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정부는 지난 9월 19일 200만명의 반대서명과 70% 이상의 반대여론을 무시하고, 4차 투자활성화 계획 중 병원 부대사업 전면 확대와 영리자회사 허용을 각각 의료법 시행규칙과 가이드라인으로 강행하였다.
컴퓨터·화상통신 등을 이용해 멀리 떨어진 지역의 환자를 돌보는 방식인 원격의료 시범사업 또한 10월부터 시행함으로써 의료영리화에 본격 시동을 걸었다. 정부는 9개 시군구의 11개 의료기관과 교정시설 2곳에서 6개월간 진행되는 시범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당시 대한의사협회는 '졸속 추진'이라며 사업 참여를 거부하였고, 결국 정부 단독으로 시범사업을 시작하여 '반쪽짜리 시범사업'이라는 비난을 피하지 못했다.
정부의 원격의료 시범사업 추진과 의사들의 반대현행 의료법에는 의사-의료인간 원격의료만을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의사-환자간 원격의료를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정부 제출)'이 현재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계류중이다.
최근 정부 여당은 금년 정기국회시 꼭 통과를 추진하려는 법안 9개를 공표하였는데, 그 주요 9개 법안 중 하나가 바로 원격의료 법안이었다. 정부는 소외 지역의 만성질환자를 위해 원격의료는 꼭 필요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번 시범사업에 투입되는 보건복지부 총 예산은 약 15억 정도. 30만~50만 원인 환자 개인 장비와 500만 원 가량인 의료진 장비는 모두 보건복지부가 지원한다. 시범사업 참여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1200여명이 원격모니터링 사업 대상이며 본인의 동의를 거쳐 실시된다. 정부는 임상 및 임상시험 통계 등 방법론 전문가 10인 내외로 구성된 평가위원회를 통해 정보보안 등의 안전성, 유효성 등에 대해서도 평가할 것이라 밝혔다.
이러한 원격의료 시범사업에 대한 대한의사협회의 우려가 높았다. 지난 8월 18일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가 의사 회원을 대상으로 원격의료를 놓고 찬반 설문을 실시한 결과, 95.22%(6053명)가 반대표를 던졌다. 또한 9월 17일 대한의사협회는 '보건복지부 의사-환자간 원격의료 시범사업 강행 발표'에 대한 입장까지 내놨다. 이들은 단기로 진행되는 시범사업에 따른 문제와 원격의료 장비의 안전성 및 보안성, 원격의료 장비에 따른 비용 부담문제 등을 이유로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보건복지부는 또한 시범사업에 참여하는 의료기관들과 관련된 의료인들의 소재지 및 신분은 비밀로 한다며 세부적인 기획안 또한 자세히 밝히지 않아 더 납득할 수 없는 면이 많았다. 이런데도 시범사업은 정부 단독으로 시작되었다.
원격진료 시범사업이 한 달여 이상 진행된 현재 많은 문제점이 표출되고 있다. 지난 11월 10일 청년의사 보도에 따르면, 경북 영양 소재 보건소의 경우 10월 22일까지도 장비가 소량만 지원되거나 인력을 확보했음에도 복지부에서 승인을 해주지 않아 한 달째 기다리기만 하는 등의 지원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설령 활용장비가 충분히 갖춰진다 하더라도 60대 이상의 노인들이 스마트 기기를 무리 없이 사용할 수 있게 교육하려면 굉장히 많은 시간을 소요해야 할 것이라는 의문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또 지난 10월 31일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그 달 말일까지도 환자모집만을 진행 중인 보건소도 있다고 밝혔다.
사실 과거 이명박정부 시절에도 원격의료 시범사업은 진행된 적 있다. 지난 3월 프레시안 보도에 따르면, 기획재정부(산업통상자원부)는 2010년부터 2013년까지 '스마트케어 시범 서비스'라는 이름으로 원격 의료 시범사업을 진행하였다. 대기업들과 대형병원들이 참여하고 무려 355억 원을 들여 야심차게 추진했던 이 사업은 결론적으로 실패했다. 원격 진료가 기존 대면 진료보다 안전성, 효과성, 경제성이 있다고 입증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렇게 허술한 원격의료가 반드시 처리되어야 할 이유라도 있는 걸까?
