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교육감 시대를 맞아 혁신학교가 확산되고 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올해 혁신학교 55곳을 추가 지정해 내년 혁신학교 100곳을 운영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하지만 11월 혁신학교 공모는 미달됐고, 44곳만 혁신학교로 지정됐다. 기존 혁신학교 3곳은 재지정을 포기했다. 혁신학교의 성과와 함께 파열음도 나오고 있다. 혁신학교 확대에 앞서 질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오마이뉴스>는 혁신학교를 포기한 학교를 찾아, 혁신학교가 나가야 할 길을 모색해볼 예정이다. [편집자말] |
"우리학교가 혁신학교인 걸 모르는 친구들이 많아요."서울 ㄱ중학교 3학년생 민아무개양의 말이다. 민양은 "ㄱ중학교가 이 지역에서 좋은 학교로 통하는데다, 2011년부터 혁신학교로 운영됐다는 사실을 알고 이사해 이 학교에 왔다"면서 "하지만 지난 3년을 돌이켜보면, 혁신학교와 일반 학교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다, 자랑스러운 점이 없다"고 말했다.
ㄱ중학교는 지난 2010년 12월 첫 '서울형 혁신학교'로 선정됐다. 당시 ㄱ중학교를 포함해 초·중·고교 23곳은 혁신학교 실험에 나섰다. 2013년부터 문용린 서울시교육감이 혁신학교 흔들기에 나섰지만, 1기 혁신학교들은 공교육 혁신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이러한 성과들이 진보교육감 시대를 이끌어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1기 혁신학교들은 2015년 혁신학교 지정 만료를 앞두고, 대부분 서울시교육청에 재지정 신청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3곳은 혁신학교 재지정을 포기했다. ㄱ중학교도 이들 학교 중 한 곳이다. 이 학교 교사 A씨는 "4년 전 혁신학교 취지에 동의해서 이 학교에 왔지만, 결국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혁신학교 실험에 실패했다"고 말했다. 이 학교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준비 안 된 상태에서 혁신학교 추진... 그 결과는?2010년 6·2 지방선거에서 사상 첫 진보성향 서울시교육감이 탄생했다. 곽노현 교육감이다. 그의 핵심공약은 혁신학교였다. 이 해 11월 혁신학교 공모가 시작됐다. ㄱ중학교 65명 교사 중에서 교사 B씨가 혁신학교 지정을 추진했다. 하지만 시간이 빠듯한 탓에 준비가 충분하지 못했다.
B씨는 "혁신학교가 정확히 무엇인지 정리하지 못했지만, 다른 교사들에게 혁신학교를 해보자고 설득했다"고 말했다. 과반의 교사가 찬성했다. 교사 C씨는 "혁신학교를 학생 중심의 새로운 수업 방식으로 이해했다, 변화를 통해 아이들과 소통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찬성했다"면서 "하지만 혁신학교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알지 못했다"고 밝혔다. 교사들 사이에 혁신학교에 대한 확고한 공감대가 형성되지 못했다.
혁신학교 첫 해인 2011년, 1억 원이 넘는 예산이 내려왔다. 학교는 교사들의 행정업무를 줄이기 위해 행정지원사를 고용했다. 또한 교사들이 학생 생활지도와 수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1~3학년부를 만드는 등 조직을 개편했다. 하지만 이는 성과로 이어지지 못했다. 적지 않은 교사들이 혁신학교에 의문을 제기한 탓이다.
교사 A씨는 "2011년 처음 이 학교에 왔을 때 혁신학교를 위해 '으쌰으쌰'하는 분위기를 예상했지만 정반대였다, '혁신학교를 하고 싶지 않다'는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혁신학교를 주도하는 쪽은 비전이나 '마스터 플랜'을 제시하지 못하니 상대편을 설득하지 못했다"면서 "반대하는 쪽도 대안 제시는 하지 않고 비판만 했다, 혁신학교 초기에는 싸우기만 했다"고 말했다. 혁신학교에 소극적이던 교장도 손을 놓았다.
