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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흥사 입구에서 바라본 금강철새조망대 가는 길
 성흥사 입구에서 바라본 금강철새조망대 가는 길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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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화요일(25일) 오후 군산시 성산면 둔덕리에 있는 성흥사(聖興寺)를 찾았다. 군산-나포 시내버스를 타고 성산삼거리 정류장에서 내렸다. 환갑도 넘었을 시골 교회 종탑이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로터리에서 성산그린빌(금강철새조망대) 방향으로 걸었다. 흙냄새 그윽한 한가로운 시골길은 언제나 정겹다. 흥얼흥얼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백제인의 충혼이 서린 오성산(227m)을 조망하며 15분쯤 걸으니 흔옥(欣玉) 마을이다. 예전에는 큰골이라 하였고, 뒷산이 구슬 형상이어서 '흔옥'이라 불리게 됐단다. 마을에 야트막한 고개가 있는데 임진왜란 때 왜장의 목을 쳤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둔덕(屯德)이란 지명도 같은 시기 의병이 모인 곳이라 하여 붙여졌다 하니 전설이 아니라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인 듯하다. 

초겨울 농촌 정취에 젖으며 10분쯤 더 걸으니 성흥사(전통사찰 제55호) 안내판이 반갑게 맞이한다. 화살표를 따라가니 법당(관음기도)과 나한기도(적멸보궁) 도량으로 가는 길로 갈라진다. 어디를 먼저 들를까 망설이다 오성산의 다섯 개 연봉 중 하나인 도진봉(일명 봉화산) 8부 능선에 자리한 법당으로 방향을 잡는다. 도진봉은 '칼처럼 생긴 산'이란 뜻으로 금강이 지척인 이곳에는 <세종실리지>(1454)에 등장하는 봉수대 흔적이 남아 있다.

본존불 불상에 따라 법당 이름 달라져

오성산이 품은 듯 아늑하게 보이는 성흥사
 오성산이 품은 듯 아늑하게 보이는 성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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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젓한 오솔길. 금방 귀신이라도 튀어나올 것만 같다. 숲이 뿜어내는 상쾌한 기운을 온몸으로 받으며 20분쯤 걸었을까. 소박한 모습의 원통전(圓通殿)이 모습을 드러낸다. 원통전은 성흥사 본당으로 지붕만 봐서는 영락없는 시골 농가다. 손을 꼽아보니 군산에 현존하는 사찰은 40여 개. 그중 성흥사가 가장 높은 위치에 자리한 절집이라는 생각이 든다.

성흥사는 태고종 사찰이다. 조선 헌종 10년(1844) 허경선사가 창건하였고, 몇 차례 중창불사를 거쳐 오늘에 이른다. 절집 규모가 암자처럼 작고, 창건 연대가 길지 않음에도 1988년 10월 전통사찰로 지정됐다. 1992년 주지로 부임한 송월 스님이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신축(1994)한 원통전과 삼성각, 요사채, 아담한 종각 등으로 가람을 이룬다. 

단청이 없는 원통전은 석가여래와 관음보살, 지장보살이 봉안되어 있고, 위쪽에 자리한 삼성각(三聖閣)은 독성불과 칠성신 탱화, 산신 등을 모셨다. 요사채는 태극권, 단전호흡, 선체조 등 불가기공을 연마하는 참선 수련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송월 스님은 동양철학(천문, 지리, 역학 등)에도 관심이 많아 토속 샤머니즘 신앙과 융합 발전해온 한국 불교의 사례를 보는듯하다.

단청이 없는 성흥사 원통전. 코끼리상이 눈길을 끈다.
 단청이 없는 성흥사 원통전. 코끼리상이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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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통전에 봉안된 석가여래와 관음보살, 지장보살
 원통전에 봉안된 석가여래와 관음보살, 지장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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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찰은 대웅전, 극락전 등을 중심으로 불전이 배치되는데. 성흥사는 원통전이 중앙에 자리한다. 그 이유는 불상을 본존불로 모시느냐 보살을 모셨느냐에 따라 달라진단다. 대웅전은 1불 2보살을, 극락전은 아미타부처, 미륵전은 비륵불을 봉안한 법당이라는 것. 따라서 성흥사는 고통 받는 속세 사람들이 부르면 언제든 도와주고 문제를 원만하게 해결해준다는 관세음보살을 모셨으니 관음전, 원통전이라고도 한다는 것이다.