세계적으로도 원격의료가 시행되고 있는 나라는 방글라데시나 인도네시아처럼 아주 가난한 무의촌인 섬 등이거나 미국 알래스카 극지 등 특수한 지역들이다. 그러나 언론보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의료접근성은 캐나다, 호주, 러시아 등의 약 100배, 미국의 30배, 핀란드의 30배 수준이다.
심지어 일부 선진국에서 시행된 바 있는 원격의료는 공공의료의 기본적 인프라가 잘 갖추어진 상태에서 보조적인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를 수백만 명을 대상으로 한 전면적인 진료 행위로 도입하려 하고 있다. 그보다 공공의료 강화가 우선이 되어야 한다. 원격의료는 그 이후에 생각하는 게 맞다.
사실 단순하게 봐도 원격진료는 딱히 필요가 없다. 정부가 원격진료 도입을 추진하면서 첫 번째로 내세운 명분이 의료사각지대의 해소였다. 섬 지역에 사는 연세가 많거나 거동이 불편한 분들이 원격진료를 통해 뭍으로 나오는 번거로움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노년층은 컴퓨터 등 스마트기기 사용에 익숙하지 않아 원활한 의사소통 자체가 어려울 수 있고, 오진의 위험성도 무시할 수 없다.
결국 50만 원 이상의 개인기기를 사고도 스마트폰 사용이 어려우면 뭍으로 나와야 하는 번거로움을 다시 겪어야 한다. 스마트 기기를 사용해 원격으로 진료를 해준다는 호기심에서 나온 발상이 기업에게 돈을 퍼주는 동시에 오히려 의료산업의 발전을 저해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 지금 필요한 것은 복잡한 원격의료가 아니라 기본적인 의료접근권을 향상시킬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다.
재벌용 사업 원격의료보다 공공의료 먼저 강화해야
원격의료 확대의 필요성은 오히려 재벌들의 부 축적에 있어 보인다. 바로 원격의료 확대를 추진하는 배경에 지식경제부의 '유헬스(Uniquitous Health care: 의료와 IT를 접목한 원격진료 시스템) 신산업 창출 전략'이 있기 때문이다.
정보통신기술과 의료를 융합·접목해 새로운 이윤을 창출하겠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지난 4월 원격진료를 허용하는 의료법 일부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고 얼마 뒤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 "의료산업은 스마트폰을 대체하는 삼성의 새로운 먹거리다"라고 공식 선언하였다. 정부의 의료 정책이 재벌용이 아닌지에 대한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다.
이처럼 유헬스는 특히 삼성·현대·LG·SK 등 재벌들이 새로운 사업 분야로 주목하며 열을 올리고 있다. 삼성서울병원, 서울아산병원, 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 서울성모병원 등 이른바 국내 '빅5' 병원들도 모두 유헬스 사업에 뛰어들었다.
재벌들은 '유헬스가 도입되면 병원에 직접 가지 않아도 질병관리를 할 수 있다'며 소비자 편익을 내세웠지만 실상은 '소비자 편익'과 거리가 멀어 보인다. 기업들이 검증도 안 된 새로운 가정용 의료기기를 판매하고, 더하여 개인질병정보를 수집하거나 공유하는 것이 이들이 목표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의사-환자 사이의 원격진료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대상의 의료문제는 공공의료 강화로 해결할 수 있다. 방문건강관리사업을 활성화 하고, 병의원이 없는 농어촌지역 보건소 등에 의료인력을 더 많이 배치하는 등의 방법이 구현되어 산간지역에 살거나 몸이 불편한 사람들에게 1:1대면 진료를 보장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차라리 원격의료를 운영할 돈으로 산간 지역에 우선 공공의료원을 더 짓는 것이 국민의 건강에 도움이 될 것이다.
정부는 의사들이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을 위한 진료가 아닌 사람을 위한 진료를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안전성이 증명되지 않아 국민들의 건강을 해칠 위험이 있는 원격의료 법안의 추진을 멈추고, 그에 앞서 공공의료 강화로 국민들의 건강을 보장해 주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윤미연 진보정책연구원 복지전문 연구원입니다.
이 기사는 진보정책연구원 홈페이지(www.uppi.or.kr)에도 게재되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