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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990년대 아이돌 그룹인 H.O.T., S.E.S, 핑클, 신화, god 등과 함께 학창시절을 보냈다. 그들의 새 앨범이 나오기를 기다렸다가 음반 가게에 들렀다. 지금은 찾아보기도 힘든 카세트 테이프를 구입하고는 했던 그때의 추억이 책 <아름다운 사표>를 집어들면서 문득 떠올랐다.

이웃 블로거 남시언씨의 출간 소식을 듣고 출간일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출간 예정일인 11월 17일이 되었지만 인터넷 서점에서 검색이 되지 않자 살짝 초조한 마음도 들었다. 단지 21일부터 시행되는 '도서 정가제' 때문만은 아니었다. 책 제목 <아름다운 사표>가 전하는 묘한 감정이 나를 재빨리 움직이게 만들었다. 11월 28일이 돼서야 책을 받아들고 책장을 넘기면서 그 묘함은 강한 울림으로 바뀌었다. 책 <아름다운 사표>가 지금 우리 시대에 전하는 메시지를 밖으로 꺼내 함께 이야기하고 싶어졌다.

모두가 취업을 위해 애쓸 때... 오히려 박차고 나온 사람

<아름다운 사표>(남시언 지음 / 라온북 펴냄 / 2014.11. / 1만 2000원)
▲ <아름다운 사표> <아름다운 사표>(남시언 지음 / 라온북 펴냄 / 2014.11. / 1만 2000원)
ⓒ 라온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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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사표>는 저자 남시언씨의 경험담이다. 책 제목에서 유추가 가능하듯 회사에 사표를 쓴 이야기다. 저자는 요즘 같이 취업이 어려운 시기에 이름만 들으면 다 알 법한 대기업에 입사했다. 그러나 1년 6개월여 만에 스스로 사표를 던진다. 이직이 아니라 사표다. 30살도 채 안 된 젊은 남자가 뚜렷한 계획도 없었다. 저자의 표현대로 '미친 짓'을 하고야 말았다. '대체 왜'라는 의문이 가장 먼저 들었다.

그는 행복하지 않았다고 했다. 자신이 아니라 남들을 위해서 그리고 돈의 노예처럼 일하는 것에 무척이나 지쳐 있었다.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모습, 마치 나의 이야기 같았다. 누군가는 나를 부러워할 것을 잘 알면서도 나와 같은 길을 걷자고 선뜻 손을 내밀지는 못하는 심정. 정말 바람직한 삶을 살고 있는지 수백 번 자문했다.

그러나 무수한 자문 끝에도 여전히 나는 회사를 열심히 다니고 있다. 저자 남시언씨는 대체 나와 무엇이 달랐던 것일까?

드라마 <미생>을 즐겨 본다. 월급쟁이들의 삶을 조금의 과장이나 부족함 없이 현실적으로 표현한다. 상황은 다르지만 느끼는 감정은 비슷하다. 마치 나의 모습을 찍은 비디오를 보고 있는 것 같은 장면이 한두 개가 아니다. 주인공은 '장그래'라는 인물로 대기업의 계약직으로 근무하고 있다. 고졸에다 영어 한 마디도 못하는 '장그래'의 고군분투는 정말 처절하다. 그것은 온갖 무시와 핍박을 받으면서도 열심히 사회에 적응하려는 몸부림이다.

장그래의 모습에서 행복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하지만 그는 정규직으로 전환되기를 바라며 최선을 다한다. 일단 돈을 벌어야 한다. 그리고 사회적 시선도 영향을 미친다. 청년 실업이 급증하면서 '88만원 세대'라는 신조어까지 나왔다. 현실에는 이처럼 취업을 위해 사투를 벌이는 사람들이 많다.

"취업 축하해! 이제 소개팅이 줄을 잇겠는데?"

나의 취업 소식을 주변 친구들에게 알리니 제일 먼저 튀어나온 반응이었다. 지금까지의 경험을 비추어 보면 그들의 말은 터무니없는 거짓이었다. 화려한 겉모습이 마치 전부인양 생각하는 태도 때문에 발생한 잘못된 인식이다. 우리는 살면서 이처럼 수많은 편견에 사로잡혀 자기 방식대로 판단하는 우를 범한다.

취업의 문턱을 밟기 위해 세상에 있는 스펙은 모두 쌓으려는 사람이 넘쳐난다. 이런 시기에 책 <아름다운 사표>의 저자는 스스로 회사를 박차고 나왔다. 책을 절반 넘게 읽고서도 도무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제정신인 건가?" "힘든 건 알겠는데 무슨 배짱으로 사표까지?" "부서를 옮겨 볼 수도 있는데 노력도 않고 너무 쉽게 결정한 것은 아닌가?" "앞으로 무엇을 먹고 살려고 하나?" 등의 수많은 물음표가 스쳐 지나갔다.

