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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세대 로스쿨 학생 네 명은 경찰의 채증규칙과 무분별한 채증행위가 헌법에 위배된다며 헌법소원을 제출했다. 이들은 직접 작성한 청구서에서 "민주주의 법치국가의 이념에 맞는 공권력 행사의 기준을 확립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밝혔다. 네 명 중 사진 촬영에 응한 세 명(왼쪽부터 김민후, 김혜공, 이종훈씨)이 헌법소원 청구서를 들고 있다. 이들은 채증의 개인정보자기결정권과 초상권 침해를 상징하는 의미로 얼굴의 일부를 가리는 모습으로 촬영에 동의했다.
연세대 로스쿨 학생 네 명은 경찰의 채증규칙과 무분별한 채증행위가 헌법에 위배된다며 헌법소원을 제출했다. 이들은 직접 작성한 청구서에서 "민주주의 법치국가의 이념에 맞는 공권력 행사의 기준을 확립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밝혔다. 네 명 중 사진 촬영에 응한 세 명(왼쪽부터 김민후, 김혜공, 이종훈씨)이 헌법소원 청구서를 들고 있다. 이들은 채증의 개인정보자기결정권과 초상권 침해를 상징하는 의미로 얼굴의 일부를 가리는 모습으로 촬영에 동의했다. ⓒ 남소연

사건은 세월호 참사 136일째인 지난 8월 29일 일어났다. 오후 4시 연세대학교 학생·졸업생·교수 약 120명은 신촌 정문 앞에서 세월호 유가족들이 단식하는 광화문 광장을 향해 행진을 시작했다. 행진은 인도로만 진행됐고, 이들의 손에는 피켓과 현수막, 깃발이 들려있었다. 종종 "특별법을 제정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전형적인 평화 행진이었다.

갑자기 솟아오른 채증카메라 7대

처음에는 경찰도 행진을 보장하는 것 같았다. 비록 사전에 신고되지는 않았지만, 사복경찰들은 "절대 도로를 점거하지 말고, 위험한 물건을 소지하지 말고, 절대적으로 평화로운 행진을 할 것"을 학생 대표들에게 주문했고, 학생들도 협조 의사를 밝혔다. 그렇게 순조롭게 이대 정문과 5호선 서대문역을 거쳐 서울역사박물관으로 향했다. 그런데, 서대문구와 종로구의 경계에서 갑자기 종로경찰서 소속 기동대 수백명이 대열을 막아섰다.

경찰은 미신고 집회를 이유로 해산 명령을 내렸다. 학생들은 항의했다. 특히 로스쿨 2학년생인 김민후(28)씨는 "2012년 대법원 판례에 의하면, 미신고 집회라도 평화집회라면 해산명령을 내릴 수 없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경찰은 요지부동이었다. 오히려 채증 카메라 한 대가 등장했다. 학생들은 채증의 위법성을 지적하며 항의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채증 카메라 7개가 일제히 높이 솟아올랐다.

경찰은 ▲ 피켓을 수거하고 ▲ 구호를 외치지 말고 ▲ 세명씩 짝을 지어 광화문까지 이동한다면 길을 터주겠다고 했다. 사실상 행진을 중단하라는 요구였다. 참여자들은 부당하다고 느꼈지만, 행진의 주요 목적이 세월호 유족을 찾아가 위로하는 것이었기에, 결국 이 요구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행진은 그렇게 엉망이 됐다.

분노... 학생들이 직접 헌법소원 청구서를 쓰다

대한민국은 '채증 공화국' 세월호 참사 39일째인 지난 5월 24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2차 범국민촛불행동'에 참석했던 시민들이 거리행진 도중 청와대로 가자며 도로를 점거하자 경찰이 캠코더로 촬영(채증)을 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채증 공화국'세월호 참사 39일째인 지난 5월 24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2차 범국민촛불행동'에 참석했던 시민들이 거리행진 도중 청와대로 가자며 도로를 점거하자 경찰이 캠코더로 촬영(채증)을 하고 있다. ⓒ 권우성

행진에 참여했던 로스쿨 학생 네 명은 분노했다. 용납할 수 없었다. 김씨를 비롯해 이종훈(27), 김혜공(24), 이아무개(31. 이름 공개를 원하지 않음)씨는 그날 바로 의기투합했다. 단지 분노에 머물지 않고, 구체적인 행동에 돌입했다.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김씨는 이렇게 말했다.

"그날 경찰 책임자에게 당신들이 지금 하는 행위는 위법이기 때문에 당장 중지하고 길을 터달라고 요구했어요. 그런데 못 풀겠다는 거에요. 계속 위법성을 지적하니, 그쪽에서 먼저 그랬어요. '지금 (너희들이) 이야기하는 판례들은 모르겠고, 우리도 우리 행위가 위법한 것인지 판단을 받아보고 싶다'고. 그때, 아, 소송을 걸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목표는 헌법소원을 통한 위헌 결정. 그날부터 헌법재판소에서 위헌이나 헌법불합치 결정이 나온 판례들의 청구서를 뒤졌고, 그것을 참고로 헌법소원심판 청구서를 직접 작성했다. 한 명이 대표 집필하고, 그걸 토대로 토론하고 수정했다. 사흘만인 9월 2일 청구서 초안이 완성됐다. 이 소송을 대리하는 정연순 변호사는 학생들이 처음 가져온 청구서 초안을 이렇게 기억했다.

"헌법소원을 제기할 때 청구인이 직접 청구서를 써오는 일은 거의 없어요. 그런데 이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의문을 가지고 논리를 정리해서 왔습니다. 내용도 훌륭했어요. 몇가지 기술적인 문제를 제외하고, 그 논리에 있어서는 손을 보지 않아도 될 정도였습니다."

