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법원은 어떤 이유로 한국지엠(GM, 옛 지엠대우) 창원공장 사내하청업체 노동자를 원청회사 소속 노동자로 인정한 것일까. 창원지방법원 제4민사부(신상렬·최아름·강성진 판사)가 4일 한국지엠 창원공장 비정규직 5명(원고)이 원청회사(피고)를 상대로 냈던 '근로자지위 확인 및 임금청구 소송'에서 원고승소 판결했는데, 그 이유에 관심이 높다.

이번에 소송을 낸 5명은 각각 1996년 2월, 2003년 2월, 1995년 11월, 2001년 12월, 2003년 2월부터 사내하청업체 소속으로 근무해왔다. 한국지엠의 자동차 생산과정은 프레스-차체-도장-조립-품질관리-출고의 순서로 이루어지고, 6개 사내협력업체에 소속된 근로자는 838명이었다.

'도급'-'근로자파견' 구별 여부에 대해, 재판부는 "도급계약서상 계약의 범위는 '피고 공장에서 자동차의 완성을 위한 작업 중 피고와 협력업체가 별도로 합의하는 작업'이어서, 그 범위가 특정되어 있지 아니하다"고 밝혔다.

이어 "공장 내 자동차 생산·조립 작업은 대부분 컨베이어벨트를 이용한 생산방식으로 진행되는데, 업무 제반 설비와 작업 수행에 필요한 자재와 공구 등은 대부분 피고의 소유였고, 협력업체 소속 근로자들은 컨베이어벨트 좌우에 피고 소속 근로자들과 혼재하여 배치하였다"고 덧붙였다.

"원고들, 근로자파견 관계에 있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한국지엠 창원공장.
 한국지엠 창원공장.
ⓒ 윤성효

관련사진보기


또 재판부는 "협력업체 소속 근로자들은 피고가 미리 작성하여 배포한 표준작업서, 단위작업서, 조립사양서, 작업지시서 등에 의하여 단순 반복적인 업무를 수행하였고, 생산방식이 변경되는 경우에는 피고가 새로운 시스템에 맞게 변경한 뒤 이를 피고 소속 직·조장이 협력업체 소속 근로자들에게 교육을 실시하거나 필요한 지시를 했다"고 설명했다.

또 이유가 있다. 재판부는 "피고 소속 근로자의 산재, 휴가 등의 사유로 결원이 발생하거나 수출물량이 증가할 경우, 피고는 협력업체들에게 인원보충을 요청하여 협력업체 소속 근로자로 하여금 그 결원을 대체하여 작업하게 하였다"며 "피고가 투입부서, 투입과, 투입공정, 대상인원, 투입시기, 투입기간을 정하여 협력업체에 통보하면 협력업체는 그에 따라 인원보충을 하는 등 결국 인원보충에 있어 협력업체의 독자적 권한은 없었다"고 밝혔다.

작업 시작·종료시간 등에 대해, 재판부는 "협력업체 소속 근로자의 작업 시작시간과 종료시간, 식사시간, 휴식시간 등은 모두 피고 소속 근로자와 동일하였고, 협력업체 소속 근로자가 조퇴, 월차, 휴가 등을 사용하려고 할 경우 피고 소속 직장이 근태신청서를 발부해 주어야 가능했다"며 "피고 소속 정규직 근로자가 노조 활동 등으로 작업을 쉬게 되면 협력업체 소속 근로자들도 작업을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또 재판부는 "피고는 원고가 근무한 조립부 등 일부 부서에서 '5단계 문제해결 보고서'를 작성하게 하여 해당 공장과 과장의 결재를 받도록 하였는데, 이 보고서에는 피고 소속 근로자뿐만 아니라 협력업체 소속 근로자도 서명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변론 전체에 드러난 제반 사정 등을 종합하면, 원고들은 협력업체에 고용된 뒤 피고의 작업현장에 파견되어 피고로부터 직접 지휘명령을 받는 근로자파견 관계에 있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컨베이어 작업방식과 관련해, 재판부는 "연속적으로 작동하는 컨베이어벨트를 이용한 자동차 생산업무는 단순성과 반복성, 분절성을 그 특징으로 하고, 작업 시간과 속도는 물론 작업의 양과 방식까지도 전체로서 설계된 컨베이어벨트의 이동속도 등에 좌우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컨베이어 작업의 경우 제공된 근로 자체와 그로 인하여 완성된 일의 결과를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이 용이하지 않아, 수급업체의 자율적이고 독자적인 업무 수행이 용이하지 않을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수급업체의 전문성이나 고유기술이 투입되기도 어렵다"고 덧붙였다.

또 재판부는 "컨베이어 라인에서 혼재되어 근무하고 있는 개별 근로자들은 전체 생산공정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이는 블록화된 작업 공간에서 근무하는 근로자들 또한 마찬가지라 할 것"이라며 "컨베이어 작업의 특성은 장소와 형태에 따른 업무의 질적 구분을 무의미하게 만든다"고 설명했다.

'간접생산 공정'에 대해, 재판부는 "포장 업무 또한 컨베이어를 활용한 피고의 생산물량에 직간접적으로 좌우될 수 밖에 없다"며 "간접생산 업무 또한 자동차 생산업무의 중심인 컨베이어벨트의 생산속도와 일정에 연동되어 이루어지게 된다"고 밝혔다.

4일 창원지방법원이 한국지엠 창원공장 사내하청 비정규직들이 원청회사를 상대로 냈던 '근로자지위 확인소송'에서 원고승소 판결한 가운데, 민주노총 경남본부와 금속노조 경남지부는 이날 오후 한국지엠 창원공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한국지엠은 불법파견 사과하고 모든 사내하청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라"고 촉구했다.
 4일 창원지방법원이 한국지엠 창원공장 사내하청 비정규직들이 원청회사를 상대로 냈던 '근로자지위 확인소송'에서 원고승소 판결한 가운데, 민주노총 경남본부와 금속노조 경남지부는 이날 오후 한국지엠 창원공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한국지엠은 불법파견 사과하고 모든 사내하청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라"고 촉구했다.
ⓒ 윤성효

관련사진보기


또 재판부는 "직접생산 공정의 경우 피고가 주장하는 사내도급이 현실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지 여부에 관한 의문이 있다"거나 "피고가 협력업체들에게 행사한 지휘명령은 도급을 위한 지시권의 한계를 넘은 것이라고 보인다"는 설명도 했다.

재판부는 "협력업체의 현장관리인이 소속 근로자들에 대해 행하는 지시나 감독업무를 피고의 그것과 구분되는 별도의 구체적인 지휘명령으로 보기는 어렵고, 피고가 제출한 자료만으로는 피고의 주장을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밝혔다.

파견근로자보호등에관한법률(파견법, 2년 이상이면 정규직)과 관련해, 재판부는 "계속근로기간 2년 초과로 인한 고용간주 효력이 발생한다"고 밝혔다. 원고 5명은 모두 2년 이상 근무해 왔던 것이다.

한국지엠 사측은 파견법이 "계약의 자유, 사적자치 및 기본권을 침해했다"며 위헌이라 주장했는데, 이에 대해 재판부는 "고용간주 규정이 계약의 자유와 사적자치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하였다고 볼 수 없다"며 "피고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태그:#한국지엠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