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마무리 |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인연- '가연(佳緣)'은 사제(師弟)간이 아닌가 싶다. 왜냐하면 인류 역사와 문화는 사제로 이어왔기 때문이다. 이전에 나는 제자들의 초청을 극도로 자제해 왔는데, 이나마 건강할 때 만나 차담을 나누는 것은 한 훈장으로서 큰 기쁨이요, 아름다운 마무리이리라. - 기자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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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넥타이를 매다
그가 고교를 졸업한지 꼭 30년 만에 그의 모교 교정에서 만났다. 그날은 걔네 동기들 졸업 30주년 모교방문일이라 가벼운 인사만 나누고 다시 만나기로 했다. 그리고 3년이 지난 11월 셋째 주말에야 그 만남이 성사됐다.
그를 만나러 가는 날 아침 나는 와이셔츠를 입고 양복을 입으려다가 넥타이를 매느냐 마느냐로 잠시 망설였다. 그런데 문득 어쩌면 마지막 만남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장 화사한 넥타이를 골라 맸다. 나는 학교를 퇴직한 뒤 강원도로 내려 온 다음 넥타이를 매는 일은 매우 드물었다.
서울로 가고자 원주 역으로 갔더니 청량리 행 열차표는 모두 매진되었다고 했다. 주말이라 그런 모양이었다. 하는 수 없이 입석표로 끊었다. 청량리 역까지 1시간 10분이야 서서 갈 수 있을 테지. 원주 역 플랫폼에서 열차카페 4호차를 탔다. 그런데 거기도 만원으로 자리가 없었다. 나는 별 수 없이 열차카페 객실에 서서 차창 밖을 보고 가는데 전망용 쪽 의자에 앉았던 분이 나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어르신 여기 앉으십시오.""괜찮습니다."내가 사양하자 그는 "저는 곧 내립니다"며 굳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는 그에게 고개 숙여 감사 인사를 드린 뒤 그 의자에 앉아 차창 밖을 보다가 가방에서 홍 교수가 나에게 보낸 그의 저서를 펼쳤다. 홍 교수가 이태 전 내 집으로 우송한 <하인즈 코헛의 자기 심리학 이야기Ⅰ>을 받은 뒤 책을 펼치자 심리학전문서 같아 목차만 살피고는 서가에 꽂아두었다. 그러다가 그를 만나기로 한 뒤 가방에 넣어두고 열차를 타고 가면서 훑어볼 예정이었다.
교지편집위원
그의 저서 <하인즈 코헛의 자기 심리학 이야기Ⅰ>은 나의 선입관과는 달리 그의 유려한 문체로 인간의 근원적인 심리를 아주 자세하게 얘기해 주고 있었다. 특히 제7장 자기애적 격노 편은 현대병을 앓은 이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었다.
그는 고교시절 글을 참 예쁘게 썼다. 그래서 나는 그를 발탁하여 각 대학이나 지구별 백일장 같은 곳에 보냈고, 그러면 그는 꼭 상장을 받아왔다. 나는 또 그를 교지편집위원으로 발탁하여 교지 <우리생활> 15호와 17호를 만들었다. 나는 그가 장차 문인이나 언론인이 되기를 바랐는데 미국 드류대학교(Drew University)에서 상담심리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고, 상담심리학 교수가 되었다.
청량리 행 열차는 양평을 지나면 한강을 끼고 달린다. 나는 예삿날이면 한강을 바라보며 내가 쓰고 있거나 연재 중인 작품 얼개구성을 하기 마련인데, 이날은 홍 교수에게 들려줄 마지막 수업준비를 기자 취재수첩에 그 요점을 하나하나 정리를 했다.
그가 지정한 약속 장소에 5분 전에 이르자, 그는 이미 도착하여 그곳에 기다리다가 택시에서 내린 나를 영접했다. 우리는 점심을 먹으면서 30여 전 그의 학창시절로 돌아갔다.
"자네가 쓴 책을 오늘 열차를 타고 오며 읽어보니까 현대인에게 꼭 필요한 내용이 많이 들어있더군.""읽어주셔서 감사해요."삶과 죽음그 이야기 끝에 우리의 화제는 삶의 근원적인 문제로 돌아갔다. 나는 고교시절 가정사정으로 학교를 중단케 되자 자살 충동을 느껴 알약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다가 한 장애인을 만나고, 자살 후의 일들을 생각하니 나만 바보 같아서 억울해서 죽지 못했다는 얘기를 그에게 했다.