선배 변호사의 조언을 받아 좀 더 다듬어진 청구서는 10월 2일 헌재에 접수됐다.

채증이 위헌인 5가지 논리

학생들이 세운 위헌의 논리는 이렇다. 우선 명확성의 원칙 위반과 법률유보원칙 위반.

현재 경찰이 하는 채증의 근거는 경찰청 예규 제472호(채증활동규칙)인데, 제2조 1항에서 "채증이란, 각종 집회·시위 및 치안현장에서 불법 또는 불법이 우려되는 상황을 촬영·녹화 또는 녹음하는 것을 말한다"고 정의하고 있다. 그런데 '불법 상황'은 모르겠지만 '불법이 우려되는 상황'까지 채증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는 것은, 그 개념의 모호성과 자의적 해석 가능성으로 인해 사실상 '모든 경우'에 채증을 강행할 수 있다(명확성 원칙 위반).

또한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법률에 근거가 있어야 하는데, 경찰청 예규 제472호의 상위 법령인 경찰법, 경찰관직무집행법, 형사소송법 등 어디에도 채증에 대한 언급이 없다. 이들은 "개인정보가 어떻게 활용되며, 어디까지 활용되며, 언제 어떻게 폐기될 것인지 전혀 알 방법이 없다"면서 "이 사건 규칙조항은 법률에 근거가 없는 것으로 위헌적인 규정"이라고 주장했다(법률유보원칙 위반). 즉, 채증을 하려면 법률적 근거를 마련해서 하라는 것이다.

다음으로 개인정보자기결정권과 초상권 침해. 이들은 현재 경찰의 채증행위에 대해 "불법적인 집회뿐만 아니라 증거보전이 불필요한 집회에서조차 적용되고 행하여짐으로써 개인정보자기결정권과 초상권을 전면적이고 광범위한 방법으로 취하여지는 극단적인 조치"라며 "나아가 채증대상자가 자신의 채증된 사진 또는 동영상에 대해 정정요청을 하거나 삭제를 요구할 수 있는 아무런 절차적 권리가 없다"고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집회의 자유 침해다. 이들은 "현 채증규칙으로 인해 일반 국민은 자신들이 참여하는 집회가 평화로운 합법적인 집회임에도 불구하고 경찰에 의하여 채증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심리적으로 심하게 위축되고 있다"며 "또한 집회참가자와 경찰 간 불필요한 충돌을 발생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이 사건 규칙조항과 공권력 행사는 과잉금지원칙에 위배하여 집회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소송에 참여한 한 명인 이종훈씨는 청구인 진술서에서 헌법재판관 9명에게 이렇게 말했다.

"채증 등의 강제적 성격을 갖는 국가공권력의 행사는 공공의 안녕에 대한 침해가 현저한 상황에서만 정당화될 수 있다고 배웠습니다. 위헌 결정을 통해, 이러한 저의 배움이 틀리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시기를 바랍니다."

"배움이 틀리지 않다는 걸 보여주세요"

 세월호 참사 39일째인 지난 5월 24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세월호참사 2차 범국민촛불행동'에 참가한 참가자들 중 일부가 "박근혜 퇴진"을 외치며 청와대 행진을 시도했다. 캠코더를 든 경찰이 집회 참가자들의 얼굴을 채증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 39일째인 지난 5월 24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세월호참사 2차 범국민촛불행동'에 참가한 참가자들 중 일부가 "박근혜 퇴진"을 외치며 청와대 행진을 시도했다. 캠코더를 든 경찰이 집회 참가자들의 얼굴을 채증하고 있다. ⓒ 권우성

현재 이 사건(2014헌마843)은 제3지정재판부(김이수·안창호·조용호 헌법재판관)를 거쳐 이달 중순 전원재판부로 회부된 상황이다. 전원재판부에 회부됐다고 해서 위헌 가능성이 높아졌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지만, 한번이라도 헌법소원을 제출해 본 사람이라면 안다. 지정재판부를 통과하는 것 자체도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전원재판부에 회부돼, 최소한 각하는 되지 않고 기각이든 인용이든 최종 판단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 상황만으로도 로스쿨생들이 채증의 멱살을 잡는 데까지는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최근 경찰의 채증 양태도 조금 변하는 조짐이다. 지난 20일 농민대회를 앞두고 강신명 경찰청장은 "무리한 채증을 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경찰은 채증 규칙 개정작업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법률유보원칙 위반 등이 해소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학생들의 문제제기는 여전히 유효하다.

멱살을 잡은 학생들은 채증을 넘어뜨릴 수 있을까. 사회적으로 무차별적 채증에 대한 비판론이 높고, 국회에서는 채증 예산을 놓고 논란중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이미 "경찰의 채증활동 범위를 엄격히 제한해야 한다"는 권고 결정을 내렸다. 세월호 희생 여학생의 언니는 "저는 사고 이후 진도, 국회, 광화문 그리고 길에서 경찰이 하는 불법 채증으로 인해 셀 수 없는 많은 인권 침해를 당했고 정신적 학대를 받았다"며 "이 나라의 법을 제가 믿을 수 있게, 그리고 이 수치심과 모욕감에서 벗어날 수 있게 도와주기를 간곡히 부탁한다"며 헌재에 진술서를 제출했다. 연대 로스쿨 교수들도 다른 나라의 사례를 조언하는 등 이 소송을 적극 응원하고 있다. 분위기는 무르익었다.


#채증#연세대 로스쿨#헌법재판소#헌법소원#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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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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