수업 혁신을 위한 공개수업이나 협동수업을 위한 'ㄷ'자형 책상배치도 잘 이뤄지지 않았다. 교사 C씨는 "수업혁신을 위해 연수하고 교육을 받았고, 의욕도 있었다"면서 "하지만 실제로 이를 적용하려니 부담이 됐다"고 토로했다. 혁신학교를 주도했던 B씨는 "혁신학교 반대 교사들과 충분한 논의를 했다면 상황이 달라졌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교사 A씨는 교사 사회의 보수성 탓도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ㄱ중학교로 가려고 할 때 주변 교사들은 '혁신학교에는 승진 가산점도 없고 일만 많으니 도움 될 게 없다'고 했다"면서 "혁신을 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현실에 안주하면서 승진만 바라보는 교사들이 적지 않다"고 밝혔다.
예산 때문에 혁신학교? "성과 안 나와"교사들 사이의 대립은 여러 사건으로 더욱 심화됐다. 학생이 교사에게 칼을 들이댄 사건이 발생하자 혁신학교 반대 교사들은 체벌을 없앤 학생인권조례와 혁신학교를 묶어 비판했다. 교사 대립 탓에 학생 생활지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자 학생들이 교실에서 담배를 피우는 일이 벌어졌다. 학부모가 교실을 지켜야 했다.
혁신학교 반대 교사들은 담배를 피우는 학생들에게 '등교 정지 3일' 징계를 내릴 수 있도록 밀어붙였다. 학생 민아무개양은 "학교의 강압에 학교에서 담배 피우는 학생이 사라졌다"면서 "하지만 학교 바깥에서는 여전히 담배를 피운다, 큰 효과가 없었다"고 말했다. 2012년 한 학생이 교사 뒤에서 "존나 짜증나"라는 말을 했다가 '등교 정지 10일' 징계를 받았다. 혁신학교의 중요한 토대인 '민주적인 학교 문화'는 멀어졌다.
결국 혁신학교 가치는 사라지고 예산만 남았다. 교사 A씨는 "교사들은 혁신학교 예산을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해서만 주로 고민했다"고 말했다. 민양은 "혁신학교 초기인 1~2학년 때 도자기 굽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어 재밌었다"면서도 "하지만 돌이켜보면 체계적이지도 않았고 교육적인 고민 하에 나온 프로그램도 많지 않았다"고 전했다.
2013년 보수성향의 문용린 서울시교육감 체제가 들어서고, 올해 혁신학교에 우호적이지 않는 교장이 이 학교로 왔다. 그는 특목고에 학생 몇 명을 보내는지에 더 큰 관심을 두었다. 중간관리자급 교사들도 혁신학교에 큰 신경을 쓰지 않았다. 최근 혁신학교 재공모를 앞두고 교사 투표가 이뤄졌다. 별 다른 평가나 사전 논의조차 없었다. 결국 반대표가 더 많았다.
교사 C씨는 "수업 혁신에 대한 부담이 크기 때문에 반대표가 많았던 것 같다"면서 "혁신학교 예산이 나오지 않으면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이나 상설 동아리를 운영할 수 없기 때문에 안타깝다"고 말했다. 교사 A씨는 "혁신학교 가치를 공유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예산을 받기 위해 혁신학교를 하는 것은 예산 낭비"라고 꼬집었다.
고원초 교사인 방대곤씨는 "ㄱ중학교와 함께 혁신학교 재지정을 포기한 ㄴ초등학교는 당시 교장이 예산 때문에 혁신학교를 추진했고 나머지 교사들은 수동적으로 이를 받아들였다, 큰 성과가 나오지 않았다"면서 "다수 교사들이 혁신학교 가치를 공유하면서 민주적인 학교문화를 만들지 않으면 혁신학교는 지속될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