나 또한 일반적인 편견을 가지고 바라보고 있음을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 나서야 깨달았다. 내 생각이 짧았다. 저자는 사표를 내고도 충분히 바쁘게 잘 살고 있었다.

고등학교 이후로 근 10년 만에 농구공을 다시 잡고 스포츠를 즐긴다. 꼭 도전해 보고 싶었지만 이런 저런 핑계로 미뤘던 자격증도 취득했으며 쌓여있던 책들도 틈나는 대로 읽는다고 했다. 요리를 만들며 해프닝을 만들고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해 담소도 나눈다. 힙합과 랩을 좋아해 음악을 다시 시작했고 길거리 공연도 한다. 평소 알고 지내던 분들과 함께 길거리에서 물총 싸움 행사를 작게 열어 추진하기도 했다.

저자는 흔히 알고 있는 백수와는 거리가 먼 듯했다. 이런 그의 모습을 보며 "사표를 낸 것을 후회하냐?"는 말은 바보 같은 질문이다.

사표를 권하지 않는 책, 판단은 여전히 독자의 몫

때마침 얼마 전, 나와 같은 대기업에 다니는 친구가 이번 달에 사표를 쓴다는 소식을 들었다.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들었다. 특별한 것은 없었다. 매일 늦게 퇴근하고 주말도 없는 자신의 삶을 바꿔 보려는 움직임, 직장인 모두가 바라지만 실천으로 옮기기는 힘든 그것을 하려는 것뿐이었다.

그는 "좀 더 사람답게 살고 싶다"고 했다. 책 <아름다운 사표>의 저자와 같았다. 단지 이들뿐일까.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저자의 이야기가 딱 들어맞는 것 같았다.

책 <아름다운 사표>를 손에 넣은 후 처음에는 읽기가 겁이 났다. 책을 아무 곳에서나 꺼내어 놓는 것도 망설여졌다. 내가 사표를 쓰려고 하는, 회사 부적응자로 보이는 것에 대한 두려움 탓이다. 마치 성인 잡지처럼 숨겨가며 봐야 하는 처지에 이르렀다. 그러나 힘든 직장 생활을 하는 이들의 선택지에 사표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다행히도 이 책은 사표를 무조건적으로 권하고 있지 않다. 사표를 내던지기 위해서는 감수해야 할 것들이 많다. 그것들을 책 속에서 충분히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을 읽은 독자 모두가 저자와 같은 생각을 갖고 사표를 쓰라고 권하지 않는다. 직장에서의 각자의 모습을 한번쯤 되돌아보는 데 더 의미를 두고 있다. 이것이 책 <아름다운 사표>의 진정한 가치다.

중요한 점 또 하나, 이 책에 따르면 남들 시선을 여전히 신경 쓰는 나는 아직 사표를 쓰기에 적합하지 않은 상태다. 나 또한 언젠가는 사표를 쓸 날이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버틸 때까지 버티고 바꿀 수 있을 때까지 바꾸려는 노력을 한 뒤에도 여전히 행복하지 못한 순간이 지속된다면, 그 때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예측 불허의 미래에 대비하는 차원쯤이랄까.

나 자신은 아직 직장이라는 공간에 적응해 가는 시점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책 <아름다운 사표>는 사표를 쓴 경험의 이야기할 뿐이다. 판단은 각자의 몫으로 남겨두고 있다.

<미생>이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누군가는 사원증을 걸기 위해 노력을 하고 다른 누군가는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을 하겠다며 사표를 쓰는 시대가 참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분명한 것은 이 모두가 현재 우리 사회에 존재하고 있는 모습이라는 점이다. 그 누가 틀렸다고 할 수 없다. 다를 뿐이다. 자신이 꿈꾸는 삶의 원칙대로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남을 따라하지 말자. 인생은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자신이 주체가 되어야 한다. 책 <아름다운 사표>가 전하는 메시지는 이것이다. 당연한 가치들이지만 잊고 있었던 것을 다시 각인한다.

"정답은 없다. 선택의 문제다." (본문 54쪽 중에서)

저자 남시언씨를 응원하고 싶다. 마음속에만 간직할 뿐, 실천하기 어려운 행동을 했다. 누군가는 '철없는 짓'이라 비난할지 몰라도 누군가에게는 대리 만족 또는 삶의 전환점을 안겨줄지 모른다.

덧붙이는 글 | <아름다운 사표>(남시언 지음 / 라온북 펴냄 / 2014.11 / 1만 2000원)

이 기사는 블로그 <소리없는 영웅의 깜냥>(http://hush-now.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사표 - 사표 앞에 망설이는 당신에게

남시언 지음, 라온북(2014)


태그:#아름다운 사표, #라온북, #남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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