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이 웃통을 풀어헤치면 짜장 등장하는 잘 조각된 왕자(王字) 근육 그래서 더 열광했던 드라마가 있다. KBS2 TV로 방영되었던 <추노>(연출 곽정환)가 그것이다. 추노꾼 장혁(이대길 역)이 맘껏 매력을 발산했던 드라마가 아닌가 싶다.
어느 날 자기 집 사노비 큰놈이가 집에 불을 지르고 도망가는 바람에 온가족이 죽고 혼자 살아남았다. 도망간 큰놈이와 그의 누이 언년이를 잡기 위해 팔도를 떠돌아다닌다. 평소 언년이를 마음에 두었던 터라 큰놈이를 잡으면 언년이를 볼 수 있다는 애틋함을 늘 가슴에 품고 있다.
노비추쇄, 잡히면 인두로 지지고 송곳으로 뚫고...복수심과 애틋함 사이 그 어디쯤에 추노꾼의 마음자리가 있다. 대길은 어느새 조선 최고의 추노꾼이 되어 있었다. 대길은 도망간 노비들은 다 잡아서 원래대로 돌려놔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충만하다. 그러나 번민도 만만치 않다.
"귀한 목숨 어찌 죽일까. 죽으면 고기값도 못하는 게 노비인 것을"이 말이 그 마음자리를 대변한다. <추노>는 '소지(所志)'라는 문서에 근거한다. '소지'는 세종 18년(1436년)에 일가족과 함께 달아난 여노비 '몰개(毛乙介, 모을개)'의 일가족 네 명을 찾아달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드라마는 사실보다는 흥미 위주의 논픽션이었다.
추노(推奴) 이야기를 포함한 조선시대의 노비에 대한 절절한 기록이 있다. 역사 저술가 이상각이 쓴 <조선노비열전>이 그것이다. 말 한 마리로 두 명을 살 수 있었던 게 조선시대 노비이다. 혹 잘못을 저지르면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구타와 모지락스런 고문, 참형, 교수형, 장형, 유형 등이다. 노비는 법률로 전혀 보호받지 못하는 존재였다.
노비가 도망가면 '추쇄(推刷)'를 하게 되는데 도망간 노비를 붙잡는 일은 정부가 관장했다. 1655년(효종 6년)에는 노비추쇄도감을 만들어 각도의 어사들로 하여금 도망 노비를 잡아들이라는 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도망갔던 노비가 잡히면 극형이 기다렸다.
"성종 때 유효손이란 자는 도망간 여종을 잡아다 쇠를 달구어 근육을 지지고 왼쪽 발뒤꿈치를 송곳으로 뚫은 뒤 삼끈으로 꿰어 묶어 놓았다. 그 과정에서 양반에게 저항하는 노비들에게는 관청의 엄한 처벌이 뒤따랐다."(288쪽)노비는 아니지만 노비 같은 사람들이 오늘날도 있다. 일자리를 찾고 있지만 일할 곳이 없는 사람들, 아마 노비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비정규직은 또 어떨까. 그들의 삶은 '수퍼 갑'으로 명명된 이들을 주인으로 잘 모시지 않으면 영락없는 추락이 기다린다. 다른 형태의 현대판 노예다.
노비의 사랑과 애국, 양반 못지않다
마소만도 못했던, 인간이나 인간이 아니었던 노비들의 이야기는 처절하리만치 현실적이다. 사람 취급을 받을 수 없는 게 그들의 현실이었다. 그렇다고 사랑하지 못하도록 만들어진 건 아니어서 그들의 아픈 사랑은 구구절절이 마음을 헤집는다.
마음 속 그리운 정 말로는 다할 수 없어 밤새 생각다보니 머리카락 반이나 세었구나.신첩의 괴로워하는 이 심정 아시려거든금가락지 헐거워진 이 손가락을 보옵소서.(<규원>, 329쪽)조선 선조 때 이매창이 연인 유희경을 그리워하며 지은 시다. 유희경은 천민 출신이지만 예학을 익혀 양주목사까지 지냈다. 시문에도 탁월해 <침류대시첩>을 이수광 등과 함께 쓰기도 했다. 후에 천민 신분을 벗었지만 임훈 집안의 노비였다. 허균이 <성수시화>에서 "유희경이란 자는 천한 노비다. 그러나 사람됨이 맑고 신중하며"라고 쓰고 있다.
1591년 부안 기생 이매창과 이희경이 만났다. 둘의 로맨스는 그들의 시에서 절절하다. 유희경은 이매창을 선녀, 양귀비로 비유했다. 그러나 임진왜란이 그들을 지리적으로 갈라놓았지만 사랑은 그칠 줄 몰랐다. 천민 노비, 그는 사랑할 줄 아는 인간이었다.
