우리 기주형, 곰돌이 푸 성진이, 자상하고 얌전한 미소의 현준이형, 맥가이버 같은 충열이형….

이젠 점점 더 쌍차 동지들과 거의 매일 만나게 됩니다. 리더십이 하루하루 다르게 성장해가는 든든한 정우형, 얼굴 뜯어 먹고 살 것도 아닌데 쌍차에는 뭐 이렇게 잘 생긴 아빠들이 많은지 남섭, 득중이형, 기민이, 정욱, 정수. 또 친구 정운이도 사실 빠지지 않습니다. 정운이와 남국이형은 제게 남자의 의리가 뭔지 확실하게 보여준 '상남자'들입니다. 지금 제 머리는 원래 기성이를 모델로 했는데 아쉽게도 밀어버리고, 피부는 누가 뭐래도 우리 제선이를 모델로 삼고 있습니다.

만날 때마다 오히려 늘 저를 토닥거려주시는 윤수형, 웃는 모습이 매력적인 맹섭, 애교 작렬인 남오와 호민이 참 귀여운 동생들이 생겼습니다. 언제나 나를 이쁘다, 좋은 사람이다 칭찬을 아끼지 않으시는 수경이형,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고 묵묵히 해내시는 인석이형, 우리 아들과 붙여 놓으면 밤을 샐 것 같은 자동차광 대용이, 대한문의 빈틈을 꽉꽉 채워 주셨던 정만이형, 여성 연대자들에게 최고의 친절을 베푸시는 상구형, 무뚝뚝할 것 같은데 한 번의 미소로 사람을 편안하게 만드는 주헌이, 우리 아직 서로 인사만 나누는 사인데 좀 더 친해지길 바라는 형구 동지.

예쁜 딸이 마냥 부러운 석천씨. 참한 일꾼 진영이, 호탕한 내 친구 갑호. 무대뽀 같으실 것 같은데 완전 논리적인 형근이형. 참 궁금했던 사람이었는데 나오시자마자 저 높은 곳에서 절 펑펑 울게 만드신 상균이형. 쌍용차 가족들에게 내가 얼마나 빚을 지고 사는지를 일깨워준 성국씨와 영휘형. 쉐프 신동기와 광수형, 저의 트윗 제자인 상영씨, 내 친구 석문이와 경호도 기억합니다.

그렇게 쌍차 동지들은 제 일상이 돼갑니다. 제가 원래 어떤 사람이냐 하면 업계에서는 한 성질 하는 무서운 사람이고, 별로 착하지 않은 딱히 좋은 사람은 아닌, 일밖에 모르는 재미 없는 그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사람 안 바뀝니다. '사람 바뀌면 죽는다, 죽기 전에서야 철든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쌍용차 동지들은 제 안에 있는 '선함'을 모두 끄집어내게 한 사람들입니다.

내일이 있는 한 '함께' 갈 것입니다

그래서 이젠 참 착하다는 소리 꽤나 듣고 삽니다. 심지어 좋은 사람이라는 소리도 듣습니다. 사회에 관심 없던 저를 일각에서는 전문시위꾼이 아니냐라고 할 정도의 투사로 만들어놨습니다. 노동은 무슨 이유인지 하찮고, 뭔가 거부감이 드는 단어였던 저였습니다. 하지만 이제 제 최종 학력은 노동대학입니다. 제게 노동은 이제 가장 선하고, 우리 인간이 갖고 있는 본질이라는 것을 잘 아는 사람이 됐습니다.

우리가 '함께'한 지난 시간은 제 인생을 통틀어 장족의 발전과 최고의 성장을 거듭한 시간이었습니다. 한 사람을 이렇게까지 바꿔 놓은 여러분! 이렇게 한 사람, 한 사람, 또 한 사람…. 그대들은 이렇게 세상을 바꿔가고 계십니다. 그대들이 바꿔놓은 지금의 제가 아주 마음에 듭니다. 여러분들이 바꿔가고 있는 세상이 그래서 아직은 살만합니다. 고맙습니다.

글을 쓰다 보니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고동민이 내게 전화한 이유가, 저를 이 자리에 세워 놓으려고 했던 이유가 뭔지 알 것 같습니다. 인간 같지 않은 인간 한 명을 자기들이 제대로 그 동안 바꿔놨다고 자랑을 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사람을 바꾼다는 것, 이건 정말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 불가능한 일을 우리 쌍용차 동지들은 해내고 있습니다.

이제 그대들은 절 이렇게 바꿔놨으니 책임지셔야 합니다. 도망가시면 안됩니다. 지난 4년은 우리 추억의 큰 장이 됐고, 지금의 우리는 서로의 일상 그 자체입니다. 그리고 미래의 우리는 동반자입니다. 내일도, 내일도, 또 내일도….

내일이 있는 한 우리는 '함께' 갈 것입니다. 쌍용차 동지들! 제가 여러분의 동지라는 것이, 여러분과 '함께'하고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지금의 제가 자랑스럽습니다. 여러분이 자랑스럽습니다. 어떤 모습을 하고 있든 어떤 일을 해나가든 우린 '함께'입니다. 사랑합니다.


태그:#쌍용자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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