원통전 법당 입구의 코끼리 석상도 눈길을 끈다. 귀여운 얼굴에 길게 구부러지면서 늘어트린 코가 해학적이다. 불교에서는 오래전부터 코끼리를 위용과 덕을 상징하는 상서로운 동물로 여겨왔다. 마야 왕비가 흰 코끼리 꿈을 꾸고 부처를 낳았다는 전설 때문. 불자들 사이에 코끼리 형상을 지니고 있으면 행운이 따를 거라는 믿음이 싹트게 된 것도 그에 연유한다.

성흥사는 1991년 원통전 공사 중 기단부 뒤편에 한자로 '성거산 천성사 통화 28년'이 새겨진 청동 관음보살상 2기가 발견되어 관심을 끈 바 있다. 통화 28년은 중국 요나라 연호로, 고려 현종 1년(1010)에 해당하며 그중 청동관음상은 고려 시대 것으로는 드물게 2자가 넘는(66cm) 높이에 상태가 양호하고 단아한 미소에 조각이 뛰어나 국보급 유물로 평가받았었다.

국보급 불교 유물 기증받은 것은 기적

성흥사 내력을 설명하는 송월 스님
 성흥사 내력을 설명하는 송월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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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당을 돌아보고 내려와 나한기도 도량으로 향했다. 송월 스님을 만나 보충설명을 듣기 위해서였다. 내년 완공을 목표로 공사 중인 대웅전 신축불사 현장에 있던 송월 스님이 반갑게 맞아준다.

- 법당에 다녀왔다. 절집이 오성산 품에 안긴 듯 아늑했다. 특히 축대까지 가을색이 짙게 물들어 좋았다. 무슨 돌을 정교하게 다듬어 쌓았는지 가까이 다가가니 폐타이어였다. 
"(성흥사에) 처음 왔을 때는 전기도 마을에서 끌어다 쓰고 비가 조금만 내려도 산사태로 길이 막히는 등 폐사(廢寺) 직전이었다. 고민 고민하다가 어느 날 폐타이어를 논둑에 쌓아 물길을 잡은 걸 봤다. '아~하 저렇게 하면 되겠구나' 하고 수거업체로 얻으러 갔더니 목에 힘을 잔뜩 주면서 안 주더라.(웃음) 어쩔 수 없이 돈을 모아 불자님들과 호미로 흙을 채워감서 쌓았다. 처음엔 시원찮더니 지금은 2톤 트럭이 후진하다 부딪혀도 괜찮다. (웃음)" 

나한기도 도량 연못과 다양한 석불상
 나한기도 도량 연못과 다양한 석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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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한기도 도량 연못 사리탑 주변에 다양한 석불상을 모셨는데. 무슨 의미인가?
"아미타경을 근거로 이 도량에 오시는 분마다 성불하시라는 의미로 만들었다. 진흙에서 꽃을 피우는 연못은 중생세계를, 중앙에 봉안한 사리탑은 부처를 상징한다. 그래서 사리탑 정면에 아미타불을, 그 앞으로 관세음보살, 지장보살 등 불보살과 제자들을 석재로 만들어 모셨다. 부처님 말씀을 깨달은 존자(제자)만 1250명이다. 그중 10대 제자를 최고로 치고 16 나한을 위주로 30기를 제작하였다. 자세한 조성 동기는 방문객이 오면가면 눈에 띄면 볼 수 있도록 비석에 새겨놓았다."