"선생님, 삶과 죽음은 종이 한 장 차이에요. 참, 잘 하셨어요. 그때 사셨기 때문에 저도 선생님에게 배울 수 있었지요."그는 전문상담가로 삶, 죽음 기타 인생의 제 문제들을 아주 명쾌하게 정의해 주었다. 누군가 요즘 현대인들은 정신으로나 육체로나 환자 아닌 사람이 드물다고 했다. 특히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 질환은 더 고치기가 힘이 든다고 이즈음에는 심리상담사가 각광을 받는다고 했다. 아마도 물질의 풍요 속에 빚어진 결과이리라.
우리는 곧 그의 학창시절을 반추했다. 주로 학교교지 <우리생활> 15호, 17호를 편집할 때의 이야기들이었다. 그는 조개탄 난로 옆에서 교정보았던 그때를 재학시절 가장 아름다운 추억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선생님, 요즘도 교지가 나오지요?""아마 중단되었을 거네.""네?"나는 그에게 학교교지가 중단된 이유를 차마 솔직하게 말할 수 없었다. 사실 이즈음의 학교교육은 이전보다 더 후퇴한 느낌이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 인문은 고사(枯死)하고, 온통 부정과 불의와 부패, 반역사적인 짓거리들이 판을 치는 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사회에 나오면 별 쓸모도 없는 것들을 가르치고 배운다고 목을 매고 있는 현실이다. 정작 교사로서 학생지도에 가장 중요한 학생들의 재능계발과 인성지도는 저만치 팽개친 채…. 천민자본이 춤추고 있다.
"그때가 1979년 가을로 생각되는데, 연세대학교에서 전국 고교백일장 대회가 있었는데, 선생님의 인솔로 참가했지요. 아마 그때 제가 시 부문에서 차석을 받았는데, 교과서를 통해 알았던 청록파 시인 박두진 교수의 심사평을 듣고, 그분에게 상장까지 받은 게 평생 가슴 속에 뿌듯하게 남아 있어요.""정말 그때 나도 기뻤다네."그는 내가 오랜 세월로 잊어버린 일까지도 상기시켜 다시 즐겁게 했다. 그 참에 내가 그를 만나고자 한 까닭을 슬며시 토로했다.
"나는 자네의 <하인즈 코헛의 자기 심리학 이야기Ⅰ> 보면서 좀 더 대중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게 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네.""그렇지 않아도 그걸 염두에 두고 애초에 <하인즈 코헛의 자기 심리학 이야기> 'Ⅰ'이라고 제목을 붙였어요. 'Ⅱ'는 보다 더 쉽게 쓰려는데 강의에, 상담에 좀처럼 시간을 내지 못하고 있어요. 아무래도 방학 때 시간을 갖고 차분히 써볼 생각입니다."
마지막 수업솔직히 나는 그가 에밀리 브론테와 같은 작가가 되기를 바랐다. 그런데 그는 자기 전공을 살려 현대인들에게 위안이 되고 삶의 지침서가 될 책을 쓰고 있다. 나는 그런 실용적인 책을 남기는 것도 의미 있는 일로 여겨졌다. 그는 아직 살아갈 날이 많이 남았기에 교직에서 물러난 뒤 본격적인 작가의 길을 걷더라도 늦지 않을 것으로 보였다. 그래서 나는 그날 밥집 종업원이 식기를 치운 그 자리에서 마지막 수업을 시작했다. 쉰이 넘은 대학 교수가 된 제자를 앞에 두고 나는 훈장 티를 버리지 못하고 열차에서 메모한 수첩을 꺼냈다. 그날 내가 그에게 한 마지막 수업의 요지만 이 글에 남긴다.
1. 열정을 가져라.2. 자신감을 가져라.3. 준비를 철저히 하라.4. 겸손 하라.5. 좋은 주제의 글을 쓰라.6.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쓰라.7. 자기감정을 절제하라.……나의 마지막 수업은 한 시간을 넘겼다. 그날 아침 나는 원주 역에서 주말이라 왕복차표를 예매했기에 열차시간이 빠듯했다. 그가 자기 승용차로 청량리 역까지 태워주겠다는 걸 지하철이 더 빠르다고 강남 교대 역 지하철 어귀에서 내렸다. 곧장 지하철로 청량리 역에 가자 16시 13분 안동행 열차가 막 출발한다는 안내방송을 하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박도 실록소설 '들꽃' 연재로 당분간 '가연' 연재는 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