책은 여러 노비들의 이야기를 절절히 그린다. 연산군 때의 관노로 시문에 뛰어난 어무적, 종놈으로 왔다 시인으로 떠난 이단전, 조선이 시작되면서 왕궁이니 왕묘를 건설했던 토목건축의 대가 박자청, 광해군과 인조의 수호천사로 자신을 '소소인'이라고 낮춘 정충신, 허준이 인정한 침술의 대가 허임, 유명한 풍수지리가 목효지가 있다.
북방 전문가이며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조상인 반석평도 있다. 세계인의 수장이 되어 바쁘게 뛰고 있는 대한민국이 낳은 인물, 차기 주자로 이름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 조선시대 개념으로는 천민 출신이다. 북방의 전문가 집안에서 세계의 전문가를 배출한 것이다.
울릉도에 나타난 대마도의 일본인들을 물리친 무관 안용복도 있다. 그는 "우리가 언제까지 왜놈들의 눈치를 봐야 한단 말이냐. 나와 함께 울릉도로 가서 저들의 버릇을 고쳐놓지 않겠는가?"(156쪽)라며 그들을 물리쳤다. 결국 일본은 울릉도와 독도를 우리 땅으로 인정했다.
그런데 요즘 박근혜 정부는 독도 입도지원시설 건설을 전면 백지화했다. 대일관계 개선을 의식해 일본여론을 자극하는 것을 피하려고 한 판단으로 보인다. "저들의 버릇을 고쳐야 한다"고 큰소리치던 노비의 말이 대한민국 정부에 의해 "저들의 눈치를 봐야 한다"로 바뀌고 말았다. 지하에서 조선의 노비 안용복도 웃을 일이다.
'사랑하게 해주세요'... 반가 이씨와 노비 사방지의 사랑노비와 관련된 스캔들 하면 사방지 이야기가 으뜸이다. 유감동, 어우동과 함께 장안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가 바로 사방지다. 선비 김구석의 아내 이씨와 노비 사방지의 간통사건은 왕조차 들춰내기 부끄러운 스캔들이었다.
책에 따르면 사방지는 세종의 부마인 안맹담 집안의 사노비였다. 그런데 남성과 여성의 성기를 함께 지닌 음양인이었다. '남녀추니' 혹은 '어지자지', '고녀', '반음양'이라고도 한다. 유전적으로는 여성이지만 외부 생식기는 남성의 형태를 지녔다.
사방지의 어머니는 이를 숨기고 여장을 시켜 키웠다. 겉으로는 바느질을 잘하는 여자 노비였다. 장영실과 함께 활동하던 과학자 이순지의 딸 이씨와 사방지의 만남은 여주인과 침모의 관계로 시작되었다. 이씨가 과부가 되면서 이들은 15여년을 부부로 살았다. 결국, 이들 관계는 세상에 들통 났다. 세조는 아버지 이순지에게 사건을 잘 처리하도록 맡겼지만 딸은 아버지 말도 듣지 않았다. 저자는 이렇게 썼다.
"그녀는 가족들의 반대와 세간의 눈총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사방지를 받들었다. 실로 사랑에는 국경도 없고 신분도 없었다."(305쪽)맞다. 사랑에 무슨 국경과 신분이 있겠는가. 후에 "음양인인 사방지를 사람으로 여기지 말라"는 세조의 엄명이 떨어져 사람이 아닌 사람이 되었다. 후에 관노가 되고 '병에 걸린 사람'으로 남았다. 이후 이씨 집안은 다른 양반가에게 왕따를 당하는 신세가 되었다.
요즘 같으면 음양인이 뭔 문제가 되겠는가. 동성결혼이 입에 오르내리고 차별금지법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데 말이다. 노비로서 마소만도 못한 대접도 아픈데 사랑도 맘대로 못하였으니 그들은 시대를 탓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노비들의 모진 삶과 거침이 많은 사랑과 굴곡진 죽음이 책에서 다 표현되고 있진 못하다. 실은 이 책을 펼치기 전에 밑바닥 노비의 삶이 어떠했을까를 기대했다. 그러나 책은 고문서 자료들을 기반으로 엮어졌다. 그리하여 기록을 남기지 못한 노비들의 진짜 밑바닥 삶을 그리지 못한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덧붙이는 글 | <조선노비열전>(이상각 지음 / 유리창 펴냄 / 2014. 11 / 413쪽 / 2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