 고려시대 청동관음상(왼쪽)과 16년만에 돌아오는(가운데) 기적을 보인 협시불
 고려시대 청동관음상(왼쪽)과 16년만에 돌아오는(가운데) 기적을 보인 협시불
ⓒ 성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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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흥사는 불교 유물을 다량 보유한 사찰로 알려지는데?
"고려 시대 청동관음보살 입상 3점과 금동 9층 불탑 1점을 비롯해 백제 시대 관음보살상 1점, 통일신라 시대 쌍사자 석등, 조선 시대 아미타불 탱화, 제작연대 미상인 청동광배보살 입상 등 20여 점이다. 대부분 대구에 사는 유성철(고미술 수집가)씨가 2006년 기증한 유물로 성분 분석 및 감정을 거쳤다. 신기한 것은 유씨는 (기증한)유물을 수집한 뒤 악몽에 시달리고 그의 부인은 꿈에 '성흥사'라는 절과 묘령의 스님이 나타나자 기이하게 여기고 찾아와 확인한 뒤 하늘의 뜻으로 받아들여 아무 조건 없이 기증하게 됐다는 것이다.

더욱 기이한 것은 유씨가 '성흥사' 관음불상과 같은 연대에 조성된 불탑을 소장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관세음보살님이 미리 알고 찾아가셨는지, 선친이 남긴 유물까지 모두 기증할 것을 결심하게 됐다고 한다. 그는 군산은 우리 역사 유물이 일본으로 반출된 곳이니 성흥사에 불교유물관을 만들어 보존하면 좋겠다는 얘기도 했다. '잘 되려면 집 나간 말이 새끼 낳아서 들어온다'는 말도 있듯 다른 유물까지 기증받았다. 그저 기적이라 할 수밖에 없다."

국보급 유물, 지서, 파출소, 농협 금고, 경찰서 등에 보관

- 선조들의 삶과 지혜가 담긴 유물들을 구경하고 싶은데?
"오래 살고 싶어서 경찰서에 보관하고 있다.(웃음) 아무래도 이곳은 손이 많이 타고 위험해서···. 1991년 불자들에게 사랑받던 불상이 사라지는 사건이 있었는데 16년만에 돌아오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그 부처님 원력으로 많은 성보유물을 소장하게 돼서 더욱 조심스럽다. 극진한 대접을 받아야 할 유물들이 파출소, 지서, 농협 금고 등을 전전하다가 지금은 경찰서에서 고생하신다. (웃음) 유물들은 창건 162주년(2006) 기념식 때 공개한 적이 있는데, 내년 여름쯤 대웅전이 완공되면 전시실을 마련해 전시할 계획이다."

- 비석문은 물론, 원통전 현액과 주련도 직접 써서 제작하는 등 서예 실력이 수준급인 것 같다.
"그냥 취미로 조금씩 깔짝깔짝 한다. (웃음)"

- 성흥사는 증산교 승계자 '고수부'와의 인연 등 숨겨진 내력이 흥미를 끈다.
"군산에 와서 알았는데, 성흥사는 1932년 화재로 소실되어 증산도 일파 교주였던 고판례(고수부)께서 임신년(1932)에 수련 도장을 건축 보수하고 몇 년 거처하다가 생을 마감한 곳이다. 그 영향을 받아서 그런지 군산을 비롯해 충청도 서천, 장항 주민들의 민족 신앙 귀의처로 선조들의 혼이 사무친 성지이다. 일명 고씨 부인(고수부)을 믿었던 사람 중에는 성흥사 신도도 많았고, 외지에 사는 제자들이 지금도 찾아오고 있다."

- 앞으로 계획은?
"은사인 성공 스님과 종단에서 이곳(성흥사)을 일신시키고 오성산에 뼈를 묻으라는 명을 받고 왔다. 처음 왔을 때는 산신각하고 요사채만 남아있었다. 그동안 일구월심 노력 끝에 수행 도량으로 모습을 갖추고, 나한기도 도량(대웅전, 선방, 종각 등) 완공을 앞두고 있다. 자수성가를 이룬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다가 이곳에 와서 눈도 뜨고···. 신도들과 지역 주민들의 협조에 감사할 따름이다. 이제는 부처님의 바른 법을 열심히 전하는 일만 남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군산시 성흥사, #송월 스님, #성보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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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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